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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13 [아이돌 마스터] 저요? 아이돌일걸요? 아마도. 프롤로그~6화
[아이돌 마스터] 저요? 아이돌일걸요? 아마도. 프롤로그~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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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마스터] 저요? 아이돌일걸요? 아마도.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지금 이곳은 산 속입니다. 네, 조난이에요. 그렇답니다. 조난이에요."
고등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소녀가 시니컬한 듯 하면서도 미묘하게 개의치 않는 듯한 자연스럽고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입고 있는 옷은 최근 10대 소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캐주얼한 등산복. 디자인과 실용성을 동시에 잡았기에 낮이 되어도 선선한 요즘에 입고 다니기 편한 옷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뭔가 불편한 듯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 결코 생존에는 효율적이지 못한 옷이네요. 빌딩풍이 몰아치는 대도시에서는 유용하겠지만, 으음, 적어도 이 숲에서는 그리 유용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만일 가정에 제 또래의 따님이 있고, 그 따님께서 이 옷을 사달라고 한다면 사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따님께서 그 옷을 입고 산에 간다고 하면 반드시 말리세요. 아, 참고로 마코토는 꽤 마음에 들어하더군요. 뭐, 가벼운 캠핑에는 좋을 것 같네요."
아무렇지도 않게 협찬받은 상품을 깎아내리고 있다. 말투도 묘하게 날카로워서 정말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이 소녀가 입고 있는 옷을 한 번 입어보고 싶게 만드는 말투. 종잡을 수 없는 느낌이다.
"어찌되었든 조난당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헬기에서 낙하산과 함께 던져졌습니다. 랭크가 바닥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뭐랄까, 랭크 이전에 아이돌이잖아요? 그런데 왠지 취급은 단백질을 탐하는 그분과 같네요. 그보다 요령 한 번만 듣고 간신히 낙하산 펼쳐서 내려오기는 했지만, 잘못했으면 그냥 낙사라구요? 이 방송 진짜 괜찮은 건가요? 안전점검 같은 거 하고 있는 거 맞죠? 아니, 그리고 이 방송 원래 아이돌 애들 시골 같은데 가서 2박 3일로 일하고 놀고 뭐하고 그런 거 아니었나요? 적어도 처음에는 지붕 아래서 잠을 잤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나 혼자 이렇게 산 속에 던져져서 문명세계로 돌아오는 고생을 하고 있는 건가요?"
투덜투덜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정말로 곤란해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다. 아침에 세수하다가 잠옷 소매가 젖은 걸 궁시렁거리는 것 같은 가벼운 느낌이다.
게다가 방송이라고는 해도 오지에 내던져졌는데 전혀 곤란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되려 능숙하게 낙하산을 수거해 가방에 넣으며 짐을 확인한다.
"이번에도 있는 물품은 나이프랑 부싯깃, 그리고 물통입니다. 아니 정말 그분 따라가는 거에요, 이 방송? ……뭐, 지금 여기 있는 건 저랑 카메라맨뿐이니까 알 수가 없군요. PD님을 만나봐야겠군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산을 빠져나가야 하구요. 그래도 하다못해 삽이라도 좀 넣어주면 좋을 텐데……. 아무리 방송 설정상 안된다고 해도 아쉽다구요 정말."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하늘을 본다.
"일단 국내고 오전이니까 해가 있는 저쪽이 동쪽이군요. 이 방송 계속 보신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실 테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해주는 게 이 바닥 약속이죠. 어차피 식상해진다 싶으면 알아서 편집될 테니까요. 여튼 동서남북은 알았고, 헬기에서 내던져지기 전에 봤던 지도에는 남쪽으로 가는 게 가장 가까운 도시라고 했었으니까, 이쪽으로 가야겠네요. 전 아즈사 언니처럼 몸 속 어딘가에 워프엔진을 내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귀찮네요."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가방을 맸다.
"슬슬 봄이 되니까 월동을 끝내고 튀어나오는 동물들이 있을 테니 그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 근처에 뭐가 튀어나온다는 정보를 받은 게 없어서 걱정되네요…… 라고 말해봤자 다들 TV 앞에서 편안하게 앉아서 '그래도 잘 헤쳐 나오겠지.'라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아 정말……. 전 히비키마냥 동물들과 대화하는 스킬 레벨 낮다구요. 어정쩡하게 했다가 여차하면 골로 가버리니까 걱정 좀 해줬으면 합니다. 그리고 하는 김에 정부의 높으신 분들한테 이 방송 계속해도 되는 건지, 미성년자를 위험에 내던지는게 아닌지 좀 찔러주시면 정말 고마울 거에요."
터무니없는 말을 하면서 소녀는 숲을 헤쳐나가기 시작─ 하려다 다시 카메라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늘 하는 말이지만 제 팬 여러분, 세상에 별의별 취향 다 있는 거 알지만, 저같이 뭔가 좀 이상한 아이돌 팬질 하지 마세요. 세상에 무대 나가는 것보다 야생에서 구르는 일이 훨씬 더 많고, 드레스보다 이런 활동복 더 많이 입고, 노래보다 비명하고 기괴한 환호성 내지르는 이상한 아이돌 팬질 그만 두라니까요?"
그리고는 다시 숲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 방송, 진짜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을 품는 시청자는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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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맨의 마지막 질문에 756프로덕션 사람들은 이렇게 답했다.
"음, 그러니까, 어, 뭐든지 할 줄 아는 사람?" 아마미 하루카
"고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키쿠치 마코토
"같이 놀면 즐거운 사람~" 후타미 아미
"없으면 아쉬운 사람~" 후타미 마미
"가족들하고 대화가 되는 사람!" 가나하 히비키
"부러워요. 어디서든 당당하다고 할까, 자유롭다고 할까……." 하기와라 유키호
"굉장해요! 세일기간 같은 거 모두 꿰뚫고 있고 숙제도 잘 도와줘요!" 타카츠키 야요이
"정말 진지하게 왜 아이돌 하고 있는지 모를 사람?" 미나세 이오리
"종잡을 수 없는 사람…… 같습니다." 키사라기 치하야
"노력하는 아이라고 봐요." 미우라 아즈사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하는 게 제 생각이랍니다." 시죠 타카네
"편하고 편리한 사람." 호시이 미키
"옆에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죠." 아키즈키 리츠코
"옛날부터 정말로 도움이 많이 되는 아이였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오토나시 코토리
"대견한 아이라고 보네." 타카기 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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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고 싶은데요. 일단 아이돌이긴한데 하는 일 보면 이건 무슨 만능잡일꾼 같아요."
「 아이돌이란 뭘까? 」라는 질문에 그 소녀─타카기 세이야 高木 聖夜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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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기 세이야 高木 聖夜
나이 : 17(고2)
키 : 165cm
몸무게 : 52kg
생일 : 12월 26일.
혈액형 : B형
BWH : 미정
취미 : 미정
이미지 컬러 : 은색 (하지만 보통 대놓고 '사실 회색이에요. 다들 알면서 뭘.' 같은 소리를 한다)
어깨 언저리까지 오는 어정쩡한 단발. 머리 관리하기 귀찮기 때문에 자르고 싶다는 말을 하지만 팬들과 사장님의 설득에 내버려두고 있다.
생계형이 아닌 생존형 아이돌. 서바이벌, 야생, 생존, 등산, 낚시 등등 전혀 아이돌스럽지 않은 장소에서 아이돌 영업중.
하는 일이 그런 지라 스스로는 물론 팬과 시청자들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평소의 해탈한 듯 하면서도 시니컬한 말투와 시키면 투덜거리면서도 어지간한 레벨 이상으로 모두 해내기 때문에 그 갭이 세일즈 포인트.
틈날 때마다 765프로덕션 내 다른 아이돌들이 자기보다 훨씬 더 잘한다면서 계속 언급하여 지명도를 올려주는 역할도 하고 있는데, 의식적으로 하는 건 아니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러는 것이다.
시니컬하면서도 따스한, 어딘가 해탈한 듯한 말투로 다른 아이돌을 버프로 밀어주는 특수캐.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친척인 타카기 가문에 맡겨졌다. 즉 사장님들과는 사촌 사이지만, 친척이라고 봐주는 거 없이 험하게 구르고 있기 때문에 동료들 사이에서는 되려 고생한다는 평가. 본인은 먹고살기만 해도 어디냐는 심정인데다가 용돈도 꽤나 많이 받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돌 동료들을 부를 때 이름으로 부르는데 성을 부르는, 거리를 두는 듯하면서도 거리가 없는 느낌. 프로듀서는 마스터P라고 부른다.
──라는 설정으로 끄적여 봤습니다.
왜 이런 걸 썼냐고 물으신다면 애니마스를 봐서, 라고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연재는 포병과 별의 바다가 끝나고. ……그러니까 계획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아이돌 마스터] 저요? 아이돌일걸요? 아마도.
#1. 타카기 세이야라고 합니다. 아이돌입니다. 못 믿겠지만 분류상으로는 일단 그래요.
"어서오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동생 내외가 사고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에 형님과 함께 빈소를 찾았을 때, 그 아이는 어딘가 초연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담담하고 차분한 얼굴로 오고가는 객들과 인사를 나누는 그 아이의 얼굴에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나 형님이나 그것을 그 아이가 무정해서 그러는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치 않았다. 그 어느 곳보다도 '사람을 보는 눈'을 필요로 하는 연예계에 종사하는 우리들의 눈은 그 아이의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저건……."
"음. 틀림없어."
닳고 닳은 바위.
늙디 늙은 나무.
깎이고 부러지고 깨지고 꺾이고, 세상 모진 풍파 다 헤쳐나온 끝에 비바람에 순응하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바위와 고목 같았다. 슬퍼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어르고 달래고 삭혀서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앳된 소녀이기 때문일까. 눈가가 살짝 부어있는 것을 보니 이제는 맞이해주는 이 하나 없는 집안에서 홀로 울었던 게 분명했다.
예전부터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쉽사리 희로애락들 드러내지 않는 아이였다. 속이 상하면 으레 그래왔다는 것도 동생 내외에게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 흔적을 지우려 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예리한 사람들이나 알 수 있을 만큼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저 나이대에는 쉽게 가질 수 없는 자기절제능력이었다.
그렇다고는해도 이제 겨우 10대 중반에 들어선 소녀이지 않은가. 그런 조카가 앞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갈지를 걱정하는 건 친인척으로서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넌지시 물어봤을 때 돌아온 구체적인 대답에 놀라고 말았다.
"관리인과 경비원이 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갈 거에요. 봐둔 데가 있어요. 재산은 유산보호신청해뒀습니다. 비용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믿을 수 있는 법률회사입니다. 이사비용 빼면 매달 나오는 생활비 조절해서 쓰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충분해요. 사망보험금─이 단어를 언급할 때 그 아이는 잠시 멈칫했다─을 쓰면 대학도 갈 수 있지만, 그러면 바로 취직못할 경우 위험해지니까 대학은 포기할 겁니다. 고등학교 졸업한 후 곧바로 취직할 생각입니다."
이제 겨우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이 정도로 구체적인 행동방안이 정해져 있을 줄은 몰랐다. 강철같은 의지와 질풍같은 행동력라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지 않을까.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철두철미한 아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거대하지만 닳고 닳아 잔잔한 여운을 주는 바위와도 같은 그 아이를, 웅장하지만 켜켜이 내려앉은 세월의 무게로 애잔함을 느끼게 하는 고목과도 같은 그 아이를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동생이 남긴 유일한 혈육이 바위가 천천히 바스러지듯, 고목이 스러지듯 조용히 시간의 흐름에 파뭍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 사무실에서 일하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아르바이트라고는 했지만 실상은 곤란하지 않도록 눈 닿는 곳에 두고 싶다는 어른의 욕심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권유에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회계랑 법률 자문이랑 문서 작업 정도라면 가능합니다만, 가족 경영으로 주주들에게 비난받으실텐데, 괜찮으신가요?"
나와 형님은 그 대답에 잠시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고는 빈소라는 것도 잊고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요즘 시대에 어떤 여학생이 회계와 법률 자문이 가능하다고 대답할까. 게다가 가족 경영이라니. 애초에 765프로덕션은 주주는커녕 주식상장도 못하는 약소 프로덕션이라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진심이든 농담이든지간에 그 허를 찌르는 대답에 우리는 동생이 정말 터무니없는 아이를 남겨놓고 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오겠니?"
"학업에 지장이 없는 한도 내에서 노동량에 비례하는 임금 수준이라면요."
물론 그럴 것이라 대답했다. 거기에 말은 안 했지만 생활비 지원 명목으로 좀 더 줄 생각이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그 아이, 타카기 세이야高木 聖夜는 765프로덕션에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형님이나 나나 그때는, 세이야가 그렇게 활동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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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프로덕션은 약소 프로덕션이기 때문에 험난한 방송이라도 일단 일이 들어오면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타카기 사장이나 현재 유일한 프로듀서인 리츠코는 결코 위험한 일은 시키지 않고 있지만, 돌발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다시 말해서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방송은 출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번에 들어온 방송이 바로 그러한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것이었다. 모 유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마이너 카피한 듯한 이 방송은, 지명도를 얻고 싶어하는 중하위권 아이돌들을 2~3인 1조로 묶은 후, 수영복 차림으로 남쪽 지역 무인도에 풀어놓고 2박 3일동안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면 식료품과 텐트 등의 장비를 나누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방송이 유명해진 이유는 A랭크 아이돌 몇 명이 과거 여기에 출연했던 기록이 있기 때문이었다. 소위 스타의 리즈 시절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에 의해 입소문을 타 이제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그럭저럭 인지도 있는 방송이 되었다.
그런 방송에서 지원서류를 제출하지도 않았는데 미나세 이오리와 타카츠키 야요이를 지명했던 건 분명 어떠한 목적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이에 대해 765프로덕션 사람들은 미나세 그룹의 영애와 생계형 아이돌을 대비시켜 시청률을 올려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판단하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그 가정이 정확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다른 오디션은 모두 탈락해서 동생들의 다음 달 급식비가 위험했던 야요이와, 그런 야요이를 내버려둘 수 없으며 자신을 단순히 부잣집 딸로만 여기고 있는 방송국의 태도에 열받은 이오리가 적극적으로 지원했기에 결국 출연하기로 한 것이다.
사장의 조카딸이며 765프로덕션의 잡무 담당인 타카기 세이야가 두 사람과 함께 이 방송에 출연하게 된 것은 순전히 두 사람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아이돌들은 다른 일이 잡혀있었고 유일한 프로듀서인 리츠코가 거기에 묶여 함께갈 수 없었기에, 이래저래 다방면에서 프로덕션을 지탱하고 있던 세이야가 대타를 뛰게 된 것이다. 거기에 방송 특성상 아이돌이나 스탭이 아니면 무인도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점도 작용해서 리츠코는 세이야에게 이번만 아이돌로 출연해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고, 이에 세이야는 평소와 같은 무덤덤한 태도로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PD역시 한 사람 늘어나는 것 쯤이야 허용범위라 판단하고 허락해주었다.
그리하여 무인도에 내던져진 세 사람은 여섯 팀 총 열 다섯 아이돌들과 경쟁하고 협동하면서 미션을 수행하였고, 첫째 날 저녁이 되었을 때 남은 것은 장작과 텐트 뼈대, 그리고 작살 뿐이었다. 다른 팀에 비하면 굉장히 저조한 성적이었다. 이는 비교적 나이가 어린 야요이와 이오리가 체력적 열세에 있기 때문이었으며, 그나마 체력이 있는 세이야가 직접적으로 나서기보다는 두 사람을 지원해주는 형태로만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침낭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응……."
자신들의 키 이상으로 쌓여있는 장작들을 보며 야요이와 이오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무리도 아니었다. 장작만 있을 뿐 불을 피울 수 있는 도구는 얻을 수 없었으니까. 이미 해는 뉘엿뉘엿 서쪽바다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고, 야자수를 볼 수 있는 남쪽의 섬이지만 완벽하게 열대는 아닌 무인도에는 가을의 초입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희미하게 서늘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하고 있었다. 스탭들은 그렇게 풀이 죽어있는 수영복 차림의 두 소녀의 모습을 무정하게 찍고만 있을 뿐이었다.
세이야가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그럼 불을 피워볼까."
"……네?"
"무슨 소리하는 거야? 도구가 어디있다고?"
"장작만 있으면 돼."
세이야는 그렇게 말하고는 적당한 크기의 장작을 들어올리더니, 근처 바위에다 내동댕이쳤다. 장작들은 단숨에 몇 조각으로 나뉘어졌다. 아무리 잘 마른 장작이라고는해도 내던진다고 깨지는 물건이 아니었기에, 스탭들은 놀라면서도 노련하게 무난한 원피스 형태의 회색 수영복 차림을 한 소녀가 무심한 표정으로 장작들을 작살내는 장면을 찍기 시작했다. 물론 세이야는 찍든 말든 상관없이 박살난 장작 조각들을 모아 모닥불 형태를 잡아두고는, 넓게 쪼개진 조각에 기다란 나뭇가지를 대고 맹렬하게 비비기 시작했다.
"진짜로 그렇게 불붙이려고 하는 사람 처음 봤어……."
"하면, 붙더라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이오리의 말에 세이야는 그렇게 대답했다. 도대체 언제 그런 걸 실험해본 것일까.
이 시점에서 스탭들은 세이야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과거에도 저렇게 불을 붙이려고 한 아이돌들이 몇 명 정도 있었지만, 5분도 되지 않아 모두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이번에도 저렇게 하다가 곧 포기하리라.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정확히 5분 후에 세이야는 불붙이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주변에 흔한 나무줄기와 나뭇가지로 활을 만든 세이야는 그것을 이용해 훨씬 더 빠르게 나무판을 긁어댔고 약 20분 후에는 연기를 피워냈다. 야요이와 이오리가 모아온 마른 나뭇잎으로 불씨를 살려 모닥불에 불을 붙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 광경에 스탭들은 경악했다.
"굉장해요! 세이야 언니 대단해요!"
"끈기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
"아니, 끈기만으로는 못해, 그런 거……."
이오리가 딴죽을 걸었지만 진심으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찌되었든 모닥불이 생기자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게 분명했다. 세 사람의 배에서 꼬르륵하고 소리가 났으니까. 카메라가 가까이 있었으니 소리도 녹화되었을 것이 분명했기에 이오리는 투덜거렸고, 야요이는 난처한 미소를 지었으며, 세이야는 작살을 쥐었다.
"……뭐하려고?"
"먹을 거 잡아오려고."
"……작살로?"
"응.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아니, 야요이. 이건 다녀오세요가 아니라……."
"? 아니라 뭐?"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래도 방금 전 불을 피우던 광경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했기 때문인지 야요이는 세이야가 정말로 무언가를 잡아올 것이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이미 해가 진 바다에서 전문적인 도구를 가지지 못한 10대 소녀가 무언가를 잡아올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이오리는 세이야가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언가 하는 게 훨씬 더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움직였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밖에 하지 못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세이야가 빈손으로 돌아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기 때문에 약 30분 후, 폭삭 젖은 세이야가 농어 한 마리와 참돔 두 마리에 심지어 광어까지 한 마리 잡아온 시점에서 이오리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스탭들도 마찬가지였다.
"우와! 굉장해요! 특가할인 때나 살 수 있는 생선이 잔뜩 있어요! 웃-우우─!"
"작살이 있어서 다행이었어. 히비키라면 맨손으로도 잡아왔겠지만 난 그런 건 못하니까."
"……지금 그걸 잡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굉장해."
스탭들은 진짜로 물고기를 잡으라고 작살을 준 게 아니었다. 보통 여자애들이 대부분인 아이돌이 작살을 쥔다한들 그걸로 무언가를 잡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기에, 작살은 그저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그러나 세이야는 그걸 사용해서 물고기를 잡아왔다. 속임수 같은 건 없었다. 그것은 세이야와 동행했던 카메라맨이 찍어온 영상이 증명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세이야는 작살날을 칼날삼아 능숙하게 물고기를 손질한 후 나무 꼬챙이에 꿰어 모닥불 곁에 세웠다. 그리고는 불을 쬐며 생선이 다 익기를 기다리다 문득 떠오른 듯이 물었다.
"물이 있던가?"
"없어요."
"스탭들 옆에 있는 생수를 강탈하고 싶어지는데."
"세, 세이야 언니?! 그런 말 하면 안돼요?!"
"분명 편집될 거야. 그 대사."
야요이와 이오리의 말에 세이야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시선을 돌리더니,
"그럼 코코넛을 따와야겠네."
머리카락 끝에 매달린 물방울을 흩날리며 근처에 있는 야자수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10~12m 정도는 되는 야자수 나무 끝에 올라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어! 코코넛 맞으면 아픈 정도로 안 끝나!"
자신의 말에 야요이와 이오리는 물론 스탭들까지 멀찍이 떨어지자 세이야는 나무에 매달린 코코넛들을 비틀어 따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곧바로 바로 옆 나무로 옮겨가 같은 작업을 반복하였다. 그한 작업을 두어 번 정도 반복한 결과 2박 3일 내내 버틸 수 있는 수준의 코코넛을 얻을 수 있었다.
"여기서 직접 얻은 것들이니까 아무 문제 없겠죠?"
텐트 뼈대에 야자수잎을 엮어 지붕과 바닥을 만들어 잠자리까지 완성한 후 코코넛으로 목을 축이며 세이야는 그렇게 말했다. 출연하는 아이돌이 직접 식량과 잠자리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버린 방송 사상 초유의 사태에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고 있던 스탭들을, 마치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에 몸을 실은 중년 직장인과도 같은 얼굴로 그런 질문을 던지는 세이야의 모습에 무심코 괜찮다고 대답해버렸다. 미리 선수를 친 세이야는 곧바로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그 모습에 허겁지겁 카메라맨 하나가 그 뒤를 쫓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잘 건데 뭘 찍어요. 말리지는 않겠는데 어차피 저 자는 거 찍어봤자 방송에 5초도 안 나오고 편집될 테니까 야요이랑 이오리나 찍는 게 훨씬 나을 거에요."
아이돌스럽지 못했지만 옳은 말이었다. 그랬기에 카메라맨은 텐트 밖으로 나왔다. 야요이와 이오리는 모닥불 옆에서 다른 카메라맨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식량과 물, 잠자리에 불까지 고민하고 있던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되었으니 더 이상 걱정할 게 없어서 그런지, 두 사람 다 평범한 예능방송을 녹화중인 아이돌 소녀들의 모습이었다. 그래, 이쪽이 아이돌답지. 카메라맨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른 각도에서 765프로덕션의 두 소녀를 찍기 시작했다. 세이야의 분량인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 세이야의 방송 분량은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그 여파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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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토리 언니. 지난 달 결산 이거 맞는 건가요? 여기랑 여기가 좀 이상한데요."
"응? 어디어디? ……진짜네? 어떻게 된 거지? 확인해볼게."
삐리리리.
"네, 765프로덕션입니다. ……그건 계약 위반이잖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분명 계약할 때 저희 측 아이들 분량은 최소……. 무슨 말도 안되는,"
"잠깐만 바꿔주세요. 누구 계약이에요?"
"잠시만. 유키호랑 마코토."
"아, 그놈들인가. 네, 전화 바꿨습니다. ……네. ……네. 뭐, 분량 자르셔도 좋은데 그러면 위약금 물어주셔야 하는 거 아시죠? ……계약서 3페이지 2항 보시면 나와있습니다. ……설마 진짜로 다음에 우리랑 좋은 관계 유지하고 싶으면 얌전히 물러나 같은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당신 그만한 권한 없잖아요? 그쪽 방송국 권력 계통 보니까 당신은 그냥 끄나풀 수준이던데. ……뭐, 그러시다면야 저희는 방송법 위반으로 당신을 찌르면 됩니다. 솔직히 방송국에서 당신 보호해줄 것 같지 않던데요. ……아뇨, 이 계약하고는 별개로 당신 방송 짜둔 거 보니까 검사들한테 넘겨주면 당장 물어뜯을만한 건수가 두 세 개 있어요. 그러니까……."
수화기를 통해 몇가지 법률적 용어들이 오고가는 동안 765프로덕션의 프로듀서인 아카즈키 리츠코는 초조하게 세이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세이야가 수화기를 내려놓자 리츠코가 물었다.
"어떻게 됐어?"
"일단 이번 분량은 괜찮겠지만, 다음 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일단 찍혔으니까 그리 좋은 취급은 못 받겠죠."
"역시나인가……."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아냐아냐. 네가 없었으면 이번 분량도 못 건졌을 거야. 고마워."
삐리리리.
"네, 765프로덕션입니다. ……네? ……세이야를요?"
"……?"
리츠코의 의문에 회계 시트 정산을 위해 모니터를 바라보던 세이야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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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은 절대 시키지 않는다.
이것은 765프로덕션 초대 사장인 타카기 준이치로나 현 사장인 타카기 준지로는 물론, 최고참인 오토나시 코토리와 프로듀서인 아카자키 리츠코까지 모두가 동의하는 경영방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방송국에서 온 서바이벌 프로그램 섭외는 고민할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아이돌을 태평양 한가운데 던져놓고 살아돌아오는 법을 찍겠다니. 인근에 구조대를 준비시켜두겠다고는 하지만 그 인근이라는 게 수평선 너머에 있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도구도 고작 손바닥만한 나이프 하나만 쥐어주겠다니. 조난상황이라는 현실성을 위해서라는 게 이유였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그렇지만 중견 방송국의 방송 거부 압박과 고정 게스트 권유를 이겨내기에 765프로덕션은 너무나도 약소했다. 결국 그 방송국 어느 프로그램이든 765프로덕션 소속 아이돌 세 명을 6개월 이상 고정 게스트 섭외라는 걸로 세이야는 팔자에도 없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찍게 되었다.
"걱정할 거 없어. 그쪽 언저리라면 얼어죽을 일도 없고, 일단 방송이니까 괜찮은 무인도일테니까. 정 안되겠다 싶으면 뗏목 만들어서 해류타고 오면 될 거야."
"셋찡, 그거 묘하게 사망 플래그 같아."
"……마미, 나 돌아오면……."
"우와우오우오와앗!?!?! 셋찡이 일부러 사망 플래그를 세우고 있다아아!?!"
"게다가 평소보다 묘하게 더 밝아보여! 작화가! 묘사가 왠지 좋아!?!"
"거기 쌍둥이! 불안한 소리 하지마!"
"……뭐, 여튼 다녀오겠습니다."
"어, 아, 응. 조심해서 다녀와."
그리하여 세이야는 평소처럼 소란스러운 동료들의 배웅을 뒤로 하고 태평양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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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녀는 망망대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바다 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싸구려 추리닝 운동복에 구명조끼를 입은 체 말하고 있었다.
"태평양은 분명 넓지만, 그만큼 무인도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라도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배가 침몰해서 탈출한 다음에 해류를 타고 무인도에 도착할 가능성은 의외로 높지요. 그렇다고해서 일부러 비행기에서 떨어뜨리는데서부터 시작할 줄은 몰랐지만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 되었을 법한 소녀는 흔들리는 파도에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몸을 띄우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구명조끼를 끼고 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강풍이 불어오지 않는 한 바닷물을 들이킬 가능성은 적습니다. 사실 구명조끼가 없어도 인체는 물에 뜨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몸이 떠오릅니다. 숨을 쉬기는 좀 더 힘들겠지만요. 그러니까 폭풍이 몰아치거나 무언가에 끌려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바다에 빠졌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하여튼 그런 고로 지금 제게 제일 큰 문제는 저체온증입니다. 적도 지방이라 따듯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수온은 언제나 체온보다 낮습니다. 이대로 30분만 있으면 생명에 위험한 지경이 되겠죠. 이건 제가 10대 소녀가 아니라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무인도를 찾아야 합니다. 때마침 저쪽에 섬이 보입니다. 이 절묘한 타이밍은 방송이니까 가능한 것이겠죠. 그렇다고는 해도 과연 30분 안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해봐야겠죠."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횡영으로 천천히 섬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에 횡영은 체력을 보존하기 쉬운 수영법이라고 하거나, 태평양에 식인상어가 많다고 하거나, 혹시라도 구명보트를 타게 된다면 바닷물에 반사되는 햇빛에 타지 않도록 방수시트를 뒤집어 쓰고 있으라는 등의 정보를 전해준다. 아무리 체력이 적게 들어가는 횡영이라고 해도 수영하면서 말하는 건 쉽지 않을 터인데 소녀는 쉴 새 없이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전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해안가에 도착한 소녀는 그제서야 지쳤는지 모래사장 위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춥고, 피곤합니다……. 변온동물은…… 아니지만…… 햇볕으로…… 몸을 데우고…… 움직이겠…… 습니다……."
그렇게 소녀가 가만히 햇볕을 쬐는 동안 나레이션으로 생각되는 남성의 목소리가, 지도와 함께 섬의 위치와 소녀가 가지고 있는 물품 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위치는 적도 근처의 태평양. 도구는 달랑 나이프 하나. 아무리봐도 저녁 나절이 되면 소녀가 울상을 지으며 방송포기를 선언할 것 같은 상황이었다.
"체온을 회복했으니, 이제 섬을 탐색해서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혹시라도 이곳이 무인도가 아니라면 그것만으로도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방송이니 무인도겠지요. 그렇다면 이 섬에 어떤 쓸만한 것들이 있는지을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탐색을 해야하죠."
해안가를 걸으면서 소녀는 해안의 야자수만으로도 생존에는 무리가 없기에 일단 물과 음식은 급하지 않다는 것, 우선 해가 지기 전에 불을 피워야한다는 것과 같은 생존기술적인 이야기를 하더니, 잠시 후에는 태평양의 섬들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근처 생물종의 분포와 진화론의 발전양상 등의 자연과학적인 지식을 입에 담았다. 그 해박한 지식을 그토록 담담한 표정으로, 그러면서도 결코 지루하지 않게 설명하는 모습은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그 기나긴 나레이션 아닌 나레이션의 마지막은 이 방송이 여러가지 현행 법률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다는, 무서울 정도로 논리적이고 법률적인 강도높은 비판이었다. 어떻게 방송할 각오를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 섬을 모조리 둘러본 소녀는 다시 해안가로 돌아와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나뭇가지 비비기였지만 아무래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솔직히, 신발끈으로 활을 만들어서 돌리면 훨씬 더 쉬운데, 꼴에 예능이라고 이렇게 불을 피우라네요. 이쪽은 죽을 맛인데 그놈의 시청률 따위가 뭔지. 애초에 제정신이 아닙니다, 이 방송은."
정말 그랬다. 자기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욕을 하는 출연자나, 그런 장면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는 PD나, 어느 쪽 하나 제정신인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널을 돌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30분 후라는 자막과 함께 마침내 소녀가 비비고 있던 나뭇가지 끝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불이 붙은 것이었다. 불씨를 마른 야자수 섬유줄기로 키워 만들어둔 모닥불에 집어넣자, 이제는 명확한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환호성을 질러도 될 텐데 소녀는 무덤덤한 얼굴로 모닥불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다 카메라를 바라보더니, 곧 귀찮은 듯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솔직히 야자수가 있는 시점에서 식량과 물은 모두 해결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게 영 아니꼬운지 다른 식량을 구하라네요. 그냥 편집 짜집기로 상어를 잡았다고 해도 의심하는 사람 얼마 없을 텐데 사람을 귀찮게 합니다. 네, 아쉽게도 이 방송은 연출이 없습니다. 연출을 위해 각본가를 구하는 시점에서 돈이 들어가니까 그냥 그런 거 없이 진행하는 겁니다. 밑바닥 아이돌이라 몸값 싸다고 막 굴리는 거죠."
연출이니 각본가니, 아이돌이 입에 담으면 안될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수면 위로 튀어나오고 있다.
"그래서, 흔하디 흔한 물고기를 잡고 싶지만 아무런 도구가 없어요. 히비키라면 맨손으로도 잡을 텐데 전 아무래도 거기까지는 못합니다. 굶고 싶지는 않으니까 먹을 걸 찾아보기는 할 테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10대 소녀가 이런 무인도에 떨어졌는데 손쉽게 식량을 구할 가능성은 0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코코넛으로 때우고 싶습니다만, 카메라맨이 어떻게든 방송분량을 만들고 싶어하니까 뭐라도 좀 잡아봐야겠네요."
그러더니 그 소녀는 물고기를 마비시키는 독을 가진 덩쿨식물을 빻아 집을 내더니 그걸 얕은 물에 풀어 놓은 후, 긴 나뭇가지 끝에 섬유줄기로 나이프를 묶어 만든 창으로 물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방송에는 고작 3~5분 밖에 안 나가겠지만, 실제로는 네 다섯 시간은 노력해야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실제로 소녀가 한끼 정도 되는 물고기를 잡았을 때는 석양이 해안을 뒤덮고 있었다.
"늦었네요. 그러고보니까 잠자리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물고기를 잡느라 못 만들었습니다. 코코넛으로 때웠으면 만들었을 텐데. 지나간 일을 후회해봤자 어쩔 수 없고, 무엇보다도 살아남으려면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니까, '어차피 불이 있고 열대 지방이니까 집은 없어도 돼. 게다가 물고기를 잡았잖아?'라고 생각하기로 하죠."
순간 눈을 의심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 운운한 부분에서 소녀가 굉장히 생동감 넘치는 미소를 지은 것이다. 이 방송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웃은 것 같았다. 정작 본인은 다시 무덤덤한 표정으로 전통적인 방식이라며 물고기를 커다란 나뭇잎에 싸 모닥불에 달군 돌과 함께 모래에 파뭍고 있었다. 그게 끝나자 모닥불 근처에 나뭇가지와 야자수잎으로 잠자리를 만들고는 그대로 드러누워 완전히 붉게 물든 해안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멍하니 저녁노을을 보고 있던 소녀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 이렇게 시간이 남으면 다른 아이돌들은 자기 노래나 춤을 보여주면서 인지도를 올리죠. 하지만 전 그런 거 없습니다. 애초에 땜빵 멤버……도 아니고 일반 데스크워커인데다가, 다른 아이돌들이 나오기 전에 테스트용으로 이 방송 나오는 거니까요. 솔직히 하루 종일 움직여서 노래고 춤이고 나발이고……, 뭐 막말해도 알아서 편집해주겠죠. 그러니까 노래고 춤이고 나발이고 지쳐서 하라고 해도 못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완전히 드러누워버린다. 카메라가 돌고 있으면 어떻게든 미소를 만드는 다른 아이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솔직히 이제는 아이돌인지도 의심스럽다. 그래도 재밌기에 채널을 돌릴 생각은 없지만.
그때 소녀가 무언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우는 것이라면 쉬울지 모르겠지만─♪ 슬픔에는 휩쓸리지 않아─♩"
처음 듣는 노래였다. 하지만 굉장히 좋은 노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 소녀의 노래인 걸까. 하지만 방금 전에 자기 노래는 없다고 했는데.
"……? 아, 이 노래요? 파랑새라고 우리 프로덕션에 키사라기 치하야라는 애 노래인데, 진짜 좋더라구요. 이 방송 끝나고 시간 되시는 분들은 근처 음반 가게에서 파는지 알아보세요. 네, 광고에요. 어차피 계약서에 자기 PR이나 소속사 광고해도 좋다고 했으니까 막 할 거에요."
그러면서 이번에는 좀 더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확실히 좋은 노래다. 있다가 편의점 갈 때 한 번 들러봐야지. 그런데 방송에서 대놓고 계약서 같은 걸 말해도 되는 걸까. 걱정스럽긴 하지만 묘하게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방송은 계속 진행되어 소녀가 대나무와 나무섬유줄기로 뗏목을 만들고, 야자수잎으로 돛을 만들어 섬에서 탈출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제 슬슬 끝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시계도 슬슬 그즈음이었다. 지금껏 축적한 식량과 물을 코코넛 껍질에 담아 뗏목에 묶고 키를 겸하는 노로 파도를 가르며 소녀는 말했다.
"사실 구조신호로 불을 피워두는 게 제일 안전합니다. 지나가던 구조선이나 비행기가 연기를 볼 확률이 높거든요. 이 방법은 정말로 구조될 희망이 없다고 생각될 때 쓰시길 바랍니다. 여차하면 태평양 한가운데서 해류를 타고 돌다가 아사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일사병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냥 기다리고 싶었습니다만, 이래야 시청률이 나온다고 뗏목을 만들어 탈출하라고 하더군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찍는다면서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이 방송 아무래도 오래갈 것 같지 않습니다. 뭐, 저야 출연료만 받고, 소속사 애들 고정 게스트 자리만 얻으면 되니까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제는 그 냉소적인 말투가 묘하게 정겹게 느껴진다. 묘한 매력이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수평선 너머로 배 한 척이 보이기 시작했다. 설정상 지나가는 배겠지만 분명 대기하고 있던 방송국 소속 선박일 것이다.
"이쯤되면 시청자 여러분들도 잘 알겠죠. 저거 방송국 선박입니다. 꽤 크네요. 저 정도 크기라면 화장실과 욕실 같은 시설도 있을 겁니다. 저기 타고 있는 사람들은 제가 무인도에서 고생하는 동안 선상 파티 같은 거나 즐기고 있었을 거에요. 뭐, 산다는 게 그런 거죠. 내가 고생하는 동안 있는 사람들은 여유롭게 사는 거죠. 세상 참……."
무심코 웃고 말았다. 시청자의 생각을 거침없이 대변한다. 정말 질리지 않는 소녀였다.
스탭롤과 협찬 광고가 올라오는 가운데 소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방송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요 PD님. 이 방송 아무리봐도 안될 것 같아요. 어떤 소속사가 아이돌을 이런 정신나간 방송에 던져넣으려고 하겠어요? 그리고 어떤 아이돌이 이런 오지에 떨어지려고 하겠어요? 아무래도 안 될 거에요, 이 방송. ……네? 이름이요? 처음에 말 안했나요? ……아, 안했지. 시청자 여러분. 제 이름은 타카기 세이야입니다. 잊어버리셔도 상관없어요. 아마 이게 마지막 방송출연일테니까요. 그렇게 방송국이랑 PD를 깠는데 설마 다시 부를까."
그 소녀, 타카기 세이야의 독백으로 방송은 끝이 났다. 아쉽다. 좀 더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인터넷을 돌고 있자니 방금 전 방송을 주제로 몇 가지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전부다 그 방송이 계속되기를 바란다는 글이었다. 방송국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이미 계속해달라는 글이 게시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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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쓰잘데기없이 모인 시청자들 때문에 정규방송이 되버려서,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오지에 나가서 살아돌아오는 정신나간 짓을 하고 있지요. 안 나갈 때는 국내에서 등산이랑 낚시랑, 기계공작도 하고, 농사도 도왔고, 또 뭐했더라……."
"춤이랑 노래 빼고는 거의 다 했지."
"뭐, 그래요. 애초에 이름만 아이돌일 뿐이니까요."
이오리의 설명에 세이야는 그렇게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넌 그걸로 괜찮은 거니?"
"괜찮아요. 솔직히 시청률이니 뭐니해서 안해도 될짓거리를 하라고 하면 그 방송국이랑 PD, 검사들한테 찔러서 매장시켜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고정 게스트 자리가 위험해지니까요."
"……."
"정말 괜찮으니까 마스터P는 다른 애들 프로듀스에 집중해주세요."
"……마스터P?"
"프로듀서니까요. 리츠코 언니는 로드P라고 했었는데 그냥 이름으로 부르라고해서 좀 아쉬웠어요."
"호칭은 별 상관없는데……. 정말 괜찮겠어?"
"네. 그러니까 얼른 진짜 마스터P가 되서 다른 애들을 톱 아이돌로 키우세요. 그래서 765프로덕션이 커지면 전 무사히 데스크워커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아, 응. 노력할게."
"영 미덥지 못한데……."
"그런 말 하지마 이오리. 신입사원은 언제나 미덥지 못한 법이니까."
"너 은근히 아무렇지도 않게 독설을 내뱉는구나……."
"이게 세일즈 포인트니까요. 왜 팔리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다른 애들이 나보다 훨씬 나은데 저 같은 거 팬질하고 있는 거 보면 제 팬들은 다들 제정신이 아니에요."
아이돌이 팬을 디스한다. 다른 아이돌이었다면 순식간에 인기를 잃고 바닥으로 떨어질 대사건만, 세이야가 하면 어째 다들 납득하고 넘어가버린다. 확실히 일반 아이돌의 궤도를 아득히 벗어난 존재였다.
"어찌되었든 잘 부탁드려요, 마스터P."
"그래. 잘 부탁해, 세이야."
그것이 765프로덕션의 신인 프로듀서와 일단은 아이돌인 타카기 세이야의 첫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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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창게의 세이야는 그야말로 천원돌파도 할 것 같지만 원래 제가 생각하던 세이야의 이미지는 위와 같습니다. 여튼 정식 연재본[?]는 애니마스를 기준으로 나아갈 예정입니다.
- 개인적으로 세이야를 제일 잘 써주신 분은 키루찌 님을 뽑습니다. 다들 생존에 집중할 때 아이돌스러운 모습과 그 나이대 소녀다운 심리를 묘사해주셔서 높은 점수를 드렸습니다. 참고로 부모님 비행기 사고는 닥터회색 님이 넣으신 설정이고, 원래는 구체적으로 언급할 예정이 없어 위와 같이 써두었습니다.
- 결국 썼습니다. 이걸로 세 개로군요. 스트라이크 위치스에 IS에 이제는 아이마스까지. 뭐가 되었든 다음 편은 이번 주 안에……, 나오려나……. 언제나 그렇듯 기대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아이돌 마스터] 저요? 아이돌일걸요? 아마도.
#2. 사진을 다시 찍어봅시다. 그러니까 큰아버지, 그 사진 못 써먹는다니까요.
챙!
맑
은 소리와 함께 소년이 잡고 있던 도가 바닥을 굴렀다. 후들거리는 오른손을 다잡을 생각도 못한 체,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본 듯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 소녀는 자신의 도를 칼집으로 밀어넣었다. 스르릉. 찰칵. 맑은 쇳소리를
울리며 빨려들어가는 듯한 깔끔한 동작은 소녀의 경지가 상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여인의 검에도 닿지 못함을 깨달으셨는지요?"
그말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소년이 이를 갈며 외쳤다.
"이익, 너! 너! 아버님께 말씀드릴 것이다!"
"
이런이런, 영주님께서는 남아일언중천금을 지키시는 훌륭하신 분. 여인에게 졌다하여 화를 내시는 남자답지 못한 도련님의 말씀에
기울어지실 분이 아니십니다. 설마 도련님께서는 영주님께서 그러한 소인배같은 분이라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이, 아, 크으으윽……!"
분한 듯 이를 가는 미래의 영주님의 모습에도 소녀는 그게 무슨 위협이라도 되느냐는 듯한 얼굴로 코웃음치며 대답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오늘부터 도련님의 검술스승이 된 세이야成刃라고 합니다."
*****
세이야 팬 스레 - 세이야가 대하 드라마 출연이라니(4)
412: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드라마 끝난지 아직 30분도 안 지났는데 벌써 4번째 스레 절반 가까이 왔다
413: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3천을 30분만에 채우다니. 뭐야, 이 화력 무서워. F랭크 아이돌 화력이 아니잖아.
414: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앞에 것들은 죄다 세이야 하아하아 하는 게 절반 넘지 않았냐
415:
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세이야쨔응하아하아매도해줘욕해줘디스해줘세이야쨔응하아하아매도해줘욕해줘디스해줘세이야쨔응하아하아매도해줘욕해줘디스해줘세이야쨔응하아하아매도해
줘욕해줘디스해줘세이야쨔응하아하아매도해줘욕해줘디스해줘세이야쨔응하아하아매도해줘욕해줘디스해줘
416: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슬슬 내용가지고 얘기해볼까. 나 세이야 나온다고 했을 때 타임슬립 같은 걸로 에도시대 떨어져서 생존해오는 그런 건 줄 알았다
417: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15 정신차려라.
418: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16 동감
419: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16 여기에 또다른 내가 있다
420: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연기 꽤 하던데?
421: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연기 미묘하지 않았나?
422: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생각보다 연기 잘해서 놀랐다.
423: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20, 21 호평과 비평이 교차할 때 이야기가 시작된다
424: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세이야와 설교왕님의 크로스인가.
425: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그쪽은 세이야 크로스물 스레로 가라.
426: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아까 누가 그러지 않았냐, 세이야 검도 배웠냐고?
427: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배운 것 같던데? 마지막에 칼 넣을 때랑 자세 같은 거 보니까 자세 잡혀있던데. 대역도 없고 카메라도 그대로 찍고 있었잖아.
428: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배우 속성 교육 그런 거로 가르친 거 아냐?
429: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그런 거 하면 티가 난다. 뭣보다 F랭크 아이돌한테는 그런 거 해주지도 않아.
430: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세상은 예산이 지배하니까. 생각해보니까 세이야 F랭크인데 무술액션까지 하잖아? 감독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 아냐?
431: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난 세이야의 미소를 봤으니까 그걸로 만족.
432: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하긴 서바이벌에서는 맨날 투덜거리지. 웃으면 냉소뿐이고. 감독님 GJ.
433: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누가 벌써 세이야 나오는 장면만 편집해서 올렸다 <링크>
434: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33 보러 간다
435: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33 워프
436: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33 타디스 타고 온다
437: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33 하이퍼스페이스 점프
438: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평범하게 어디로든지 문으로 다녀와라.
439: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다들 링크탔냐. 5분째 아무 글도 없어.
440: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돌아왔다. 대역없이 찍었다고 하길래 엉성할 줄 알았는데 소드마스터였다.
441: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내찌르고 비틀어서 튕겨내다니, 저거 실제로 가능한 거였냐.
442: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귀환. 검도 처음 시작한 여고생인 줄 알았는데 소드마스터였어.
443: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42 브라더
444: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중간에 저거 아무리봐도 NG나올 장면이었는데 무사히 넘어갔다. 오오 세이야 오오
445: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어디?
446: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링크 2분 10초에서 도련님 넘어지면서 찌르는 거 막는 거. 여차했으면 중상인데 그것도 막았고 애 넘어지는 것도 막았다.
447: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상대는 아역이니까 넘어지면 애드립이 안되지. 것보다 다시 보니까 진짜 위험한 장면인데.
448: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항상 하는 말이지만 왜 세이야 F랭크인지 이해가 안된다.
449:타카기 세이야: >>448 항상 하는 말이지만 왜 세이야 팬질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450: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48 동감
451: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49 여기 이단이 있다.
잠깐만.
452: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본인인가!
453: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본인이 왔다!
454: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당황하지 마라. 이건 공명의 함정이다. 세이야가 이런 데 올 리가 없잖아.
455:타카기 세이야: 본인이다. 블로그에도 여기 올렸다. <링크>
456: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왜!!!!!!!!!!!!!!!!!!!!!!1111
457: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왜!!!!!!!!!!!!!!!!!!!!!!1111
458: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왜!!!!!!!!!!!!!!!!!!!!!!1111
459: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왜!!!!!!!!!!!!!!!!!!!!!!1111
460: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왜!!!!!!!!!!!!!!!!!!!!!!1111
461:타카기 세이야: 놀라는 반응들이 왜 다들 이 모양이야. 단역이래도 연기한 거 반응이 궁금해서 검색하다 들어왔는데. 일단 아이돌이니까.
462: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그건 그렇다치고 일단 팬들 모인 스레인데 무례한 거 아니냐. 반말이라니.
463: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 같은 거 없나보네. 연예인이라고 막 나가네.
464:타카기 세이야: 새삼스럽게 뭘. 카메라 돌아가나 안 돌아가나 디스하는 건 똑같은데. 다른 애들 하는 것처럼 하면 싫어할 거면서 따지기는.
465: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이거야!!!! 이걸 원했어!!! 역시나 우리의 아이돌!!!!
466: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이래야 우리의 아이돌이지!!!
467: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62, 463 잘했다 네놈들. 훌륭한 낚시였어.
468: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어.
469: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이 톡톡 튀는 맛!
470:타카기 세이야: 역시 나 같은 거 팬질하는 인간들 제정신이 아니었나. 여튼 내일 등산하러 가니까 이만 간다.
471: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왠 등산?
472:타카기 세이야: XX산인가 다큐 찍으러. 아이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은데 회사 상황이 영 안 좋으니까. 그러니까 765프로덕션 상품 많이 좀 사주세요. 아니, 사라. 꼭 사라. 두 번 사라.
473: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XX산 거기 엄청 험한 데잖아. 진짜 아이돌이 갈 곳이 아닌데.
474: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세이야니까 괜찮지 않을까.
475: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뭐가 되었든 상품 광고는 하고 가는군. 세이야 무서운 아이!
476: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하지만 그 점이 매력이지.
477: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여튼 본인에게 저격당했으니까 스레 옮길까.
478: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다른 애들도 아니고 세이야니까 안 옮겨도 되겠지만 그래서는!
479: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우리들의 근성을!
480: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부정하는 것이다!
481: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뭐야 이 사람들 무서워
482: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일단 스레 새로 팠다. [본인을 피해 만드는 팬 디스 아이돌 스레 1]
483: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82 이동할 것을 강요받고 있는 거다!
484: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82 이러면 이동할 수 밖에 없잖아! 너도! 나도!
485:타카기 세이야: 아, 말하는 거 잊었는데, 나 4화 뒤에 죽어. 단역이라.
486: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스레가 닫히고 3시간이나 지나서야 그런 중요 정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뿌리고 가는 너란 아이돌은 정말!
487: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이 맛에 우리가 팬질을 합니다.
*****
"밖에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고, 저는 폐산장에서 비를 피하고 있습니다."
번쩍. 콰르르릉! 섬광과 굉음이 울려펴졌건만 그 소녀는 바깥 상황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
누가 보면 추리물이나 호러물의 시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닙니다. 그냥 흔해빠진 케이블 채널 등산 다큐멘터리입니다.
하산하는 길에 폭우로 길이 끊어지고, 같이 있던 촬영팀과도 떨어져버렸습니다. 심각하게 위험한 상황이기는 한데, 지금 여러분들은
따듯한 방구석 소파나 어디나 하여튼 편하게 안거나 드러누워서 바보상자에 나오고 있는 저를 바라고 계시겠죠. 몇몇 분들은 옆에
컴퓨터도 놓고 게시판을 불태워가고 있을 것 같군요."
덜컹덜컹. 두드드드드. 몰아치는 장대비가 썩어부스러져가는 지붕과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제법 건장한 사내들도 움찔거릴 광경이었지만 소녀는 시큰둥한 표정을 바꾸지 않은 체
작디작은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던져넣었다. 설마하니 이 폭풍우 속에서 야생에서처럼 불을 피운 것일까.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이 불은 라이터로 붙인 겁니다. 그 정신나간 서바이벌 방송도 아닌데 뭐하러 고생하면서 불 피우겠어요? 그러니까
산에 가시는 분들은 라이터든 성냥이든 물에 젖지 않도록 비닐로 싸서 보관해 가방 구석에 넣어두는 게 좋습니다."
그
런 말 해도 되는 거냐, 라고 묻고 싶지만 정작 발언자는 '뭔가 방송하기 껄끄럽다 싶으면 PD가 알아서 편집하겠죠.'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그런 투덜거림까지 다 방송하고 있다는 걸 알면 저 소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소녀가 순간
멈칫하더니 고개를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야생동물들이 무언가를 느꼈을 때 귓가를 쫑긋거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소녀는 곧바로 잽싸게 가방을 챙겨일어서 폭우가 몰아치는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상황이 좋지 않네요. 곧 무너질 것 같습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괜찮은 바위 밑을 찾았어야 했는데 마음이 급해서 눈에 보이는데로 들어온 게 잘못이었습니다."
흔
들리는 화면 너머로 귀찮게 되었다는 듯한 소녀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우르르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멈춘 카메라 너머로 산장이었던 잔해물들이 보였다. 그 모습에 소녀가 낙담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들려온 건 작은 한숨 뿐이었다.
곧바로 카메라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것 같았다.
"등산복은 대체적으로 방수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체온을 빼앗긴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합니다. 제일 좋은
건 동굴이고, 다음으로 커다란 바위 밑, 마지막으로 잎이 우거진 나무 아래입니다. 어디든 적당하다 싶으면 들어가면 됩니다. 뭐,
지금 같은 상황에 그런 곳에 들어가면 야생동물들이 먼저 진을 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냅다 쳐들어가서 죽으나 비 맞다가
저체온증으로 죽으나 마찬가지니 이왕이면 생존확률이 높은 쪽에 거는 게 낫겠지요. ……등산 다큐는 어디로가고 조난 다큐가 되버렸는지
모르겠군요."
투덜투덜거리면서도 소녀는 묵묵히 폭풍이 몰아치는 어두운 산길을 거침없이 헤쳐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꽤 커다란 나무둥치 밑에 자리를 잡은 소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새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적당한 벽을 만들고 불까지
피워놓고 있었다. 꽤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눈매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빗물이 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무난하기
비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0분 정도 방풍벽을 만들고……, 불을 피운다고 난리를 쳤더니…… 피곤하네요……. 뭐,
이렇게까지 해놨으니까……. 이제 한숨 자도 얼어죽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1분 뒤에 광고 하나 나오고 대충
마무리지으면서 방송 끝날 거에요. 나머지 분량은 대충 때우겠죠……. 솔직히 이 상황 방송 분량 잡아도 10분도 안 나올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일단 전 자겠습니다……."
소녀가 말한대로 곧바로 광고가 지나가고, 소녀와 제작진이 모두 무사히
산을 내려왔다는 것과 함께 방송은 끝이 났다. 그 소녀가 말했던 조난 장면은 약 15분 정도였을까. 하지만 그 시간이야말로
진국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
이오리의 투정과 함께 있는 다른
아이돌들─후타미 아미, 후타미 마미, 그리고 타카츠키 야요이의 말상대를 하며 프로듀서는 살짝 찔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사무실
문고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불이 꺼진 사무실 안에서 침통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있는 코토리의 뒷모습을 본 순간 멈칫했다.
"네. ……네. 그럼 다음 기회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찰칵. 수화기가 내려가고 형용할 수 없는 잠시 감돌았다.
"어, 오토나시 씨. 혹시 오디션은……."
"……네. 전멸입니다."
찰칵. 이번에는 야요이가 사무실 불을 켜는 소리였다.
"납득 못해! 어째서 이 미나세 이오리를 뽑지 않는 거야?!"
"그런 말 해도 뽑는 쪽은 저쪽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흥. 보는 눈이 없는 걸 거야. ……아니면 누군가가 엉터리라서라던가."
"……남탓하지 마라."
이오리의 투정에 프로듀서는 살짝 찔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고, TV 앞 소파에 누군가가 누워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세이야구나."
회
사에 타카기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둘이나 되기에 본의 아니게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서로가 그걸 신경을 쓴 적은 없었다. 애초에
세이야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모두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고, 자신을 어떻게 부르든 별 신경쓰지 않는 소녀였으니까.
어
찌되었든 세이야는 누워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고 있다고 해야할까. 하긴, 폭풍우가 몰아치는 산에서 내려온 게 바로 엊그제다.
말이 내려왔다지 들고 있던 카메라에 찍힌 장면들을 보면 거의 조난상황에서 생환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 고생을 했으면 하루쯤
푹 쉬어도 뭐라 하는 이가 없을 터인데 세이야는 오전 중에 회사에 와서는 오후 중에 밀려있던 잡무─세이야는 이것이 자신의
본업이라고 말한다─를 해치워놓고 저녁나절에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코토리가 사무실 불을 꺼뒀던 건 침통한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 소녀를 위한 배려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렇긴 하지만…….
"침낭은 어디서 가져온 거지……."
"협찬받았던 물건입니다."
"어, 깼어?"
"방금 전에요."
프
로듀서의 물음에 세이야는 여전히 피곤한 듯한 음색으로 그렇게 대답하며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마치 주일 내내 야근과 추가업무로
녹초가 되어 주말 늦게 일어난 중년 아저씨 같았다. 문제는 그게 어느 정도 맞는 표현이라는 것이었다. 서바이벌 출연을 대가로 받은
고정 게스트 세 자리를 765프로덕션 아이돌들이 시간에 맞춰 돌아가며 출연하는 걸 제외하면 모두가 이번 달 내내 모든 오디션에서
떨어진 상황에서 그나마 제대로 계약을 맺고 일을 나가는 건 세이야 뿐이었으니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할 수 있었다.
꿈틀거리며 일어나 침낭에서 기어나온 세이야는 능숙한 솜씨로 침낭을 갈무리해 소파 한켠에 밀어놓은 후 물었다.
"오디션 다 떨어진 건가요, 마스터P?"
"……응."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사고라도 치지 않는 이상 이렇게 떨어질 리가 없을 텐데요. 하다못해 이오리는 쉽사리 떨어뜨리기도 힘들 텐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니까."
"저기, 그거라면 혹시……."
두 사람의 의문을 해결해준 것은 코토리가 건네준 사진다발이었다. 선재宣材사진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책상 위에 펼쳐진 사진들을 본 순간, 두 사람은 말을 잃었다.
"이게 선재사진……?"
"응? 왜 그래, 오빠?"
"아니, 이거, 선재사진이지?"
"응. 맞아."
"지금까지 이런 걸 계속 보냈단 말야?!"
넘
어질 것 같은 하루카, 완벽하게 굳어있는 유키호, 발레 자세의 타카네, 마릴린 먼로와 같은 아즈사, 전신복을 입은 아미 마미
쌍둥이 등등, 전부다 도저히 선재용 사진이라고 볼 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그렇기에 프로듀서의 외침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문제는
이것이 사장의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이었다.
"큰아버지……."
모 유명 게임 제작사의 공식 답변 글자 그림과도 같은 포즈로 눈가를 가렸던 세이야는 작은 한숨을 내쉰 후, 평소처럼 어딘가 해탈한 듯 하면서도 냉소적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다시 찍어야겠네요."
"역시 그렇지?"
"연예인들 장난사진 같은 사진을 선재사진으로 쓸 수는 없으니까요."
"사장님은 무진장 좋아하시던데 그래도 돼?"
"큰아버지한테는 설교해둘 테니까 괜찮아."
"뭐 그렇다면야. ……어? 설교?"
마
미가 되물어 왔지만 세이야는 이미 책상 앞에 앉아 수첩을 뒤지며 알고 있는 카메라맨의 연락처를 찾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프로듀서는 다른 아이돌들의 스케줄을 확인해보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번 달에 스케줄을 확인해야하는 건 고작 네 사람뿐이지
않던가. 뭘 어떻게 하든지간에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자유롭게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는 말만 놓고 보면 좋은
일이지만, 그게 아이돌의 시간표라고 한다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노력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는 프로듀서의 귓가에 리츠코의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저기, 문 좀 열어줄래─?"
"아, 네!"
가장 먼저 달려나간
야요이가 문을 열자 리츠코가 커다란 행거를 밀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걸려 있는 것은 지난 번에 큰 돈을 들여 만든 맞춤 무대
의상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멋진 옷을 입고 무대에 서는 거구나.' 하는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 법한 의상들이었다. 하지만
그 의상을 본 순간 세이야의 표정이 굳었다.
"맙소사……."
"왜, 뭐야, 뭔데? 왜 보자마자 그런 반응인데?"
"리츠코 언니, 그 의상 그때 얼마라고 했었죠?"
"이거? 분명 XXX정도였나? 뭐, 회사 자금 거의 다 썼……는데……. 왜?"
대답을 듣자마자 회계 장부를 뒤적이는 세이야의 모습에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리츠코가 질문을 던졌고, 장부에 정신이 팔린 세이야 대신 대답한 것은 프로듀서였다.
"아무래도 선재사진을 다시 찍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네? 어째서요? 찍은 지 한 달도 안된 사진들이잖아요?"
"이걸 봐봐."
"……확실히 이게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서도……."
"최고가 아니다 정도가 아니에요. 저건 아무리봐도 선재용이 아니라구요. 정말 큰아버지들 센스는 두 분 다……."
"거봐. 세이야도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으로 새롭게……."
"딸이라뇨! 아직 그런 나이 아니거든요?"
"아니, 그러니까……."
"간당간당하네요. 열두 명 사진 찍으려고 하면 간당간당해요."
견적이 나왔는지 세이야는 장부를 덮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가, 하고 고민하던 프로듀서가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열두 명? 너는?"
"……? 절 왜 찍나요?"
"아니, 아이돌이잖아, 너도."
"……아."
"아, 가 아니지 아, 가."
"하지만 마스터P. 제가 하는 일들은 아이돌 영업하고는 백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데요."
"그래도 아이돌이잖아."
"뭐, 일단은, 그렇네요."
"게다가 저기 의상 열세 벌이잖아. 네 것도 있다고."
"……아아, 맞다."
765에서 아이돌이라는 자각이 제일 부족한 건 아마 세이야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이 대화를 듣고 있던 이들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저까지 끼면 예산이 부족해지는데요?"
"음……."
"아, 지난 번에 들어온 일주일짜리 록키산맥 서바이벌 하고 오면 자금이 생길 것 같기는 하네요."
"릿짱! 셋찡이 뭔가 무서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어!"
"잠깐, 세이야! 그러지 마! 안 그래도 될 거야! 고정 게스트 자리 있으니까 거기서 나오는 출연료 합치면 되니까!"
"합쳐도 부족해요. ……이참에 작정하고 남극 다큐팀하고 한 번 교섭을 해봐야 하나. 이오리. 미나세 그룹하고 교섭자리 좀 만들어줘."
"……파파랑 오라버니들 힘을 빌리려는 거야?"
"아니, 자리만 만들어주면 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오오, 셋찡이 권력과 힘을 합치려고 해!"
"우리는 지금 전설의 시작점을 보고 있는 것인가!"
"거기 쌍둥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렇게 한바탕 폭풍같은 회의가 지나가고, 결국 회사자금 여유분을 총동원해서 사진을 다시 찍는다는 결정이 나오고서야 사무실은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까 지난 번에 받은 카메라 있지 않아?"
"……어, 그러 네."
이오리의 물음에 세이야는 잠시 책상 아래를 뒤지더니 정규 카메라맨들이 들고 다니는 거대한 카메라를 꺼냈다. 대형 보온병만한 엄청나게 커다란 렌즈까지 달려있는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
"오오, 셋찡! 카메라맨 같아!"
"찍어줘! 찍어줘!"
찰칵. 찰칵.
""진짜 찍었다?!""
"디카니까. 필름 나가는 것도 아니니까."
"에에, 그래도 뭔가 포즈 같은 거 취하고 싶었는데~"
"맞아맞아!"
"어차피 편하게 찍는 사진이니까 그냥 찍어도,"
찰칵.
"괜찮, 뭐야, 찍은 거야?"
"응."
"뭔가 말이라도 하고 찍어!"
"어라, 사진 찍으시, 와아! 카메라 굉장히 크네요!"
찰칵.
"헤?"
"음, 협찬으로 받은 물건치고는 그럭저럭 괜찮네, 이 카메라."
"벌써 찍으신 건가요?"
"응."
"협찬이면 거의 공짜로 받은 거니까 그럭저럭 같은 단어 쓰지마."
"이미 방송에서 그럭저럭이라고 했으니까 괜찮아."
"……사진이나 보여줘. 어떻게 나왔는지는 보고 싶으니까."
"저도 보고 싶어요."
반
쯤 포기한 듯한 이오리와 살짝 기대한 듯한 얼굴로 타박타박 다가오는 야요이, 그리고 어느 새 등 뒤에서 다가온 쌍둥이들에게
둘러쌓인 세이야는 시험삼아 찍은 거라 엉망이니 곧 지울 거라며 별다른 저항없이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오오……."
"셋찡 카메라 공부도 했어?"
"시험삼아 조금."
"시험삼아 조금 한 수준으로 이렇게는 안 나와."
"이렇게 잘 나온 사진 보는 건 오랜만이에요~"
활기차고 유쾌한 아미와 마미. 세련되면서도 자연스럽게 귀여운 이오리. 밝은 미소와 빛나는 눈동자가 매력적인 야요이. 사진 속의 소녀들은 각자의 매력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
"……굉장하다. 진짜 잘 나왔어."
"프로듀서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세이야 언니 대단해요."
"음, 세이야. 혹시 선재사진 한 번 찍어볼래?"
프로듀서 곁에서 사진을 본 리츠코가 그렇게 묻자 세이야는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대답했다.
"찍어보기야 하겠지만, 별로 기대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렇게 좋은 건 안 나올 테니까. 아미, 마미. 도와줘."
""예스 캡틴!""
그
리하여 잠시 후, 화이트보드가 걸려있던 사무실 한 켠에 흰색 전지로 배경삼고 비닐우산을 반사판으로 삼은 간이 스튜디오가
완성되었다. 별다른 의상이 없었기에 일단은 지금 입고 있는 옷 그대로 찍기로 하였다. 결과는 예상 외, 아니 어찌보면
예상대로였다.
"……그냥 이대로 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때 리츠코?"
"그러게요. 이 정도라면 굳이 스튜디오까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그래도 프로가 찍은 사진에 비하면 한참 멀었어요. 그리고 이런 빈약한 사진 제출하면 자기네들을 뭐로 아느니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이것들은 그냥 개인소장만 하는 게 나을 거에요."
이
미 예약도 잡아버렸고 말이죠. 그렇게 말하며 세이야는 카메라를 정리했고, 아미와 마미, 그리고 야요이는 간이 스튜디오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련의 작업들이 모두 끝나자 세이야는 소파 구석에 밀어두었던 침낭을 들고는 구석 소파로 향하며 말했다.
"그럼 전 조금만 더 잘게요. "
"아, 응."
"에에, 셋찡 놀자~ 놀자아~"
"맞아맞아. 오늘 미라보레아스 잡는 거 도와준다고 해놓고서는~"
"얘들이, 세이야는 계속 일했으니까 쉬게 놔 둬."
""부우~ 릿짱 짠돌이~""
"누가 짠돌이야!"
"진정해 리츠코. 그리고 너희들도 장난 그만 치고."
""네에~""
꾸물꾸물 기어들어간 침낭 속에서 천천히 멀어져가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이야는 다시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
이러니저러니해도 역시 아직은 아이들인가.
분
장에 가까운 화장을 하질 않나, 가슴에 공을 잔뜩 집어넣지를 않나, 어울리지 않는 드레스에 슬릿까지 넣지를 않나. 물론 그렇게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면서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게 그 나이대 아이들이니까 혼내지는 않았다. 게다가 원래 그렇게 컨셉을 잡아줘야하는
프로듀서가 초보나 다름없으니, 이건 내 책임이기도 하다.
그래도 모두 다 무사히 찍을 수 있었다. 다만 리츠코는 뭔가
불만이 남은 듯한 얼굴이었다. 왜 그런가 물어보니 세이야가 찍은 사진과 비슷하다나. 사진의 완성도 같은 건 물론 비교할 수
없었지만 구도나 분위기 같은 건 별 차이가 없어서 그쪽을 그대로 썼어도 되지 않았나 하는 고민인 듯 했다. 예산을 생각해야하니
복잡한 심정이겠지.그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기에 다음에는 그러도록 해보자고 하고 넘겼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개인사진 촬영 최대의 난관은 세이야였다. 물론 사고를 쳤다거나 이상한 구도를 잡은 건 아니었다. 문제는 어떤 컨셉을 잡던지 간에
그럭저럭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남유럽 해안가를 배경으로 하면 좋을 것 같은 새하얀 원피스도, 힙합 스타일의 펑퍼짐한 후드티도,
남성적인 정장 스타일도, 심지어 인형옷까지 모두 사진을 찍으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한 사람 씩
여러 복장을 추천하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인형놀이 하듯 온갖 의상을 입혀보는 경지까지 가게 된 것이다. 카메라맨까지도 참가했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정한 의상은 반팔 블라우스에 청바지, 악세사리로는 단순한 디자인의 금색 목걸이와
팔찌 하나라는 심플한 복장으로 찍기로 했다. 단추를 두 개나 풀어서 쇄골이 훤히 보이는 복장이었지만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휴일을 맞이한 커리어 우먼의 캐주얼한 복장 같다는 의견도 있었고, 어른스럽게 꾸며본 소녀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전자
쪽에 가깝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이런 촬영은 평소 세이야가 하는 일에 비하면 휴식에 가까웠으니까.
"휴식이라면 휴식이죠. 마지막에 인형놀이만 안 했었다면."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세이야는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그렇긴 하다.
"여튼, 사진도 다들 괜찮게 찍었으니까 일거리 좀 팍팍 물어와요. 그 텅 빈 스케줄 수첩을 가득 채워주세요."
"윽, 말 안해도 알아."
"믿어요. 힘내요, 마스터P."
"너 이럴 때만 미소 짓기냐……."
"써먹을 수 있는 건 다 써먹어야죠."
방금 전 보여줬던 아이돌다운 미소는 어디로 날려먹었는지 곧바로 시니컬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정말 이래저래 종잡을 수 없는 아이다.
여
튼 세이야 말대로 사진도 제대로 된 걸로 찍었으니 이제 열심히 일을 따와야지. 힘들 거라는 건 알고 있다. 목표는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모두 톱 아이돌이니까. 하나하나 차근차근일지 단숨에 와장창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내가 일을 얻어와야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힘내요. 믿고 있으니까."
"응."
최근에서야 알게 된 냉소적인 미소 너머에 있는 격려의 눈빛에 대답하며 나는 수첩을 집어넣었다.
*****
- 신이다 님의 그림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렇게 2화를 쓰게 되었습니다.
- 선재사진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는 없더군요. 적당한 단어가 있다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 다음 모바게가 신데마스를 내줄 거라 믿습니다. 네이버 지분을 모조리 흡수할 수 있는 최강의 패라구요. 안 뽑을 리가 없어요.
- 내용 축약이 심하고 세이야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면 제대로 보신 겁니다. 이건 팬픽이니까요 <-
- 아이돌이 나왔으니까 포병은 3월로 미뤄질 것 같은 예감이 무럭무럭 솟아나고 있습니다. […]
- 내일 수강신청과 동생놈 컴퓨터 부품구입을 위한 용던 레이드가 있는 날. 잘되길 바랍니다.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아이돌 마스터] 저요? 아이돌일걸요? 아마도.
#3. 인생 원래 하기 싫은 일은 제끼는 거에요. 근데 이런 거 왜 하냐구요? 알면서 왜 물어요. 돈 때문이지. 안 굶어죽으려면 별 수 있나요. 그러니까 회사 애들 물건 좀 사줘요. 싫으면 말고요. 강요는 안 해요.
청명한 하늘 아래 새하얗게 빛나는 건물들. 골목 사이사이 수로를 타고 움직이는 곤돌라. 그리고 그 곤돌라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미소와 활기.
누
구나 이름을 말하면 알 수 있는 지중해 도시 베네치아. 로마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역사 깊은 도시에서 그 소녀─타카기 세이야는
곤돌라에 타고 노를 젓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무덤덤한 표정은 과연 이 소녀가 아이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하
지만 결코 불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되려 현지인마냥 익숙하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곤돌라 위에 서 있는 모습도, 노를 젓는 자세도 익숙했기에 더더욱 그러하였다. 문득 예전부터 간직해왔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과연 저 소녀가 서투르게 처리하는 일은 뭐가 있을까.
"베네치아에서 방송 하나 찍는다고 하길래 뭔가
했더니, 이런 거였습니다. 야생에 내던져진 건 아니니까 괜찮은 거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 이 곤돌라라는 건 원래
건장한 남성들이 힘차게 젓는 물건입니다. 저 같은 10대 소녀들이 움직이기에는 상당히 힘든 물건이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쉬엄쉬엄 노를 젓는 세이야의 얼굴에 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적당히 노를 젓다가 속도가 조금 난다 싶으면 천천히 강물의
흐름을 타고, 속도가 떨어지면 다시 노를 젓다가 쉰다. 확실히 힘이 부족한지 곁을 스쳐지나가는 다른 곤돌라에 비하면 상당히 느린
축이었지만 그것을 신경 쓰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Buon giorno!"
"Buon giorno─."
되려 늘상 해오던 일인 것마냥 스쳐지나가는 현지인들의 인사에 당황하지 않고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하는 모습은, 누군가에게 베네치아 주민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
사실 이렇게 곤돌라를 몰기 위해서는 몇 년 간 전문교육과정을 수료해야 합니다. 뱃사공의 업무 중에는 베네치아 가이드도 있기
때문이죠. 거기에 최소 4개 국어는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서는 쉽다고 생각합니다.
한심한 일이죠."
거기까지 말한 후 세이야는 크게 팔을 휘저어 큰 수로를 향해 방향을 꺾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분명 이 방송 제작한 PD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이 방송 기획한 게 분명합니다. 노를 저으면서 베네치아 가이드까지 하라니. 이게 전문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건 전혀 몰랐을 게 분명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유유자적 다리 아래로 지나가던 세이야는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냉소적인 코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
그러니까 전 제가 아는 것들만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모르는 것들은 PD가 알아서 해설을 넣든지 어쩌던지 하겠죠. 그래도
궁금하다 싶으신 분들은 인터넷 찾아보세요. 아니면 베네치아 관광책자라도 뒤져보시던가요. 그 정도 노력은 할 수 있죠? 적어도 이
재미없는 교양방송의 시청자라면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는 사람들일 테니까 그 정도 쯤은 알아서 할 거라고 믿습니다."
터무니없는 폭언이었다. 교양지식을 전해야할 방송에서 지식은 알아서 찾아보라는 말을 하다니. 방송국에 항의라도 할까. 하지만 그 생각은 곧바로 이어진 세이야의 해박한 설명에 사라졌다.
베
네치아의 역사, 기후, 주변 국가들과의 정세, 유적들의 학술적 문화적 가치, 주민들의 생활, 산업, 관광명소, 특산품 등 과연
언제 저런 걸 공부했을까 싶을 정도로 방대한 지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만 결코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었다. 명쾌하고
깔끔하며 자연스러운 설명을 듣고 있자면, 이 소녀가 사실은 앞서 말했던 전문교육과정을 수료한 후에 방송에 임한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뭐, 아는대로 일단 나불거리기는 했습니다만, 백과사전 한 번 훑어보면 다 써있는 내용이라는 걸 아실 겁니다. 인터넷에서 검색 한 번만 해도 다 알 수 있는 내용들이지요."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이야가 했던 것처럼 설명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리고 뒤이어진 칸초네는, 과연 누가 저 아이가 F랭크 아이돌이라는 걸 믿을까 싶을 정도였다. 듣는 순간 이거다 하는 느낌은
없었지만, 정확한 발음과 생명력이 느껴지는 탄력있는 리듬으로 이탈리아 뱃사공들의 화려하고 흥겨운 노래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자연스레 소화해내는 모습을 본 순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주민들이 흥겨워하며 끼어들어 함께 노래를 불러주고 앵콜까지 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노래는 치하야가 저보다 더 잘 부릅니다. 이런 거 할 줄 알았으면 불러왔을텐데 말이죠. ……아, 물론 PD가 제작비 절감 운운하며 허가 안해줬을지도 모르겠군요."
세이야는 비웃듯 피식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 대화를 편집없이 틀다니. PD도 제법이다. 아니면 익숙해진 것이던가.
여하튼 그렇게 지루하지 않은 베네치아 안내를 끝낸 소녀의 곤돌라가 정박지에 도착했다.
"
이걸로 제 일은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느긋하게 관광을 즐기고 싶지만 곧바로 귀국 비행기를 타야합니다. 첫날에도 저녁 늦게
도착해서 다음 날 새벽부터 촬영하더니 마지막날도 이렇군요. 제작비 아끼려고 빡빡한 시간표를 만든 게 분명합니다. 그래도 돌아가는
비행기는 비즈니스 클래스니까 좀 낫겠죠."
노를 놓고 배에서 내린 후 천천히 기지개를 펴며 세이야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허리에 손을 얹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음 번에 베네치아에 올 때는 느긋하게 즐기다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돌답지 않은, 그야말로 주변에 흔한 10대 소녀의 미소와 함께 화면이 멈추고, 스탭롤과 협찬회사 이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미소는 세이야의 등 뒤로 보이는 베네치아의 모습과 잘 어울렸다.
*****
프로듀서와의 대화를 끝내고 이제 차에 탈까 하는 유키호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하던데."
"아, 후훗, 고마워."
기
자재를 정리하고 온 세이야의 칭찬에 유키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무대 연출을 비롯한 아이돌 활동 전반에 일가견이 있는
세이야가 저런 말을 했으니 충분히 괜찮았던 듯 하다. 본인도 아이돌이니까 전문가일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돌 활동과 무대 연출은 전혀 다른 분야다. 그 모두에 통달한 사람이 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그런 사람 중
하나인 세이야가 하는 말이니 신뢰할 수 있다.
"물론 공포증이라고 해도 냅다 도망친 건 감점이야. 라이브까지 망쳤다면 당장 아이돌 그만두고 심리치료부터 받으라고 했을 거야."
"하윽……."
가
차없는 지적이 푹 하니 꽂혔다. 그래도 촌철살인의 폭풍이 아닌 게 어딜까. 언젠가 모 PD와의 마찰로 법정 소송 직전까지 갔을
때, 작정하고 준비해서 그 PD가 소속된 방송국의 법률자문단(한 사람이 아니었다)을 파죽지세로 갈아버리고 뒤에 0이 상당히 많이
붙는 합의금을 뜯어내던 세이야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유키호는 마음 한 구석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괴로운 듯한 신음과 함께 작아지는 유키호의 모습에 세이야는 피식 웃고는 물었다.
"이제 좀 자신감이 생겼어?"
유키호가 고개를 돌려보니 팔짱을 낀 세이야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아니. 아직은 잘 모르겠어."
세이야의 질문에 유키호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생
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겠다. 프로듀서 덕분에 이번 후루사토 마을 잔치는 어찌어찌 무사히 넘겼지만,
그렇다고해서 모든 걸 다 극복했느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성인 남성이 두렵고 개가 무섭다. 한 발짝 나아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계속 두려워했던 걸 모두 극복해낸 건 아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리라.
문득 시야에
세이야의 신발이 보였다. 가로등을 등지고 있어 윤곽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완전히 헤지고 닳아빠진 운동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이돌의 신발이 아니라 체육계 부활동을 하는 남학생의 신발 같다. 약 한 달 전에 중소 메이커에서 협찬 받은 거라고
얘기했던 게 기억났다. 고작 한 달만에 저렇게 헤진 것이다. 그만큼 격렬한 활동들을 했으니까 저렇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유키호가 생각하는 건 신발이 아니라 신발의 주인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평정심을 유지하며 당당한 태도로 온갖 고난과 역경을 뚫고 다니는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
부럽다. 언제쯤이면 나도 저렇게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저렇게 당황하지 않고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을까.
"나처럼 되고 싶어?"
마치 마음 속을 읽고 있었던 것처럼 날아든 세이야의 말에 움찔하고 말았다. 정곡을 찔렀다는 걸 알았는지 세이야는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나처럼 될 필요 없어. 되서 뭐하려고. 그리고 나처럼 됐다가는 잘 날던 비행기에서 내던져질걸? 그리고……."
전혀 농담 같지 않은 말을 농담으로 던지며 세이야는 허리에 손을 얹고는, 방송을 끝낼 때 가끔 보여주는 담백하고 수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잘했어. 그렇게 계속 해나가면 돼."
"……응. 고마워."
"그런 고로 마스터P가 유키호를 위한 길거리 라이브를 팍팍 물어오도록 찔러볼까."
"아, 우아, 아니, 그건 좀……."
"마스터P─."
"응? 왜?"
"다음 번 유키호 일거리로 괜찮은 걸 추천할까 해서요."
"자, 잠깐?! 세이야! 세이야?!"
평소에는 보기 힘든 그 나이 또래 소녀다운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하는 세이야. 당황한 얼굴로 그런 세이야를 막는 유키호.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물음표를 띄운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밤하늘 아래 울려퍼진다.
그렇게 아이돌 소녀 하나가 한 걸음 내딛은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
[후하하하하하하!!! 드디어 쓰러지는 것인가 지구방위대!]
"큭, 헷! 이걸 어쩌나! 아직은, 크흑, 충분히 싸울 수 있는데!"
[그 걸레짝 같은 몰골로? 후, 후흐흐, 후흐하하하하하하하하!!!!! 가소롭구나! 정말로 가소로워! 그 정도로 사천왕 중 하나인 이 파이프 백작에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서
있는 것조차 힘든 것 같은 레드의 외침을 허세라 생각했는지 파이프 백작은 등 뒤에 달린 파이프에서 소름끼치는 소음과 함께 회백색
탁한 연기를 내뿜어댔다. 유해물질로 이루어진 독한 연기에 다섯 명의 지구방위대원 모두 기침을 했다. 최첨단 기술을 집약한
마스크로도 모두 걸러지지 않을 정도로 독한 연기였고, 그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대원들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이미 유해물질에 면역이 생긴, 혹은 유해물질로 이루어진 파이프 백작의 병사들이 지구방위대를 조금씩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하압! ㅤㅋㅡㅅ, 쿨럭! 그 애는, 아직인가!"
"언제나처럼! 핀치일 때! 콜록! 도착하겠지!"
"지금이 그 핀치인, 크ㅤㅎㅜㅂ! 것 같은데!"
"콜록콜록! 어쩔 수 없잖아! 크흠! 그 애는 공무원, 이니까!"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대원들은 애써 농담을 주고받으며 희망을 북돋았다. 쓰러지고 싶었지만 지금은 안된다. 여기서 쓰러지면 파이프 백작을 비롯한 악의 조직 다크 스웜의 군단은 지구를 잿더미로 만들고 모든 생명체를 몰살시킬 것이다.
그리고 지구방위대원들을 위해 신무기와 새로운 슈츠를 가져오고 있을 그 소녀를 위해서라도 버텨야 한다.
[호오. 그런가. 어리석게도 그년이 도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는 거로군.]
대
원들의 대화에 파이프 백작은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와 동시에 회백색 연기 위로 어디선기 쏘아진 빛이 영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영상 속에는 지금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을 UN이 개발하여 지구방위대에 제공한 비행정의 모습이 보였다. 비행정은 지금 대원들을
괴롭히고 있는 연기와 비슷한 회백색이었지만 햇빛에 빛나는 아름다운 유선형 동체는 결코 같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비행정의 앞에는 탁한 연기를 뿜어대며 푸른 하늘을 더럽히고 있는 수백 척의 공중전함들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
"녹철함대?!"
"그럴 리가 없어! 지난 번에 모두 파괴했을 텐데?!"
"모두들, 속지마! 조작영상일 거야!"
[후후후후후. 조작이라고? 안타깝지만 녹철함대는 모두 복구했다. 그리고 네놈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그년은 말이지…….]
파
이프 백작의 음산한 웃음소리와 함께 영상 속 공중전함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목표는 함대와 비교하면 티끌과도 같은 작은 비행정.
폭풍과도 같은 공격에 급하게 방향을 꺾는 비행정의 모습이 포착되었지만, 어디로 가든 하늘을 불꽃과 폭연으로 뒤덮는 대공포화에 그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함대의 대공포화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조각 하나라도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지 고출력 레이저까지 내뿜으며 비행정이 있을 만한 공역을 모두 불사르기 시작했다. 광기와 집착마저 엿보일 정도로 촘촘한 화망이었다.
[하하하하하하!!!! 불타라!!!! 불타올라라라!!!!! 드디어!!! 드디어 그년을 죽였다!!!! 우리의 계획을 끈질기게 방해하던 그년을 드디어!!!!!!!!!]
아
무리 열세에 몰려있다고 하더라도 숙적인 지구방위대원들이 눈앞에 있건만 파이프 대왕은 그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영상을 보며
광희난무하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연극이나 거짓말을 하는 듯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거짓말일 거야."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언제나 시니컬한 태도로 툴툴거리지만 망설임없이 도움을 주던 그 아이가 죽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모두의 마음이 절망에 물들기 시작한 순간,
<죽을 각오하고 왔는데 그런 꼬라지 하고 있으면 속에서 울컥하는데요.>
너
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통신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지구방위대원들의 헬멧 바이저에 아군 식별신호가 떠올랐다.
UNAC-TGS. United Nations AirCraft-Terra Guard Supporter. 유엔 소속 지구방위대 지원
항공기. 그리고 약간 노이즈가 낀 영상이 떠올랐다. 대충 자른 듯한 어정쩡한 머리에 시니컬한 눈동자의 소녀. 이마에는 대충 붙인
듯한 지혈팩과 마구잡이로 묶은 듯한 압박 붕대, 뺨에는 심상치 않은 양의 피가 흘렀던 흔적이 남아있건만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무심한 얼굴. 그것은 의심할 것도 없이…….
"""""세이야!!!"""""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 살아왔을 때나 볼 법한 얼굴들이네요.>
대원들의 환호에 세이야는 그렇게 피식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까칠한 말투였지만 그 속에는 안도감이 담겨있었다. 상태가 어찌되었든 일단 지금 당장 중상인 대원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리라.
<여튼 신무기나 받고 얼른 저 파이프 아저씨나 처리해요. 영 몸이 안 좋아서 얼른 심부름 끝내고 돌아가고 싶으니까.>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나의 녹철함대를 돌파했다고?! 그럴 리가 없어!!!!]
<그럼 여기 있는 나는 뭔데 이 아저씨야.>
[합성영상이로군! 인간들도 제법 제대로 된 영상을……]
그
러나 파이프 백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기를 가르는 소음과 함께 비행정 하나가 그의 머리 위로 스쳐지나갔다. 여기저기 그을리고
찌그러져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세이야가 타고 있던 기체였다. 다시 말해서 지금 대원들과 얘기하고 있는 세이야의 모습은 합성영상
같은 게 아니라는 증명이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에 쐐기를 박듯, 세이야는 시니컬한 표정으로 파이프 백작을 향해 말했다.
<아군이었다면 그 함대의 약점을 모조리 까주고 싶지만, 안됐네요 적군이라. 어차피 지금쯤이면 지구방위함대가 모두 박살냈을 테지만.>
[네 년!!!! 네 녀어어어어언!!!!]
<시끄러운 남자는 사랑 못 받아요. 그리고 받아요. 신무기랑 새 슈츠.>
빠
르게 되돌아온 세이야의 비행정 하부가 열리고 그곳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정확하게 지구방위대원들 앞에 착륙했다. 가로세로높이 약 2m
정도 되는 그 상자는 대원들 앞에서 촤라락 하는 기계음과 함께 열렸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세이야 말대로 새로운 무기와
셔츠였다.
"고마워 세이야!"
"좋았어! 이거면 충분해!"
"금방 이기고 돌아갈게!"
"가는 길에 선물 사갈게! 정말 고마워!"
<이기고서 돌아오기나 해요.>
세이야는 대원들의 환호에 퉁명스레, 하지만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말하고는 통신을 종료하고 기지 방향으로 날아갔다.
#####
아
마미 하루카가 765프로덕션까지 오는데는 전철로 두 시간이 걸린다. 상당히 긴 그 시간 동안 하루카는 흔들리는 전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오늘도 그렇게 전철로 사무소에 도착한 하루카는 익숙한 회사 사무실에서 마주하게 된 전혀 익숙하지 못한
광경에, 그러니까 야요이의 허벅지를 베개삼아 소파에 누워 자고있는 세이야의 모습을 보고는 멈칫했다.
"세이야?"
"아, 하루카 언니 쉿."
검지를 입술에 대며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야요이의 모습에 하루카는 조심스레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평
소같으면 침낭 속에 들어가 구석 소파에서 자고 있을 세이야가 어째서 오늘은 야요이의 허벅지를 베고 TV앞 소파에서 자고 있는가,
그리고 토요일인 오늘 왜 교복 차림인가,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는 기계는 무엇인가, 다리에 묶은 붕대와 여기저기 붙은 반창고는
무엇인가 등등의 여러가지 질문이 함축된 질문이었다. 영리한 소녀인 야요이는 그러한 하루카의 의도를 모두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요이가 입에 담은 대답은 굉장히 짧고, 난해했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서, 래요."
"……네?"
넌센스 퀴즈라도 되는 걸까. 힌트를 부탁드립니다 야요이 MC님. 아쉽게도 그런 건 없습니다 하루카 도전자.
눈빛만으로 그런 대화를 하고, 대체 무슨 의미인지 고민하고 있는 하루카의 귓가에 세이야의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그말 그대로야. ……후아아암."
"아, 깼어?"
"의식만."
몸
은 나른해. 세이야는 그렇게 덧붙였다.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반쯤 감긴 눈동자 속에는 희미하게 피로가 녹아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팬들, 그러니까 자타공인 '팬은 물론이고 방송계 전체를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들의 의견을 빌리자면, '막나가는
분위기가 누그러들어 있다'고 해야할까. 물론 세이야의 지난 한 달간의 활동을 살펴보면 그럴 법 하기는 하다.
2주
동안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서 서바이벌 가이드를 겸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귀국한 다음 날 곧바로 베네치아로 날아가 특집 교양방송을
찍었다. 거기서 돌아온 다음날에 곧바로 후루사토 마을 잔치 라이브. 그 다음날부터는 반쯤 스턴트에 가까운 버라이어티 방송 몇
편에 참여해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인공 장애물을 넘고 기고 구르고. 인터넷에서 팬들의 사소한 질문에 법률용어를 몇 개 섞어 대답한 게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되어 교양법률방송에 얼굴도 비추게 되었는데 얼떨결에 끝장토론이 되어 새벽까지 논쟁. 마지막으로 찬조출연
형식으로 가끔 얼굴을 비추던 모 전대물 극장판 촬영에 참여하느라 반쯤 철야로 닷새.
근 한 달 동안 어지간한 아이돌도
기겁할 정도로 하드한 스케줄을 소화한 것이다. 지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리라. 아니, 세이야의 활동이 대부분 몸으로 때우는
격렬한 활동이라는 걸 감안하면 고작 저 정도의 피로호소밖에 하지 않는다는 게 10대 소녀의 체력으로 가능한 일일까.
"덕분에 발목은 나갔고 무릎도 작살나기 직전이야. 압박붕대랑 반창고로 간신히 버티는 거지."
"헤에……. 아니아니, 그러니까 그 정도로 끝나는 게 이상하다는 것입니다만."
"만보계 광고가 끼어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어. 철야하는 바람에 옷도 못 갈아입었고."
"그렇구나. ……아니 그러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태클 타이밍이 좋아졌어."
세이야는 반쯤 감긴 눈으로 하루카 쪽을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코믹해서 하루카는 피식 웃고 말았다. 동시에 약간 애잔하기도 했다.
"왠지 미안하네……."
모
두가 함께한 후루사토 마을 잔치 이후 하루카가 나간 방송은 게로게로키친을 비롯해 두세 개 밖에 되지 않는다. 이건 다른 사람들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노력한 끝에 방송 분량은 확실하게 확보해서 지명도가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사무소를 먹여살리고 있는 건
세이야뿐이다. 거기에 아이돌 활동─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하드한 일들이지만─틈틈히 원래 업무인 데스크워크에 악질적인 PD들과
그들이 고용한 법률단 박살내기도 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어떻게든 동료들을 괜찮은 방송에 넣기 위해 분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내색은 하지 않는다.
그런 하루카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세이야는 야요이의 손을 잡아 자신의 코끝에 대더니,
"……생선, 조기를 다듬고 왔구나."
"엣, 어떻게 아셨어요?"
"
희미한 바다 냄새랑 녹차향이 나. 요 며칠간 전국적으로 조기값이 쌌지. 제철이라고는 해도 어획량이 많았으니까. 그리고 최근
야요이네 동네 신문들이 근처 마트 할인쿠폰 전단지를 끼워뒀었으니 안 샀을 리가 없어. 또, 이 정도 냄새가 아직도 남아있으니까
사무소에 오기 전에 했다는 걸 테고, 녹차향은 비린내 제거를 위해 다 쓴 티백으로 손끝을 문질러서 그렇겠지."
"오오, 굉장해요."
왠지 명탐정의 추리와도 같은 추론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시 하루카를 바라보더니,
"하루카."
"응? 왜?"
"핥게 해줘."
"……어?"
의미불명인 말을 내뱉었다. 핥아? 뭘? 나를? 왜?
의외의 질문에 굳어버린 하루카를 향해 세이야는 여전히 반쯤 감겨있지만 기이한 진지함이 담긴 눈으로 말을 이었다.
"하루카."
"응."
"피로와 스트레스에는 당분이 좋아."
"아, 응. 들은 적 있어."
"그리고 하루카는 귀여워."
"어, 고마워."
"여자애는 설탕과 향신료와 온갖 멋진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고 하루카는 귀여우니까. 그러니까 핥으면 단맛이 날 것 같아. 그러니까 핥게 해줘."
"아하하하……."
대충 무슨 의미인지 이해는 갔다. 그와 동시에 하루카는 세이야가 반쯤 잠에 취해있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그렇기에 반쯤 장난삼아 물었다.
"그럼 야요이는?"
"야요이는 쌉싸래한 고급 초콜릿. 하드보일드한 어른의 맛이야."
"……헤?"
정말로 의외의 대답이었다.
"생활전선이라는 거친 일상을 살아가며 단련된 야요이의 맛은 100%에 가까운 카카오 맛. 희미하고 순수한 단맛이 남아있지만 한때의 여흥으로 남을 뿐 거기에 기대지는 않아. 그러니까 하드보일드야."
"에헤헤, 그렇게까지는……."
칭찬인걸까. 일단 야요이는 칭찬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잠이 깬 듯 세이야가 일어나며 말했다.
"점심이나 먹자."
"벌써 그렇게 됐네. 뭐 먹을까?"
"고기."
"엑."
"고기."
"아니, 비싸잖아?"
"맞아요. 요즘에 닭이랑 돼지고기 비싸졌어요." 쇠고기라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에버린 체 대답하는 게 야요이다웠다.
"게다가 점심으로 먹기에는 좀 무거운 메뉴지 않아? 게다가 그, 몸무게도……." 10대 소녀가 제일 신경쓸만한 부분을 언급하는 게 하루카다웠다.
그러한 두 사람의 대답에 세이야는 걱정마라는 듯 검지를 까딱이며 말했다.
"중형 육류 체인점에 컨설턴트 해준 대가로 받은 이용권 있어. 돈은 안 들어. 그리고 야요이."
"네?"
"쇠고기야."
"……."
"먹고 남으면 싸가져 갈 수 있어."
"갈게요."
언제 반대했었냐는 듯한 빠른 전향이었다.
"하루카."
"응?"
"먹고 댄스 레슨 두 세트 뛰면 다 빠져."
"그, 그건 그렇지만……."
"공복의 아이돌은 아무 것도 못해.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지 않으면 스테이지(전장)에 설 수 없어."
"하루카 언니. 가요."
"……가겠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하루카는 결국 찬성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날, 세 사람이 VIP대우를 받으며 특등급 쇠고기를 먹고, 그것도 모자라 회사를 살려준 답례라며 '일단 급한대로' 라며 최상급 쇠고기 세트를 선물받은 건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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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티는 확실하게 타 작품 출연이 많고, 세라는 그나마 본작 출연이 많은 편이지만 슬슬 따라잡힐 것 같고, 세이야는 애초에
처음부터 외주(…)가 많았었죠. 여튼 세이야도 근 8개월 만에 돌아왔습니다. 연중은 아닙니다. ……일단은.
- 애들 나이가 헷갈립니다. 하루카랑 유키호 나이는 동갑인 것 같은데 학년은 다르고, 치하야와 하루카는 한 살 차이인 것 같은데 학년은 같고. 뭐야 이건, 어디에 맞춰라는 거야. […]
그냥 큰 차이 없다 싶으면 대충 맞추고 있습니다. 제 팬픽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 설정 언제나 대충 짜고 씁니다. […]
- 추석 전에 올리려고 했는데 실패했네요. 이럴 때마다 자신의 느려터진 타자 실력에 한숨을 내쉽니다. 다음 화는 10월 중에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게 포병이든 별의 바다든 아이돌이든 말이죠. […]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아이돌 마스터] 저요? 아이돌일걸요? 아마도.
#4. 어머니랑 자기랑 빠지면 누구 구할 거냐는 질문할 생각 말고 수영을 배우세요. 그래서 미래의 시어머니 구하고 점수 따둬요.
"어딜 가느냐!"
"……."
말
을 타고 달려온 젊은 영주님의 모습에 10년 전과 거의 달라진 게 없는 여인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제아무리 10년 동안 어린
영주에게 검을 가르치고 몇 번이나 생명을 구했다고는 해도 상당히 무례한 태도였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 여자였다.
말이 몰고 온 흙먼지를 피해 살짝 뒤로 물러나면서─이것도 누군가 본다면 무례하다할 행동이었다─ 그 여인은 홀가분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야 물론 떠나는 길이지요."
"……내가 분명 말하지 않았더냐. 떠나지 말라고. 내 곁에 있어달라고."
"저도 분명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떠날 것이라고. 당신의 곁에는 있을 수 없다고."
"……."
보
름달이 빛나던 그날 밤의 대화가 떠올랐다. 어엿한 영주가 된 당신 옆에 검 휘두르는 것 외에는 아무런 가치 없는 여인이 있을 수는
없다고 말하던 여인. 온갖 이유를 들어 붙잡으려는 자신을 가차없이 논파하던 그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검으로는 일당백을 논하고, 식견은 학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으며, 정무는 선대 영주님보다 뛰어나시니, 이제 저 같이 미천한 계집의 도움은 필요없으실 겝니다. 그러니, 떠나야지요."
말문이 막힌 자신 앞에서 홀로 잔에 술을 채워 마시며 덧붙인 말이었다.
"그리 말씀드렸거늘 정무를 내팽개치고 저를 붙잡으러 오셨습니까."
"……."
"돌아가십시오. 성군이라 칭송받고 계신 지금 고작 계집 하나 때문에 그 명성을 뒤흔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 말하며 여인은 고개 숙여 일방적으로 작별을 고한 후,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그것을 꾸짖을 사람도 없었고, 당사자들 또한 그런 것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랬기에 방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지 마라!"
작
은 충격과 함께 여인은 발걸음을 멈췄다. 어깨와 허리를 감싸고 있는 것은 건장한 남성의 팔이었다. 어느 새 말에서 내린 영주님이 등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평소라면 금방 눈치챘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그리하지
못했다.
"……끈질기십니다."
목소리가 떨린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영주님 또한 그걸 깨달았는지 팔에 더욱더 힘을 주며 속삭였다.
"남자는 끈기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던 것은 그대지 않는가."
"허나 아녀자에게 끈질기면 미움받는 남자가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래서 그대를 붙잡은 내가 미운가?"
"밉다마다지요. 오랜만에 대련을 빙자한 구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이쿠, 그건 무섭군."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그리고 여인의 손이 자신을 붙잡은 영주의 손 위에 포개졌다.
"신분도 불문명하고 혼기는 애저녁에 넘긴 늙은 계집 때문에 움직이시면 아야카 공주님께서 질투하실 텐데요."
여인이 부드러워진 태도로 꽃다운 열 여섯으로 아리따운 이웃나라 공주님이자 영주님의 약혼녀의 이름을 언급하자, 영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를 잡아오라고 한 사람 중에 하나가 그녀다."
"……호오."
"'부전승은 납득할 수 없으니까 어서 돌아와라. 그렇지 않으면 에조국 모든 닌자를 풀어 쫓을 것이다.' 라고 전해달라더군."
"이름높은 에조의 닌자들에게 쫓길 바에야 감금생활을 하는 게 훨씬 낫겠군요."
"감금이라니. 항상 편할 데로 다녔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가?"
"새장 안의 자유일 뿐입니다. 아아, 어리숙한 사냥꾼에게 잡혀 길들여지게 되었으니 앞날이 어둡군요."
"사냥꾼을 마구 부려먹는 사냥감도 있던가?"
"글쎄올시다."
소소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영주와 세이야 두 사람은 그렇게 잠시 동안 서로에게 기대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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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세이야의 생각날 때 업데이트 하는 블로그.
제목 : 인기 좋다고 살게 됐다.
XXXX년 ○월 ★일 AM 07:09
제목 그대로. 원래 이번 화에서 죽는 장면 찍을 예정이었는데 뭔가 이상한 멜로 드라마 장면틱한 걸 찍었습니다.
이런 거 별로인데. 현실에도 짝이 없는데 무슨 연애놀음 촬영을. 발연기에 눈 버리실 수도 있으니까 보지 마세요 이번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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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야 팬 스레 - 세이야가 대하 드라마에서 애정극 촬영을 했어 (6)
389: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슬슬 진정해야하지 않을까.
399: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무리다. 난 세이야가 얼굴 붉히는 장면 계속 돌려보고 있어.
400: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399 자중해라.
401: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399 그만 봐.
402: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399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만 둬.
403:
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우리는 세이야 하아하아 라던가 세이야 할짝할짝 같은 단어는 쓰지 않는다. 당당하게 거친 숨을 내쉬고
당당하게 핥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사! 우리는 세이야 하아하아 라던가 세이야 할짝할짝 같은 단어는 쓰지 않는다. 당당하게 거친
숨을 내쉬고 당당하게 핥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사!우리는 세이야 하아하아 라던가 세이야 할짝할짝 같은 단어는 쓰지 않는다.
당당하게 거친 숨을 내쉬고 당당하게 핥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사!
404: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399 여기 또 하나의 내가...!
405: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03 패턴 블루! 폭주팬이다!
406: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03 놈을 잡아! 세이야의 팬들은 언제 어디서나 COOOOL해야 한다!
407: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403 세이야의 시니컬 멘트 링크로 녀석을 제압해! <링크>
408: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안돼! 그 링크에 저항이 있는 건 코어한 팬들 뿐이라고! 어설픈 녀석들이 들으면 아이돌 팬 활동 뿐만이 아니라 인생 자체를 비관적으로 보게 돼버렷!
409: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시험인가! 녀석의 팬심을 시험하는 것인가! 우리는 지금 시험을 강요받고 있는 거다!
(중략)
900: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이제 좀 가라앉았군.
901: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가라앉을 때가 됐지. 시간도 그렇고.
902: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이제 좀 정리를 해볼까.
903: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팬클럽이 가장 나중에 느긋하게 얘기하는 아이돌은 세이야 뿐이지 않을까.
904: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어쩔 수 없잖아. 본인이 '열광적인 성원 그런 거 필요없고 상식적이고 차분하게 활동할 것. 열정은 765프로 다른 아이돌들에게 부을 것.'이라고 했으니까.
905: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팬클럽에게 다른 애들 좋아하라고 주문하는 아이돌이나 거기에 따르고 있는 팬클럽이나.
906: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여튼 확실히 세이야 팬이 늘었군. 예전에는 4천대 들어가서 진정했는데 오늘은 6천대다.
907: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게다가 조금만 더 있으면 7천 찍을 것 같은데.
908: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세이야 녀석 뭐가 눈 버리니까 보지 마야. 최고였다구.
909: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소녀심 같은 건 내던진지 오래라고 했던 애가 하루 종일 소녀심 폭팔이었잖아. 좋다.
910: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야생에서 "끼요오오오옷!!!" 같은 비명 지르던 애가 나긋나긋하게 웃다니. 반칙이다.
911: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성숙하게 분장하고 보여주는 것은 소녀심이라니. 안돼, 심장이 버티지 못한다.
912: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음
913: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음
914: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음
915: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음
916: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음
917: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안 오네.
918: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그러게.
919: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슬슬 이쯤에서 세이야가 등장해서 우리를 뒤흔들고 갈 것 같은데.
920: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오늘 동남아 서바이벌 아니었냐?
921: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아
922: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그럼 오늘은 끝낼까.
923: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난 먼저 자러 간다. 오전에 자격증 시험 봐야돼
924: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ㅤㄴㅓㅋㅋㅋㅋㅋㅋㅋㅋ 시험있는 놈이 이 시간까ㅤㅈㅣㅋㅋㅋㅋㅋㅋㅋㅋ
925: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세이야의 팬은 팬활동으로 일상에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되거늘
926: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걱정마라 자격증 따서 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겠어
927: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926 힘내라
928: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926 합격기원 세이야의 미소 <링크>
929:타카기 세이야: 촬영 들어가기 전에 잠깐 모니터링. 926은 시험 합격 기원하고, 그 눈 버릴 장면에 왜 다들 좋아하고 있는 거야. M들만 모여있나.
930:타카기 세이야: 그리고 2화인가 3화 뒤에 죽어. 이번에는 진짜로. 감독님이 뭐라고 해도 내가 힘들어서 못해.
931:타카기 세이야: 그럼 굿바이.
932: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왜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
933: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왜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
934: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안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
935: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당했다.
936: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설마 동틀녘에 잠깐 스쳐지나가면서 이런 정보를 던지고 갈 줄이야.
937:팬을 디스하는 아이돌의 팬: 과연 내가 선택한 아이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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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아아아아아악──────!!!!"
풍
더어어엉──!!! 거대한 물보라와 함께 소녀의 몸이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칠게 흐르는 수면 위로 솟구쳐 나온
소녀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천천히 물가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급류에서 빠져나온 소녀는 그대로 대자로 드러누워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가끔씩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는 것을 보니 제법 물을 많이 먹은 듯 했지만, 잠시 후 상반신을 일으킨 소녀의
얼굴에 그로 인한 불편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미친 짓이었습니다."
세이야는 폭삭 젖은 옷과 신발을 벗어던지며 그렇게 말했다. 방송에서 쓸만한 단어는 아니었지만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는 별다를 감흥을 주지 못했다.
"
정말, 미친 짓이었습니다. 높이도 그리 높지 않고 별다른 우회로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뛰어내렸지만, 와류는 생각치 못했네요.
생각보다 물살이 빠른 것도 문제였습니다. 그러니까, 시청자 여러분은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차라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덩굴로 밧줄을
만들어 내려오는 게 훨씬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속옷을 제외한 모든 옷을 훌훌 벗어던지는 세이야의 모습에
사람들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화면을 주시했다. 비치발리볼이나 육상 선수들이 입을 법한 조금 스포츠틱한 디자인에 그라데이션 효과가
들어간 군청색 상하의가 제법 요염……하지는 않았지─활동성이 느껴지는건강미는 엿보였다─만 아무리 세이야라고 해도 속옷 밖에 입지
않은 모습을 화면에 비춰도 괜찮은 걸까.
그러나 세이야는 옷의 물기를 짜내며 무심하게 말했다.
"속옷 노출이니
뭐니 하는 시청자 분들이 계실 것 같지만 아쉽게도 이건 비키니 수영복입니다. 이번 화 끝나고 협찬 올라올 때 잘 살펴보세요.
수영복 회사가 있을 겁니다. 동남아 촬영이라는 말에 혹한 것 같은데, 더 예쁘고 몸매 좋고 정상적인 화보 촬영하는 애들 놔두고 왜
저를 모델로 삼았을까요. 사장님이 이 계약 체결한 사원을 갈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언제나
그렇듯 담담한 어조로 시청자의 상상─이라는 이름의 망상을 가차없이 박살내는 발언이었다. 무엇보다도 양반다리로 앉아 구부정한 허리를
펴지도 않은 체 젖은 옷의 물기를 죽죽 짜내는 모습에서 아이돌다움이라는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뭐, 그렇게
뛰어다녔는데도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없는 걸 보니 제법 괜찮은 수영복이긴 하네요. 이번 여름에 피서여행 가실 분들은 이 회사 제품 사
입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담이지만 저도 이런 정신나간 방송활동 말고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잠시 신세한탄과도 같은 한탄을 내뱉은 세이야는 이내 포기했다는 듯한 한숨과 함께 머리를 북북 긁으며 자신이 뛰어내린 폭포를 한 번 바라보고는 고래를 돌렸다.
"여튼 내려와서 시간을 벌었으니 그만큼 이동해야겠죠. 정글은 밤이 일찍 찾아오고, 불 피울 시간에 먹을 걸 구할 시간, 그리고 온갖 해충들에 대한 대비를 하려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니까요."
그리 말하며 세이야는 불쾌할 게 뻔할 젖은 옷을 다시 걸치고는 터프한 발걸음으로 정글을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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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칵. 765프로덕션 사무실 위쪽에 위치한 연습실 문이 열리며 세이야가 고개를 내밀었다.
"점심 먹읍시다─."
피
곤한 기색이었다. 그럴 법도 하다. 주말 대하 드라마 촬영이 끝나자마자 엿새 동안 동남아 밀림을 헤치고 나와 간신히 휴일을
맞이했다. 그나마 한동안은 일이 없다는 게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지금 당장의 피로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이를
증명하듯 뒷목과 어깨를 주무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방금 전까지 자다 일어났다는 걸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한 그
모습은 도저히 아이돌이라 볼 수 없었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타카기 세이야라는 소녀 자체가 아이돌 활동과는 연이 없다는 현실부터
문제가 생긴다.
"아, 세이야. 잠깐 온 김에 발성시범 좀 보여줘."
"……네에."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연습실에 있던 발성연습코치는 세이야를 불러들였다. 그 말에 세이야는 머리를 긁적이며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대답한 후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 아─ 아─ 아─ 아─"
"한 번 더. 이번에는 한 옥타브 위까지."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한 옥타브 더."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응. 좋아. 고마워. 알겠어? 저런 느낌으로."
그제서야 세이야는 연습실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당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회사 최고 가수 앞에서 발성 연습을 시키시다니……."
"응? 아아. 아하하하. 괜찮아, 괜찮아. 분명 키사라기 양이 노래가 최고기는 하지만 발성시범만 놓고 보면 세이야 쪽이 훨씬 더 좋으니까."
"맞아. 기준으로 삼기에 제일 좋아."
코치에 뒤이어 치하야까지 그렇게 말하자 세이야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점심이나 먹죠."
#####
문
제는 점심을 먹고 난 후였다. 날씨는 더웠고 에어컨은 고장난 상태인 사무실의 냉방은 선풍기 하나 뿐이었고, 당연히 그것만으로는
실내 냉각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동료들의 불평불만에 어디까지나 며칠 전까지 있던 동남아 밀림보다 쾌적한 실내에서 자고 있던
세이야는 공구 상자와 함께 에어컨을 분해하고는 수리를 시도했지만…….
"……안돼겠는데."
"엑?! 어째서입니까 선생님?!"
"선생님! 다시 살펴봐주세요! 이 아이 좀 살려주세요 선생님!"
아미와 마미의 농담 섞인 절규에 세이야는 분해했던 에어컨을 조립하고 공구상자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기판이 눌러붙었어. 내 영역 밖의 일이야."
""안돼애애애애애애!!!!""
"조─ 용─ 히─!"
""네에에에에…….""
"정말, 정 안되면 세수라도 하고 와 둘 다."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리츠코 대장님!"
"맞습니다! 이대로라면 모두 녹아버릴 겁니다!"
"일단 그렇게 열 내는 것부터 줄이면 덜 더워질걸."
달
칵. 세이야는 리츠코에게 열변을 토하는 쌍둥이를 보고는 공구상자를 닫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신문지와 뜯은 박스를 깔아둔
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돌들이 이렇게 하면 곧바로 다음 날 특종으로 연예계 신문에 뜰 게 분명했다.
"어이, 아이스크림 사왔다~"
약 10분 후 도착한 프로듀서의 말에 사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오오오~ 하며 프로듀서를 맞이했다. 어느 샌가 일어난 세이야도 그 틈에 끼어 아이스크림을 받아 입에 물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더운 건 매한가지인 듯 했다.
"후아, 살 것 같아……."
"우움,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바다였는데……. 츄라우미가 그립다……."
"바다인가……."
하루카와 히비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세이야가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쉰 건 그때였다.
"……바다인가……."
"응, 바다. ……왜?"
"아니, 요 1년 간 바다에 대해 좋은 추억을 만든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서."
"……아하하하……."
그
럴 법도 하다. 명색이 아이돌이건만 세이야와 바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건, 수영복 입은 소녀와 아름다운 해안가가 아니라
다 헤진 옷을 입은 생존의 달인 소녀와 울퉁불퉁한 해안선일 정도니까. 거친 파도에 휩쓸려 해안가 암초에 내동댕이 쳐진 적도
있으니 바다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리라.
"1m이내의 작은 파도에 미풍 이상의 바람이 몰아치지 않고,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넓은 영역과 안전대책이 확보되어 있으며, 치명적인 해양생물이 살고 있지 않으며 문명세계와 단절되지 않은 해안가라면 가고 싶어."
"……그렇지 않은 바다를 찾는 게 더 힘들지 않아?"
"그렇다면 난 왜 그런 바다에 가지 못하는 걸까."
"……그, 미안."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세이야 님.""
어쩐지 미안해진 히비키와 하루카, 그리고 아미마미 쌍둥이가 고개를 숙였다.
#####
그런 자그마한 소란이 있었지만 결국 피서여행 겸 1박 2일 바다여행이 정해졌다.
장
소를 정한 건 세이야였다. 자신이 말했던 '1m이내의 작은 파도에 미풍 이상의 바람이 몰아치지 않고,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넓은
영역과 안전대책이 확보되어 있으며, 치명적인 해양생물이 살고 있지 않으며 문명세계와 단절되지 않은 해안가'라는 구체적인 조건을
충족시키면서도, 그리 멀지 않으며 적당한 가격의 숙소가 있는 곳을 찾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본능적인 거야. 야생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찾는 것과 비슷한 감각으로 고르면 되거든."
여
행이 결정되자마자 그날 모든 교통권과 숙박지까지 예약하고는, 간이 팜플렛까지 만들어 동료들에게 나눠주던 세이야의 모습에 히비키가
감탄을 터뜨리자 세이야가 했던 말이었다. 그러한 감각이 있어서 야생에서도 안전한 피난처를 찾고 만드는 것인지, 야생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찾고 만들었던 경험 때문에 사회에서도 그러한 감각을 가지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찌되었든 스케쥴이 없는, 다시 말해서 765프로 아이돌 전원이 동참한 피서여행은 짧은 기차여행이 시작이었다.
"작살은 왜 가져온 거야?"
"……잊어버렸었어."
"……잊어버려서 가져온다는 게 말이 돼?"
"평범한 바다를 간다는 걸 잊고서 식량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챙겨왔어."
"어이어이……."
"그래도 식재료를 얻을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아니, 타카네,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음, 식재료는 충분히 샀다고 생각하지만 부족할 수도 있으려나. 아무래도 다들 성장기니."
같
은 좌석 박스에 앉은 히비키와 타카네와 그런 대화를 하며 도시락을 먹다보니 기차는 어느 새 해안가를 달리고 있었다. 햇살이
반짝이는 새파란 바다와 구름 조각들이 걸린 푸른 하늘이 뒤섞인 듯 하면서도 수평선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무심코 미소가 그려지는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이런 바다도 있었구나."
"누가 들으면 한평생 거친 바다만 보고 온 사람인 줄 알 거야."
"ㅤㄲㅠㅅ."
히비키와 햄조의 태클에도 세이야는 멍하니 창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
"그로부터 30분이 지났고, 우리는 무사히 해안에 도착했습니다. 다들 해안가에서 헤엄치고 있네요. 이 근방은 안전하니까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구한테 말하는 거야?"
"시청자에게……."
"응?"
"……직업병이야. 신경쓰지마."
"……응."
자기가 말하고서도 실수였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말하는 세이야의 모습에 치하야는 이해했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
이야는 곧바로 파라솔 그늘 아래 누웠다.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군청색 비키니─동남아 서바이벌 촬영 내내 광고삼아 입고 있던 수영복은
제법 매력적인지라 아이돌에게 가산점을 줄 수 있을 법했지만, 정작 입고 있는 당사자는 그러한 외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러니까 노숙자와도 같은 궁색한 자세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스스로도 아이돌이라는 자각이 없는 치하야마저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대형 타올을 덮어줄 정도였다.
어찌되었든 활동적인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두 사람은 그렇게 평온한 시간을 지낼 터였다.
"누나. 누나 그 누나 맞지? 막 사막이랑 정글 헤치고 다니는."
그 소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누구니, 넌."
"이카야 쿄우."
초
등학생 저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초록색 남방에 짙은 군청색 사각 수영복을 입고 있는 걸 보아 놀러온 피서객인 듯
했다. 쿄우는 그 나이대에 걸맞는 활기가 감도는 얼굴에 마치 보물을 찾은 듯 눈을 빛내며 세이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 잘못 봤습니다."
"에이, 거짓말. 맨날 TV에 나오면서. 그 세상만사 다 귀찮은 것 같은 눈매는 누나 밖에 없어."
"……내 눈매가 그래, 치하야?"
"……노코멘트."
"무, 치하야 누나도 있어?! 역시 누나 타카기 세이야 맞지? 역시 맞지? 그렇, 줍?!"
세이야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에 환호를 터뜨리려는 소년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취하고 쿄우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손을 땠다.
"푸하! 와, 치하야 누나도 있네."
"팬이니?"
"응! 저 누나 노래 진짜 잘 부르잖아."
"치하야 네 팬이야. 맡길게. 사인하고 악수하고 돌려보내면 돼."
"오오, 진짜 TV에서나 현실에서나 똑같네."
"개인적으로 그러한 내 모습에 실망하고 팬질 그만뒀으면 좋겠어. 치하야는 계속 팬질해주고."
"히히히히."
세이야의 말이 그 나이대 특유의 재미점을 자극했는지 쿄우는 키득거렸다. 그러한 소년의 모습에 세이야는 피곤한 듯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튼 쿄우."
"응."
"난 주말 내내 드라마 촬영하고 그게 끝나자마자 일주일 동안 동남아 정글을 헤치고 와서 이제 겨우 한숨 돌리고 있어."
"응."
"다시 말해서 엄청 피곤해."
"응."
"그러니까 저기 치하야 누나랑 놀아."
"응!"
"에?!"
치하야가 당황하든지 말든지 세이야는 팬 하나를 떠넘겨놓고 다시 드러누웠다.
그 소년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고민하고 있던 치하야에게 같이 바다에서 놀자며 달려온 하루카의 모습은 천사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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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루찌 님 생일 선물로 당일 연성해서 좀 부실합니다. 실제로 5화 부분 끊기기도 했고 말이죠.
- 트위터로 세이야 봇 같은 거 굴려볼까 고민중입니다.
- 심정은 알지만 포병 얘기는 좀 자제해주세요.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추가: 세이야 수동봇 만들었습니다 @765seiya_bot
[아이돌 마스터] 저요? 아이돌일걸요? 아마도.
#6. 휴가 끝. 노동시작.
"그거, 귀신이 아니라 타카네 아냐?"
"그래그래. 창백한 피부는 넘어가더라도 새하얀 머리카락은 타카네잖아."
횡설수설하던 세 사람─이오리, 마코토, 유키호의 들은 아미마미 자매는 당연하지 않냐는 듯이 말했다.
"……어?"
"그, 그런가?"
"그럴 거야! 응! 그렇겠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세 사람의 모습에 쌍둥이 자매는 몰래 씩 웃었다. 그리고는 방금 전 말을 뒤집듯 평소에는 보기 힘든 진지한 표정으로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럴거야. 익사한 시체의 색깔은……."
"그리고 여기서 물에 빠져 죽은 여자는……."
"아미."
"아, 그래. 응. 미안……."
"뭐야?! 뭔데?! 뭔데?!"
좀
처럼 보기 힘든 굉장히 진지한 쌍둥이의 태도에 세 사람이 공황상태에 빠져들었지만, 장난꾸러기인 자매에게 적당한 선에서 멈춘다는
선택은 없었다. 결국 잠시 후 히비키와 함께 돌아온 타카네가 진실을 말할 때까지 세 소녀는 공포에 질려있어야 했다.
"정말, 그런 농담은 적당히 좀 해!"
"니히히, 그렇게 속을 줄은 몰랐지."
"맞아. 특히 이오링~ 오늘 하루 종일 무서운 얘기만 했으면서~"
"그그그, 그건 그렇지만!"
"후후~ 창백한 피부~"
"새하얀 머리카락~"
"그만해!"
그렇게 이오리를 놀리던 아미아미 자매를 멈추게 한 건 히비키의 한마디였다.
"그런 여자, 한 사람 더 있었는데?"
"……뭐?"
"……히비킹. 그건 무슨 소린지……?"
"피부는 잘 모르겠고, 머리는 하ㅤㅇㅒㅆ어."
"……아니, 잠깐만. 지금 달이 떠있기는 하지만 어두운데 머리가 하얀지 어떤지 어떻게 알았어?"
"그야……."
마
코토의 냉정한 지적에 히비키의 얼굴이 뭘 그런 걸 물어보느냐는 표정에서 점차 새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히비키도 눈치챈
것이다. 달빛 아래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보았던 그 여자의 하얀 머리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새하ㅤㅇㅒㅆ다는 것을.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옷자락 사이로 보이던 피부가 도저히 산 사람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창백했다는 것을.
"……."
누
구의 것이라 할 수 없는 기묘한 침묵이 방 안에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저녁이라고는 해도 여름날씨라고는 볼 수 없는 싸늘한
공기가 소녀들의 어깨를 스쳐지나갔다. 방금 전까지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마저도 어느 샌가 사라져 있었고 숙소 내의 형광등 불빛이
파르르 떨리며 내는 고주파음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히비키가 몸을 튕기며 벌떡 일어난 건 그때였다.
"세이야!"
"……세이야가 왜……?"
유키호의 떨리는 목소리에 히비키가 다급하게 외쳤다.
"세이야가 우리를 먼저 보냈어! 그 여자를 보더니, 나랑 타카네한테 먼저 가라고 하고! 그래서 그 여자랑 뭔가 얘기를! 그래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럼 세이야는 지금……?"
"세이야가 위험해!"
"아, 잠깐! 히비키! 혼자 가면 안돼!"
"세이야!"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순식간에 몸을 돌린 히비키가 여관 문을 열어젖히자,
"왜."
"우와아아아아앗?!"
문을 열려는 듯 문고리 높이까지 올린 손을 세이야가 히비키의 외침에 대답하며 서있었다. 그 모습에 히비키는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얼굴부터 시작해서 세이야의 온몸을 확인하듯 만져본 후 물었다.
"세이야 맞지?"
"그렇게 주무르고 맞냐고 물어보는 건 뭐냐고 묻고 싶다고 말하면 당신이 아는 세이야가 맞을,"
"맞구나! 다행이다! 그 말투! 세이야야!"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진짜! 정말! 진짜 다행이라구 셋찡!"
"……."
방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자신을 와락 끌어안는 히비키와 아미마미 자매를 지탱하며, 세이야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
보
호자실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듀서의 방에는 이미 제법 많은 수의 빈 캔들이 쌓여있었다. 간간히 음료수 캔이 보이는 걸로 봐서
맥주만 소비된 게 아니라는 것은 명확했지만, 그렇다고해서 맥주캔 수가 적다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어른들의 방이고 피서여행
저녁 날이니 상당량의 주류가 소비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과년한 총각 처녀들이, 그것도 이름이 잘 안
알려져 있다고는 해도 연예인 계통의 인물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게 세간의 시선으로 보면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술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만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리츠코 언니도 말했지만, 너무 많이 마시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네에~"
세이야의 말에 아즈사는 장난스레 그리 대답했다. 그리고 세이야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라, 세이야, 술 마시려고?"
"엑? 아니, 미성년이 술은……."
"보호자들이 있으니까 마시는 건 문제없고, 마셔도 문제없지만, 이건 바닷가를 헤메는 사람을 위한 공양으로 잠깐 빌리는 거에요."
세이야는 제지하려는 프로듀서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는 스르륵 방을 빠져나갔다.
"……공양?"
"바닷가를 헤메는 사람?"
남겨진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지만 그에 대답해 줄 사람은 이미 방을 떠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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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달빛과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수학여행 잠자리에서 그러하듯 동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하루카는 문득 떠오른 생각을 입에 담았다.
"……근데 혹시 그렇게 되면, 이렇게 모두 모여서 놀러오는 것도 힘들어지겠지?"
그
럴 것이다. 매일 즐겁게 지내는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들도, 학년이 바뀌고 반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면 자연스럽게 멀어져
떨어진다. 그러할진데 모두가 바쁘게 지내게 된다면 같은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모두가 함께 여행오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성장하고 발전할 수록 멀어진다니. 모순적인 일이지만 현실이다. 그랬기에 마코토도, 치하야도, 이오리도 좀처럼
그 쉬운 의문에 답하지 않았다.
"살아있기만 하면 돼."
대답은 담담한 목소리였다. 단어의 무게와는 달리 그 어떤 무게감도 없고 진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깨어있는 이들 모두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힘들겠지.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냐. 살아있기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절
실함이나 처절함 같은 건 전혀 느낄 수 없는 담백하다못해 건조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세이야는 평소와는 달리 동료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이부자리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독백처럼 읊조린 것이다. 그것이 세이야가 타협할 수 있는 최대의
영역이었으리라.
"……그럴까."
"그래."
의외로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치하야의 의문에 세이야는
단언했다. 목소리는 여전했다. 나름의 허세일지도 몰랐지만 일행은 굳이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동료들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오리는 분위기를 바꾸고자 톤을 바꿔 말했다.
"일단 유명하게 되고 난 후에 생각하는 거야 그런 건."
"아하하, 그렇네."
"그래. 어서 톱 아이돌이 되서 우선 내 부담부터 덜어줬으면 좋겠어."
"윽, 노력하겠습니다……."
그런 유쾌한 대화를 끝으로 소녀들의 대화는 조금씩 잦아들어갔고, 이내 파도소리에 뒤섞여 조용히 사라져갔다.
#####
미
우라 아즈사, 미나세 이오리, 후타미 아미가 류구코마치라는 그룹으로 활동한다는 얘기에 타카기 세이야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세간에는 아이돌로 알려져 있지만 본업(?)은 765프로의 회계 겸 법률 자문인 세이야가 회사의 프로젝트를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는 해도 그게 일행이 모두 놀러가 있던 날에 시동이 걸리다니.
"코토리 언니랑 사장님이 왜 피서여행에 못 오시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그래. 어쩔 수 없었지."
굳
이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할 사항은 아니었다. 간단하게 전화 통화로도 문제가 없었겠지만, 765프로의 사장 타카기 준지로는 그리하지
않고 직접 발품을 팔고 대면하여 일을 성사시켰다. 결국 연예계도 인맥이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모든 걸 무시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애초에 그게 가능한 인물은 아이돌이 아니라 뭘 하든 성공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제 리츠코 언니를 경리활동에는 못 넣겠네요."
아
이돌 팀을 이끌어야 하는 프로듀서로서 바빠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독립된 팀의 실권자에게 장부를 맡겼다가는
회계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게 설령 아주 작은 문제라고 하더라도 적대 회사나 금융기관의 태클이 들어오면 765프로 같은
약소회사는 단숨에 공중분해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다.
"미안. 이제부터 한창 바빠질 텐데……."
"사과는 류구코마치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받겠습니다."
"응."
그러한 리츠코와 세이야의 모습에 아미가 눈을 껌뻑였다.
"……어라, 내 눈이 이상한가? 지금 릿짱이 기세에 눌렸어?"
"제대로 봤어."
곁
에 선 이오리는 담담하게 아미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대기업 영예로서 기업 내 회계, 혹은 관련자들과 만나보고 그들의
실제업무활동도 지켜본 적이 있는 이오리에게는 세이야의 모습이 매우 당연하게 느껴졌다. 어디든 돈을 움직이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기백은 강렬한 법이다. 그렇다고는해도 세이야 분명 여고생 아니었나. 어째서 정글보다 더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칠 듯이 싸우는
전사(샐러리맨)들보다 더한 기백을 내뿜는 걸까. 아니, 이건 전사(샐러리맨)이 아니라 초인(간부)급이나 인외마경(대주주)급 것
같은데.
"아라아라, 세이야는 결혼하면 가계부를 꼭 붙잡고 있겠네."
"내 눈에는 가계부가 문제가 아니라 국가 예산안을 잡고 있는 모습 밖에 안 보이지만……."
사람좋은 웃음과 함께한 아즈사의 말에 이오리는 그렇게 덧붙였다.
#####
당연한 말이지만 세이야도 사람이고, 그런 만큼 가끔 다치기도 한다.
종이 끝에 손가락을 베일 수도 있고, 새끼발가락을 모서리에 찧을 수도 있는 법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지만.
그
렇다고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다친 적이 없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로 위험한 부상이 훨씬 많은 축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명사회에서는 곧바로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야생에서는 당장 목숨이 위험한
부상'이 많다. 이번처럼 말이다.
"……."
고통이 너무 크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설령 비명을 지를 정신과 힘이 있다고 해도 세이야가 그렇게 비명을 질렀을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너무 거대한 고통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오, 온 몸이…… 하아…… 금이 간, 거엇…… 같네요오……."
한
참 후라는 자막과 함께 화면에 비춰진 세이야의 얼굴에는 여전히 고통이 남아있었다. 숨도 거칠었고 새하얗게 눈이 내린 주변과는 달리
얼굴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 땀 때문에 체온이 낮아져서인지 세이야의 몸도 조금씩 떨림이 커지고 있었다. 셀프 카메라이기
때문인지 더욱더 떨림이 심했다.
"삐, 삔 정도로…… 끝나도록 해했지마는…… 여, 역시…… 현실으은…… 녹록치 므못하네요오……. 켈록, 큽……. 트흑히 발목, 이…… 굉장히……."
스
키 상급자 코스 같은 경사와 길이의 언덕에서 온갖 바위나 나무둥치랑 부딪치며 튕기며 내려온 사람이 삐는 정도로 끝나면 기적이다.
게다가 뼈는 둘째치고 전신 타박상 상태일 게 뻔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카메라에 대고 이러니 눈이 얼어붙은 응달을 지나가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하는 일이며, 특히 산세가 험한 곳에서는 사람을 잠깐이나마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로 매서운 돌풍이 갑자기 몰아칠 수
있다는 둥의 얘기를 하고 있다니. 반쯤은 신경을 돌리기 위한 것이겠지만 무서운 프로 정신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세이야는 눈 속에 파뭍혀있어 찾기도 함든 주변에서 용케 부목으로 쓸만한 나뭇가지와 그것을 묶을 줄기들을 찾아냈다. 부상과 그로
인한 통증 때문인지 평소처럼 쉽게는 찾지 못했지만, 기어코 찾아내 응급처지를 마친 세이야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경탄을 쏟아냈다.
"
이런 방송이…… 시청률이…… 높아지고 있다니……. 현대사회의 윤리는…… 확실히 박살…… 났군요……. 혹시라도 동의하고 있는……
크윽…… 시청자가 계시다면…… 우선 채널부터 돌리세요……. 당신들 때문에…… 제가 지금…… 후우, 이러고 있는 거니까요……."
응
급처치 덕분인지 세이야의 목소리는 조금 차분해져 있었지만, 역시 부상 때문인지 평소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말투였다.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독설에 시청자들은 쓴웃음만을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위화감이 시청자들을 업습했다.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세이야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셀프 카메라 영상이라 그것을 알아차리는 게 늦었던 것이다. 보통
진행자가 부상을 입으면 방송이 끝나지 않나? 어째서 지금 당장 구조대가 오지 않는 것일까.
"아마…… 이 방송이……
나갈 때 쯤이면…… 전 병원에 있거나…… 무덤에 있거나…… 여튼 그럴 겁니다……. 여튼, 제가 지금…… 자력으로…… 기어가고
있는…… 모습을…… 시청자분들이…… 보고계실 텐데……, 후우……. 별 거 없습니다……. 구르면서 무전기가…… 박살났고…… 다른
촬영팀이 여기로…… 오는 길이…… 하아, 없는 데다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쉘터를…… 만들어야…… 크윽……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한 이유로 여고생이 눈쌓인 산을 기어서 내려가고 있는 장면이 방송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눈 덕분에…… 미끄러져서…… 좋은데……, 하아, 후우, 이 방송…… 대체 무슨 깡으로 법에 안 걸리고…… 계속 나갈 수 있는 건지…… 진짜 모르겠네요오!"
마지막에는 악바리를 내지르는 세이야의 모습에 시청자들도 같은 의문을 떠올렸다. 진짜 궁금하다. 대체 무슨 백이 있길래 이 방송이 계속되는 것일까. 시청률로 어찌할 수 있는 것 같지가 않은데.
어
찌되었든, 결론부터 말하지면 세이야는 무사히 귀환했다. 전치 4주의 부상과 함께. 천운으로 뼈는 무사했기 때문에 장기입원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방송은 굉장한 시청률과 함께 열화 같은 성원에 힘입어 재방송까지 하게 되었고, 병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세이야는 나라에 망조가 든 게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고등학생 밖에 안된 애가 아파죽겠다고 징징거리면서 욕하는 방송을 좋다고 재방송까지 하다니. 이 나라에는 S만 가득한 건가……."
굳이 따지자면 일반 여고생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에 끌리는 게 아닐까. 하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
뼈가 무사하니 오랜 입원은 필요없다며 세이야는 불과 이틀 만에 퇴원했고, 곧바로 회사로 돌아오려고 했으나 사장을 비롯한 모두의 만류에 하루는 집에서 푹 쉰 후에 돌아왔다. 부상을 입고 난 후 거의 닷새 만이었다.
"류구코마치가 정상궤도에 올라갈 때까지 만이에요. 딱 이틀. 이틀만 바짝 일하고 한동안 쉴게요."
몸
여기저기 압박붕대와 파스로 도배한 세이야가 한 말이었다. 척 봐도 입원해 있어야 할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면 아무도 안 듣는 게
당연하지만, 이미 담당의사와 병원의 억류도 뿌리치고 나온 세이야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병원에 입원해
있더라도 데스크 워크는 무리가 없고 그렇다면 병원이나 사무실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말에 사람들이 납득하고 넘어간 것도 있었다.
애초에 일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지만 그 문제를 스리슬쩍 넘겨버린 게 세이야의 수완이리라.
여튼 세이야의 귀환은 요
며칠 간 아이돌들의 스케쥴을 엉망으로 짜고 있던 프로듀서의 실수를 상당 부분 고쳐냈기에 회사 입장에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그
회사의 주인인 타카기 준지로 사장의 심정은 그리 편치 못했지만, 그도 결국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동생 딸아이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그래도, 병원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하루카가 삼시 세 끼 사식을 넣어준다면 생각해볼게."
"……그, 그렇게 병원식이 맛없어?"
하루카의 물음에 책상 대신 소파에 앉아 류구코마치 활동으로 생기는 손수익표를 훑어보며 계산기를 두드리던 세이야는, 잠시 서류를 내려놓고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하루카."
"으, 응."
"절대, 아프지 마."
"어, 응, 응……."
야생에서는 벌레라도 씹어먹는 소녀가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로 맛이 없단 말인가.
"맛도 맛이지만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건강해질 사람도 약해져. 병원은 그런 곳이야. 사람 기운을 쑥 빼가서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어."
들어앉아 있는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이나 힘들지. 세이야는 그렇게 덧붙였다. 시니컬하기로 소문한 세이야가 무덤덤하게 그리 말하니 굉장히 설득력이 높게 느껴졌다. 그때 급탕실 쪽에서 유키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 마실 사람 있나요?"
"아, 나."
"부탁할게."
"나도. 도와줄게."
세
이야, 코토리, 하루카 순이었다.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하루카는 급탕실로 들어갔고, 잠시 후 두 잔의 컵을 들고 돌아왔다.
자신과 세이야의 것이었고 나머지는 유키호가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전조도 없이 하루카의 왼발이 미끄러졌다.
"우와아앗?!"
세이야는 하루카의 외침을 듣자마자 서류를 내팽개치고 하루카를 받아냈기에 다행스럽게도 잔이 깨지거나 뜨거운 차가 흘러넘쳐 화상을 입는 일은 없었다. 다만,
"……하루카……."
"아, 우와, 우와아앗?! 미미미미미안?!"
전신 타박상으로 전체적인 근력이 떨어져 힘이 부족했던 덕분에 하루카를 받아냈다기보다 반쯤 쿠션 역활을 하게 되어, 하루카의 팔꿈치에 어깨를 내려찍힌 꼴이 되버린 게 문제였다.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말로…… 해줘……."
"아냐 실수였어?!?!"
"하루카가 아무 것도 없는 바닥에서 넘어질 때 생기는 에너지를 1D(덜렁이/도짓코)라고 했을 때, 방금 전 일격은 약 13D라고 할 수 있어."
"훌륭한, 일격……."
"아니라니까?! 마미! 세이야! 진짜야?!"
그런 만담 같은 일들만이 일어나고 있었기에 오늘도 765프로덕션의 하루는 무사히 저물었다.
그리고 사건은 언제나 그렇듯 급작스럽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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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네!"
달
칵. 타박타박타박! 전화를 끊자마자 스케쥴 표로 달려간 코토리는 빠르게 그것을 훑어보고는 곧바로 프로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히비키의 스케쥴이 겹쳐있다. 그로 인해 이벤트 회사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왜 오기로 한 아이돌이 오지 않느냐고.
"그럼 그쪽은 히비키에게 맡기고, 이쪽에서 새로 보낼까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세이야를, 아……."
코
토리가 자신을 바라보자 세이야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신 타박상으로 붕대와 파스로 도배하고 있는 몸이다. 이번 일은 댄스.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은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의상도 노출도가 제법 있는 옷인데 틈새로 붕대와 파스를 보인다니. 말도
안된다. 그걸 풀고 떼어낸다고 해도 푸른 멍과 상흔이다.
"그럼……."
타카네와 치하야가 있지만 이쪽은 댄스 레벨이 벅차다. 게다가 지금가면 안무를 외울 시간도 촉박하다. 그렇다면 남는 건 미키인데 문제는 미키가 의욕을 보일 것인가. 그러나 그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그럼 미키가 가도 돼?"
"미키? 정말?"
"응. 갈게."
"그럼 부탁할게. 준비해 줘. 아, 프로듀서. 이쪽에서는 미키가……."
"어쩐 일이야? 네가 직접 나서고."
치하야의 물음은 당연했다. 지금까지 미키가 스스로 나서서 일을 하려고 한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그런 의문에 미키는 씩 웃으며 말했다.
"미키, 조금 열심히 해보기로 했어!"
그 미소는 지금까지의 미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열정이 엿보였다.
#####
그리고 그렇게 미키의 활약으로 무사히 사건을 넘긴 다음 날.
세이야는 프로듀서의 얼굴을 보고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마스터P."
"어, 응."
"어른과 아이가 아니라, 같은 회사 동료로서 한마디 하고 싶은데, 들어주실 건가요?"
"……들을게."
결심을 다진 듯한 프로듀서의 대답에 세이야는 심호흡을 하고는,
"정신 못 차려요?"
어
마어마한 기세로 그렇게 말했다.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지른 것도 아니건만 연하에 남녀라는 차이는 단숨에 메꿔버리는 엄청난
기백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멱살이라도 잡힌 것 같았다. 과연 생존형 아이돌. 위대한 어머니Mother Nature와 싸우는
소녀의 기운이란 이 정도란 말인가. 상상 이상인 세이야의 기세에 프로듀서는 주먹을 꽉 쥐고 다음에 대비했다. 하지만.
"……?"
아무 것도 없었다.
"……끝, 이야?"
"끝인데요."
그 말에 되려 맥이 탁 풀려버렸다. 아니, 딱히 혼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말 그대로 한마디로 끝나버리니 묘한 기분이었다.
"호되게 당해서 기합 바짝 들어간 사람을 뭐하러 또 혼내나요."
"아하하……"
"그리고 사람은 그렇게 실수하면서 성장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다음에도 이런 실수가 나온다면, 감봉 3개월이에요?"
"명심하겠습니다."
잊고 있었다. 리츠코가 류구코마치로 빠져나가서 현재 회사 경리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게 세이야라는 것을.
자신이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세이야가 말했다.
"뭐, 이제는 좀 주변 돌아볼 여유가 생기셨으니까 이번 같은 실수는 안하시겠죠."
"응."
혼
자서만 열을 내다가 실패했던 요 며칠 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서는 안된다. 좀 더 아이돌들의 의견을 듣고, 그에 맞춰 함께해야
한다. 혼자서 노력해봤자 이번과 같은 결과를 낼 뿐이다. 그걸 뼈저리게 느꼈다. 잊지 말자. 그리고 반복하지 말자.
"그래요. 그러시면 돼요."
세이야는 소파에 늘어지듯 주저앉으며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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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모두가 모여 함께 본 류구코마치 첫 데뷔를 본 세이야는 모두가 환호하는 가운데 역시나 하는 얼굴로 TV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저게 아이돌이지."
일단 당신도 아이돌이지 말입니다. 타카기 세이야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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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5일, 그러니까 내일이 입대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병원식은 정말 맛없습니다. 사흘 전에 장염으로 링겔도 맞고 죽만 먹었더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 피서여행 6화 가지고 몇 달을 끌었는지 모르겠네요. 단숨에 7화까지 워프! 하지만 입대! <-
- 여튼 다음 세이야는 휴가 때나 전역 후네요. 다음에 뵈요!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정말 연재 속도 느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