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크 위치스] 프로젝트 위치스!
[스트라이크 위치스] 프로젝트 위치스!
[스트라이크 위치스] 프로젝트 위치스! 2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않나.
이제는 입원실을 내 방으로 삼는 게 좋을까. 아니면 내 방을 입원실화 시키는 게 나을까. 물자관리 측면에서 보자면 후자가 낫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아무래도 그건 무리겠지. 음. 그렇다고해서 전자를 선택하자니 있는지도 의문인 보안점검 같은 게 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한테 민폐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뭔 의미에서?"
"팀의 체력을 책임질 인간 성기사가."
"……."
"왜?"
내 물음에 메이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체력을 책임진다는 건 일단 우리가 맞아서 체력이 깎인다는 게 전제 아냐?"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런가. 그렇군. 그렇다면.
"좋아. 실드로 바꾸자. 이지스가 필요해."
"방공체계라는 개념이 나오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지금 도입해. 그리고 리베리온의 우월한 국력으로 공돌이를 갈아넣어서 만들면 1년 안에 나오겠지."
"되겠냐."
평소라면 이쯤에서 나와 메이가 석양이 물든 바닷가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제법인데." "너도 마찬가지야." 하는 열혈청춘틱한 싸움을 시작했을 타이밍이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무리다. 왜냐면 둘 다 붕대를 칭칭 감고 침대에 누워있으니까. 난 양쪽 다리에 평타 직격이고 메이는 왼쪽 어깨 관통상. 네우로이 빔의 독성 침투는 옵션이다. 마녀가 아니었으면 당연히 골로 갔을 중상이다. 제기랄. 이 작전 입안한 녀석 내 반드시 대서양 바닷물에 내동댕이 쳐주겠어. 그런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자니 메이가 그땐 반드시 자신에게도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래. 해치우자!
뭐, 그건 그렇다치고. 베로니카 상태가 영 심상치 않다. 이쪽도 오늘 체인소드로 네우로이의 빔을 가르고 코어를 개발살 내는 활약을 했는데,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서보암 경파, 우측 옆구리 스침, 스트라이커 유닛 경파라는 기록을 달성했다는 거다. 덕분에 전투 끝나고 복귀하자마자 테이크다운. 곧바로 입원실로 실려왔다. 그리고 저쪽 침대에서 실시간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하고 있다. 평소에는 관운장마냥 마취 없이 살을 째고 뼈를 긁어도 신음소리 하나 안 내던 아가씨가 그랬다는 건, 이거, '그거'로군.
"'그거'지."
"'그거'네."
나와 메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프리카에서 로니카가 있던 부대는 항상 박살났다지?"
"그러면서도 본인은 멀쩡했었고. 그게 놈들 작전이었던 것 같지만, 이제 전술을 바꾼 것 같은데."
"덕분에 본인도 깨지고 덤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도 깨진 거구만. 나중에 아프리카 가서 그 아저씨 다시 만나면 이제 슬슬 일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좀 쪼아봐."
"내가 쫀다고 되겠냐."
그래도 언젠가 만나면 한 번 거하게 쪼아보자고 생각하며 나는 오른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여 주사위를 꺼냈다. 그 모습에 메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좋아. 해치워버려."
"그렇게 쉬운 게 아닌데……. 『강제 집행(Game Set). 선공 양보(Batting Second). 목적은 강제 퇴거(Eviction). 시작(Start).』"
언젠가 꿈에서 배운 단어를 읊으며 주사위를 던졌다. 허공에 떠오른 주사위는 순간적으로 격하게 회전하더니 5라는 숫자를 위로 한 체 침대 바닥에 떨어졌다.
"호오, 세게 나오는데."
"그러게."
나는 다시 한 번 주사위를 던졌다. 방금 전과는 달리 힘없이 돈 주사위는 침대 바닥에 떨어졌다. 숫자는 2. 졌다. 그와 동시에 베로니카의 상태도 나빠졌다. 숨이 막혀오는 것 같다.
"엑, 뭐야. 질 때도 있었어?"
"당연하잖아. 맨날 이기는 약속된 승리의 검 같은 게 아니라고."
"그 검 가지고서도 결국 브리튼은 멸망했던 것 같은데. 여튼. 그럼 끝이야?"
"아니."
머리를 긁적이며 나는 다시 한 번 주사위를 쥐었다. 그리고 말했다.
"『2연격(Double strike).』"
던져 나온 주사위의 눈은 6. 합은 8. 이기고도 남았다. 그와 동시에 일그러져 보이던 베로니카의 침대 위 풍경이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메이는 YES! 라고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감사합니다 주사위의 신이시여Thanks Dice God. 이걸로 한 건 해결. 자, 그렇다면.
"우리 꼬마 아가씨들은 어쩌고 있으려나."
중환자인 우리와는 달리 경미한 타박상이나 찰과상 정도로 끝난,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마음고생하고 있을 제이니와 쟌을 생각하며 나는 주사위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함께 하늘을 날던 사람이 며칠, 혹은 몇 달 동안 움직이지 못할 부상을 입고 돌아온다.
그 중에는 부상의 후유증으로 몇 년, 혹은 몇 십 년, 아니면 평생 고생하며 살아갈 사람도 있고, 갑작스레 영원히 눈을 감기도 한다.
"……."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 수많은 사람들만큼 수많은 부상자들을 보았다.
그토록 많았던 사람들과 헤아리고 싶지 않을 만큼 많은 부상자들과, 절대 잊지 못할 사망자들을 기억한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나였다.
"……니……."
잊고 있었다. 분명 잊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이곳에 와서 언제 어디서든 그 어떤 역경이든 헤치고 나올 것 같은 이들과 함께 하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는 안되건만.
"……이니……."
아무 것도 몰랐다는 건 결코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걸. 내가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걸.
이번에도. 내 실수 때문에.
"제이니 씨?"
"……어? 어, 응."
상념에 잠겨있던 의식을 떠올리자 눈앞에 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인 순간, 붕대를 감은 손이 보였다. 쟌의 손이다. 무리하게 클레이모어를 휘두른 여파다. 옷에 가려져 있지만 붕대는 팔꿈치까지 메여 있을 것이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쟌은 황급히 손을 등 뒤로 감추며 말했다.
"괜찮아요 이제는. 요시카한테 치료도 받았고. 오히려 치료할 때 아팠죠."
그건 요시카가 앨리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거야. 실천주의 학파의 힘이 날로 강해지는 게 느껴진다.
그것보다도, 여기 사람들은 왜 그렇게 다들 자기 아픈 것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신경쓰는 걸까. 오늘만해도 그렇다.
베로니카.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했던 오라샤 소녀는 기절하기 전에 "패배는 흔한 일이다. 그리고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다가 입은 상처다. 신경쓰지 마." 라고 했다.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말이다.
메이. 스물이 넘어 실드가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나는 감사관은 "괜찮아. 애초에 전멸할 뻔했던 작전을 성공시킨 건 너야. 가슴을 펴라고 꼬맹이. 우울해 하지 마. 살아남았잖냐." 라고 했다. 붕대를 감지 않은 쪽 손을 휘저으며.
세라. 다른 이로쿼이 아이들을 전선으로 보내지 않기 위해 하늘의 포병이 된 상냥한 들소는 "괜찮아. 잘했어. 그러니까 울지 마." 라고 했다. 반파된 스트라이커 유닛에서 피로 젖은 다리를 빼내며.
쟌. 두렵고 무서워도 굴하지 않고 날아올라 용맹하게 검을 휘두른 작은 새는 지금도 이렇게 내게 괜찮다고 얘기하고 있다.
뭐야. 왜 그렇게 다들 얘기하는 거야. 뭐냐고 대체.
내 실수였다. 적의 변화와 함정을 인식한 시점에서 작전을 바꾸던가 포기했어야 했다.
그런데 다들 잘했다고 한다. 괜찮다고 한다. 마녀가 아니었다면 죽도록 괴로웠을, 혹은 죽었을지도 모를 상처를 입고도, 그런 상황에서 간신히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뭐가."
"네?"
"뭐가 괜찮은 거야."
"제이니 씨……."
"욕하고 화내야 하는 게 정상이지 않아? 잘못한 지휘관은 욕 먹는 게 당연하잖아."
바르크호른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그녀가 알려준 인생과 긍지를 떠오르게 한다.
눈부신 사람들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앞서 나가 방패가 되는 사람들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가 고민하는 것보다도,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눈부신 긍지와 명예를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초라함을 더욱더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왜 다들 괜찮다고만 하는 거야. 왜 그러는 거냐고."
"제이니 씨."
"아프잖아. 힘들었잖아. 투덜거리고 비아냥거리고 그러는 게 사람이잖아."
"제이니 씨."
"내 말에 따르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그런데 왜. 다들……. 모르겠어……."
고개가 숙여진다. 눈앞이 흐려진다. 가슴 속이 답답하다.
그때, 무엇인가가 나를 끌어안았다.
그게 무엇인지를 깨닫는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쟌?"
"똑같으니까요."
"……뭐가?"
"아프고, 힘들고, 무섭고, 화가 나는 건, 다들 똑같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쟌의 목소리는 촉촉히 젖어있었다.
"다들 똑같아요. 똑같이 아프고, 똑같이 힘들고, 똑같이 무서워요. 그러니까 다들, 제이니 씨랑 같은 마음이니까……. 그러니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숨죽여 우는 작은 소리만이, 기대듯하면서도 지탱해주는 온기만이 이어졌다.
납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부정한 것도 아니다.
그저, 다들 소중했던 누군가의 희생을 뒤로 하고, 그걸 가슴에 품고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을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울고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지금은.
"……응. 고마워."
함께 눈물을 흘리며, 온기를 나누기로 했다.
#####
"……우리가 안 나가도 되겠는데?"
"그러게."
입원실 앞에서 들려오는 두 꼬마 아가씨의 대화를 들은 나와 세라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 언니, 간만에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뭐, 제이니는 나중에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얘기를 해서 풀어줘야할 필요가 있겠지만. 역시 아직 과거를 떨쳐내지 못했나. 물론 쉽게 휙휙 던져버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서도.
바르크호른과의 대화로 제이니가 조금은 나아졌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쉽게도 여전히 그 꼬마 아가씨는 [아군의 죽음은 자신의 지휘 때문이다] 라는 트라우마를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전쟁 초기에 사령부가 보여준 멍청함이 아직까지도 제이니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은데도.
여튼.
"후후, 이 훈훈함. 지금 나가서 둘 다 안아주고 싶군."
"너 그러다가 어깨 주저앉는다. 깔끔한 관통이라서 푹 쉬면 깔끔하게 나을 거라는 말 맹신하지 마. 여차하면 훅 간다고."
"알고 있어 나도."
자, 그럼 이제 조용히 물러나서 침대에 누워 한 숨 푹 자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용무는."
"끝나셨나요?"
요시카와 앨리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Holy shit…….
삐걱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나는 멀쩡한 오른손을 뻗어 세라의 어깨를 붙잡았다. 잡았다 요놈. 어딜 도망가려고.
"옛날부터 시즈 탱크는 적이 근접하면 시즈 모드 풀고 도망치도록 되어 있어."
"도망칠 수 없다면 퉁퉁포로 버텨야지."
"왜 하필 다리를 다친 걸까. 제기랄. 잊지 않겠다 네우로이."
투닥거리던 우리는 결국 두 사람에게 붙잡혀 그대로 침대 위로 직행했다.
이후 우리가 어찌되었냐면, 요시카랑 앨리스에게 중환자가 휴식 취하지 않고 뽈뽈거리며 돌아다닌다고 혼났습니다. 넵.
최근에 요시카 엄해진 감이 없잖아 있다. 특히 다친 사람들한테는 더더욱.
뭐, 환자가 휴식 취하지 않고 돌아다니면 안 나으니까 당연히 혼내겠지만서도. 뭐, 무섭다기보다는 귀엽지만.
"……듣고 있나요, 메이 씨?"
"그야 물론."
"……."
의심의 눈초리가 사라지지 않지만, 아쉽게도 높으신 어른들과의 눈치 싸움을 밥 먹듯이 해온 내게는 아직 상대가 되지 않는단다.
결국 포기했는지 다시 설교를 시작한 요시카를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딴 생각을 시작했다. 오늘 저녁은 뭐려나. ……이런. 최근에 세라랑 같이 다니면서 먹을 거 생각만 늘어난 것 같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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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얘기가 있었던 것 같지만 본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유쾌함과 훈훈함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암요. 그렇구 말구요."
"……."
"지금 당장 그게 누구한테 하는 얘기인지 말하지 않으면 베로니카가 체인소드를 휘두를 것 같은데."
"아니, 괜찮아. 베로니카. 워프의 속삭임 같은 거 아니니까 체인소드 뽑지마."
어허. 넣어둬. 어허. 씁. 어허. 일단 체인소드에서 손은 뗐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히 빛나고 있다. 무섭다 베로니카. 무서워.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본 페리느가 평소의 우아한 톤으로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전파를 수신하신 건가요?"
"시공을 초월하여 세계를 뛰어넘은 전생의 전파."
메이의 정답이지만 이해하는 사람이 없을 대답을 들은 페리느는 찻잔을 기울여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그러신가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겼다. 되려 경악한 건 셜롯과 메이였다.
"페, 페리느가 태클을 걸지 않았어!"
"성장인가! 페리느의 정신적 성숙인가!"
"뭐가 어찌되었든 좀 조용히 할 수 없겠나 리베리안."
"동감이에요. 다과회에서의 소란스러움은 운치가 없지 않나요."
"설마했던 갈리아와 카를스란트의 동맹이 현실로!"
"우리는 지금 역사의 순간에 서 있는 건가……."
소란스러운 구대륙 동맹 대 신대륙 동맹 인원들은 일단 제껴두고, 나 역시 머그컵을 들어 홍차를 입에 머금었다. 음, 좋다. 무슨 찻잎인지는 모르겠지만. 참고로 다른 사람들은 다 찻잔인데 나만 머그컵인 이유는, 예전에 홍차를 한 입에 털어넣는 내 모습을 본 부대원들이 정말로 진지한 얼굴로 그건 아니라며 머그컵을 주었기 때문이다. 왜. 솔직히 그때 주전자 다이렉트로 마시고 싶었어.
여튼, 오늘은 무슨 일인가 하면 501부대와 프로젝트 위치스의 교류회다. 교류회라고는 해도 사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인지라 그냥 모여서 다같이 차 마시고 과자 먹고 수다 떠는 걸로 끝이다. 바로 어제 네우로이도 때려잡았겠다, 특별히 할 일도 없겠다, 그러면 모여서 수다나 떨자, 하는 김에 차랑 과자도 준비하고, 좋겠네, 야간조도 참여할 수 있게 저녁 때 하자, 그래, 오고 싶은 사람 모여라, 하는 과정을 거쳐 급조한 모임이다.
……그것 뿐이라면 좋겠지만, 사실 이 교류회는 상당히 고도의 정치적 공작에 의해 마련된 자리다.
왠지 모르게 바깥에서는 501부대와 프로젝트 위치스 멤버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듯 하다. 착실하게 실적을 쌓아온 501과 그걸 위협하는 PW 사이에 갈등이 없을 리가 없다나 뭐라나. 정작 우리는 언제든 상부상조하고 있는데. 서류상 편제가 갈려있을 뿐 실제로는 완전한 하나의 부대나 다름이 없다. 부대원들 사이도 약간의 편차는 있을지언정 다들 양호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고. 헛소문 퍼뜨린 건 누구야 대체.
어찌되었든 그러한 소문 때문에 사령부에서는 우리에게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도록'이라는 명령을 내려보냈다. 평소에도 화기애애하게 지내고 있는데. 그렇지만 일단 뭔가 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해야하고, 솔직히 소문도 신경쓰였기 때문에 그 소문을 잠식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교류회를 계획했다.
"……그리고 증거가 될 사진을 찍을 사람들로 우리를 불렀고."
"응. 정확하게는 메이가 불렀지만."
한숨을 내쉬며 찰칵, 하고 사진을 찍는 남자─알버트 카일 어니스트의 말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하긴, 그런 게 아니면 금남구역인 이 부대에 들어오지도 못했겠지."
"금남구역 해제된 지 꽤 됐던 것 같은데, 여튼 미안해. 한창 바쁠 텐데."
"최근에는 한가해졌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덕분에 미인들 가득한 공간에 들어올 수 있게, 농담이야 농담."
내 매서운 눈빛을 눈치챘는지 알버트는 양손을 들어올리며 항복의사를 표명했다. 이 아저씨가 사선을 몇 번 넘기면서 계급과 배짱이 늘더니 묘하게 아저씨틱한 개그가 늘었어.
"근데 굳이 부를 거면 저쪽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어?"
내가 앉은 의자 등받침 쪽에 양 팔을 걸치며 알버트가 가리킨 쪽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사진기를 들고 미나 대장님과 대화 중인 중성적인 느낌의 남자가 서 있었다. 필립 카린스. 브리타니아 공작가의 청년으로, 우리와 마찬가지로 스트라이커 유닛을 가동시킬 수 있는 인물이다. 우리들을 마녀Witch라고 부르듯 그는 마법사Wizard라고 불린다. 그런데 위치Witch는 남녀 구분없는 말이었던 것 같은데.
"프로젝트 위치스 멤버잖아. 중립적인 입장에서 쓸 수가 없다던데."
"그런가. ……어? 카린스가 PW 멤버였어? 예전에 왕립연구소 소속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둘 다 맞아. 왕립연구소 항공각 연구부…… 여튼 거기서 파견되서 지금은 PW 멤버야."
덕분에 한동안 부대 안 분위기가 껄끄러웠지. 미나 대장님이 과거를 떨쳐내기 전까지 왠만하면 서로 안 부딪치게 해야 했으니까. 설마 우리가 대립한다는 소문은 그때 생긴 거였나. 가능성은 있다만.
"그럼 저걸 찍으면 되겠네. 자, 가라 알버트!"
"Rog!"
장난스러운 내 명령에 알버트가 씩 웃고는 기세 좋게 포즈를 잡으며 사진기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찰칵. 카메라가 서로 미소를 지으며 대화하고 있는 필립과 미나 대장님을 찍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또래 소년소녀들의 모습 같아서 좋다.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대면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다른 쪽도 왁자지껄이든 흥얼흥얼이든 대체적으로 온화한 분위기다. 한동안 이런 분위기에 잘 끼지 않던 베로니카도 에리카랑 공중전에서의 기동로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하고 있다. 뭐, 소녀틱한 얘기 같은 건 당연히 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게 어디야.
우리가 서로 으르렁거리니 어쩌니 하는 사람들이 이 광경을 봐야할 텐데. ……메이와 바르크호른 대령님이 서로 헤드락을 걸고 메다꽂으려고 하고 있는 건 장난일 것이다. 응. 그래야 한다. 감사관과 카를스란트 에이스의 싸움은 여차하면 국제문제가 된다는 것 쯤은 메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알고 있겠지?
그때 조용히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냐다. 주변에는 에이라, 요시카, 루키니, 쟌, 제이니가 같이 피아노를 뚱땅거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운율에 튀는 음이 섞이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지만, 딱히 듣기 싫은 느낌은 아니었다. 화기애애해서 좋다. 까르르 하는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섞여있다.
찰칵. 사진기 소리가 들렸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알버트가 옆자리에 앉아서 사진기를 들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찰칵.
"뭐."
"자식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훈훈한 미소를 찍어봤어."
"……."
그러지 마시오 전폭대장. 가뜩이나 어머니 소리 듣고 있고, 본의 아니게 딸처럼 키운 아이들이 여럿 있다지만, 아직 스물도 안 넘긴 소녀를 유부녀로 만들지 마시오.
그런 복잡한 심정과는 달리 교류회는 무사히 지나갔고, 사진들 또한 별일 없이 신문에 실려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덕분에 불화설은 가라앉았지만, 이제는…….
"네가 할머니고, 사카모토랑 미나가 아빠 엄마에 나머지는 자식들이라. 꽤 적절하지 않아?"
"……적절하냐."
501+PW 가계도 같은 게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이제는 할머니냐. 엄마 들소에서 할머니로 업그레이드냐.
낄낄거리며 가계도(?)를 보고 있는 메이의 모습에, 나는 한숨과 함께 집무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창문 너머 우중충한 브리타니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자연이 내 심정을 그대로 대변하는구나.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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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라 비중이 많아 보이는 건 쓰는 사람이 저이기 때문입니다. 아쉬우면 쓰시던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시던가! 하하하하하핳하하 ……써주세요 아무나! 제발! 내가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걸 시작한 거야?!? 살려줘!! 잊지 않겠다 PW 멤버들이여어어어어어!!!!
- 설정을 쪽지나 덧글로 부탁했던 이유는 다른 거로 봤다가 기준을 알 수 없는 사지방 통제에 걸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부디 불쌍한 군인에게 따스한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메일도 통제되는 세계라구요, 여기는!
- 그러니까 여러분. 위치스 팬픽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무기 고증 지적 환영합니다. 다만 이쪽은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