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X나노하] 제로의 나노하 Episode 7. 공주님의 방문.
[제로X나노하] 제로의 나노하 Episode 7. 공주님의 방문.
꿈이다.
루이즈는 확실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루이즈! 루이즈, 어디 간 거니? 루이즈! 아직 설교는 끝나지 않았다! 루이즈!”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은 분명 어머니이리라. 가장 최근이었던 겨울 방학 때 들었던 목소리보다 조금 더 젊은 느낌이었지만 그것은
미묘하게 주변 사물이 크게 보이는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이해가 되었다. 자신도 어려진 것이다. 어머니 역시 젊어지신 것이리라.
비록 꿈이지만.
그렇지만 왜 이 덤불 아래에 숨어 있는 것일까.
옛날부터 혼나게 된다면 당연히 벌을 받았다. 도망치거나 숨는 것은 귀족의 긍지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있었으니까. 고민하고 있자니 주위를 지나가는 하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이즈 아가씨도 고생이시네.”
“맞아. 손윗 누이 두 분은 그렇게 마법을 잘하시는데…….”
아, 그랬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마법에 관한 것에 대해 비난을 듣게 되면 자신은 언제나 도망쳤다. 조금 나이를 먹고 나서는 반발심에 덤벼들었지만.
하인들이 덤불 속을 뒤지기 시작하자 루이즈는 조심스레 몸을 움직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굳이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다기보다는 그냥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의 꿈이라고는 하지만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런 꿈도 많으니까. 보통은 대부분 악몽이지만.
그
렇게 생각하면서 루이즈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목표는 중앙정원의 연못. 주변에는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작은 새들이 모이는
다리와 쉴 수 있게끔 준비된 의자가 있고, 연못 중간에는 조그마한 인공 섬에 새하얀 돌로 만든 정자가 있는 곳이었다. 근처에는
작은 배가 떠 있는데 루이즈가 어릴 때는 가족 모두가 뱃놀이를 했었다.
지금은 아무도 하지 않지만.
그렇게 언제나 가족들이 함께 놀던 아름다운 정원이 자신이 언제나 숨게 되는 비밀의 장소가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래도 루이즈는 그곳을 향해 움직였다.
관리를 하지 않아 잡초가 생기고 흙먼지가 가득한 연못 주변을 보며 루이즈는 다리를 건넜다. 연못 중앙의 인공 섬 근처에 묶여 있는 작은 배에 숨어 있는 게 루이즈의 목표였다.
그렇지만 꿈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루이즈는 준비해 둔 모포 속으로 파고드는 대신 모포를 배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졌다. 누구일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한 소녀가 있었다.
“울지 않으시네요.”
갈색 머리카락을 트윈테일로 묶은 소녀였다. 가슴 부분에 커다란 빨간색 리본이 달린 하얀 옷을 입은 소녀는 희한하게 생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이제 10대 초반에 들어섰을까. 아직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의 소녀였다.
그것은 분명 자신이 소환해낸 사역마, 나노하였다.
꿈속에서는 미래의 사역마인가?
루이즈는 시답잖은 고민은 그만두기로 하고 나노하의 말에 대답했다.
“울 리가 없잖아.”
“어째서요?”
물어보고는 있지만 소녀는 대답을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을 천천히 이끌어주는 것 같은 얼굴로 말하고 있는 데에서 눈치 챘다.
그랬기에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이제 내 마법의 길을 찾았으니까.”
나의 말에 소녀 역시 웃으며 답해주었다.
“잊지 않게 될 때까지 곁에 있어드릴게요. 루이즈 씨.”
나는 대답했다. “고마워.” 라고.
그리고 꿈에서 깼다.
─────
차라는 것은 미묘한 음료이다. 물을 끓여서 찻잎을 달이는 것만으로도 마실 수 있는 간단한 음료이지만, 그와 동시에 어떻게 끓이느냐에 따라 향 좋고 맛 좋은 차가 나오기도 하고 쓰고 떫기만 한 차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지금 조리실은 다도 연습에 빠져 있는 메이드들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학원의 잡다한 일들로 바쁘더라도 시간이 남으면 다도 연습을 하는 게 학원 메이드들의 실익이 걸린 취미였다.
객
관적으로 봤을 때 메이드들이 노리는 것은 남은 재료들로 만든 케이크와 함께 차를 마시는 것으로 보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엄격한 교육을 받은 메이드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소녀이다.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게 더 신기할지도 모른다.
조리실의 총책임자인 마르토는 그런 광경을 보면서 혀를 찼다.
“이렇게 만들어도 귀족들은 맛도 모르고 먹기만 하다가 대충 버리니, 쯧.”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도 있어요.”
“수가 너무 적어. 요리라는 건 단순히 먹는 게 아니란 말이야!”
여전히 열혈 중년인 마르토를 진정시킨 것은 메이드들이었다. ‘시끄럽다.’, ‘차는 주방장의 영역이 아니다.’, ‘소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냐.’ 등의 말과 함께 다같이 노려보자 기력 좋은 그도 후퇴한 것이다.
“하아, 기력이 넘치는 건 좋지만 분위기를 조금은 파악해주셨으면 하는데 말이지.”
시에스타의 한숨 섞인 말에 나노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기운 넘치지 않는 마르토 씨는 마르토 씨 같지 않잖아요.”
“그렇기는 하네. 아, 케이크 다 됐어. 들고 가기만 하면 돼. 찻잎은 미스 바리엘의 것을 쓸 거지?”
“네.”
“그럼 조심해서 가.”
“네. 나중에 봬요.”
시에스타의 마중을 받으며 나노하는 조리실을 나섰다.
─────
후우케 사건이 끝나고 나서부터 루이즈를 보는 학생들의 시선은 180도 바뀌어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나
제로라 불리며 무시당하던 소녀가 트리스테인 귀족 모두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도적을 잡은 것이다. 시선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루이즈는 최근 기분이 상당히 좋은 상태였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좋게 바뀌어 있었고 공을 세운 덕에 슈발리에의 칭호도 얻었다. 그리고…….
“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도 있나요?”
시선을 느낀 나노하가 루이즈를 향해 물었다. 차를 끓이고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아니, 기대돼서 말이야.”
“어제도 마시셨잖아요?”
“잘 끓여진 차는 언제나 사람을 기대하게 만드는 거야.”
루이즈의 말에 나노하가 덧붙였다.
“거기에는 당연히 케이크가 들어가겠죠?”
“당연하잖아? 감사히 여기도록 해. 내가 먹어주는 거니까. 혹시라도 부족하기만 해봐. 난 입이 높다고?”
“미도리야의 차와 케이크는 언제나 손님들을 만족시킬 수 있어요.”
나노하는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대답했다. 관리국의 교도관이라고 해도 아직은 12세. 자랑하고픈 것이 있다면 속으로 감추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칭찬받고 싶은 게 당연한 나이다. 자신도 아직 어린 쪽이지만 그것을 아는 루이즈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 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들어와.”
“자, 그럼 실례~”
“들어갈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큐르케와 타바사였다. 각자의 손에는 조그마한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자연스럽게 방 중앙에 있는 탁자의 의자에 앉는 큐르케를 보며 루이즈가 말했다.
“설마 너와 다과회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 큐르케.”
큐르케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 어때? 맛있는 차와 케이크가 있다면 소녀들이 모일 이유는 충분하다고? 이쪽의 타바사도 이래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많이 먹기도 하고 특히나 단 것에는 취약하니까, 잠깐, 타바사, 우왓! 알았어, 꺄악! 그만할게, 핫!”
옆구리를 꼬집는 타바사의 공격에 큐르케는 항복의 제스쳐를 취했다. 그것을 보며 루이즈와 나노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잠깐, 뭘 웃는, 읏! 타바사 그만!”
“푸흡, 아하하하!”
결국 웃음은 터져 버렸다. 처음부터 무리였다. 이 나이의 소녀들에게 웃음을 참으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고문보다도 잔혹한 일이니까.
“그만 웃으라니까아—!!”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외친 큐르케의 목소리가 탑에 울려 퍼졌다.
─────
다음날.
학원 최악의 선생이라는 이명 아닌 이명을 가진 기트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화를 잘 내며 긴 흑발에 칠흑의
망토를 두르고 다니는 이 교사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니, 어떻게 보면 학원 최악의 선생이라고 불리는
데에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그는 교실에 들어옴과 동시에 대뜸 말을 시작했다.
“수업을 시작하지. 모두 알고 있는 대로, 나의 이명은 질풍. 질풍의 기트이다.”
조금 소란스러웠던 교실이 고요한 분위기에 감싸이자, 기트는 그 모습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큐르케를 가리켰다.
“최강의 계통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미스 첼프스트?”
“허무가 아닌가요?”
“전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현실적인 답을 묻고 있는 거다.”
으스스하며 음침한 목소리에 하나하나 거슬리는 말투. 그러니 인기가 없지요, 미스터 기트. 그렇게 생각하며 큐르케는 조금 대담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거야 당연히 불꽃이지요, 미스터 기트.”
“호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모든 것을 불태워 없앨 수 있는 것은 불길과 정열. 그렇지 않나요?”
“아쉽지만 그렇지 않다.”
“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트가 대답했기 때문에 큐르케는 순간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곧 상황을 파악한 큐르케는 표정이 굳었고, 그것을 본 기트는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자신의 지팡이를 꺼내 들며 말했다.
“시험 삼아 나에게 불꽃 계통의 마법을 사용해보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이 선생은.
상대방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큐르케는 잠시 기트를 바라보았다.
적을 탐색하는 것이다. 머리 빈 게르마니아 여자라고 불려도 그것은 평소 생활과 연애의 이야기. 결투, 전투 등 싸움이라 칭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게르마니아 무가 집안의 피가 작용하게 되어 냉철해진다. 그것이 큐르케라는 여자의 숨겨진 모습의
일부였다.
집안사람들과 타바사 밖에 모르는 이야기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을 무언가 오해한 기트는 피식, 하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뭐하는 건가, 미스 첼프스트? 불꽃 계통이 너의 특기가 아니었나?”
비웃는 듯한 태도에 큐르케는 씩 웃었다. 차가운 미소. 상대방을 쓰러뜨리겠다는 의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미소였다. 큐르케는 가슴 사이에서 지팡이를 꺼내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화상으로는 안 끝날 겁니다, 미스터 기트?”
“상관없다. 진심으로 하게나. 그 유명한 첼프스트 가의 붉은 머리가 장식이 아니라면.”
큐르케는 차가운 미소마저도 지운 체 주문을 영창 해 나아갔다. 조그마한 불구슬이 직경 1m의 거대한 화구(火球)가 되는데
걸린 시간은 10초도 걸리지 않았고, 당황한 학생들은 책상을 옆으로 세우고 연금 마법으로 강화하거나 자신의 사역마를 불러들이는
등의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대비를 하던 말던 큐르케는 화구를 가슴 쪽으로 끌어들이는가 싶더니 부드럽게 밀어내었고, 화구는 처음에 부드럽게 밀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화르륵!
주변의 공기를 태우며 짐승의 포효 같은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화구를 보면서도 기트는 여전히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손에 쥔 지팡이를 검을 휘두르듯 가로로 휘둘렀다.
그
러자 기트를 집어삼킬 것 같았던 화구는 흩어져버렸다. 그렇지만 화구가 가지고 있던 열량은 주변의 공기를 뜨겁게 달군 뒤, 기트가
조작한 바람에 실려 큐르케를 향해 날아들었다. 불이 없다고 해도 달아오른 공기는 간단히 맨몸으로 맞기에는 무리가 있는 법. 그것도
열량을 간직한 체 바람 계열의 메이지가 압축한 바람은 큐르케가 만든 화구와 동급이었다.
그 순간,
<Protection>
몰아칠 열풍에 대비해 허리를 숙이고 방어자세를 취하고 있던 큐르케 앞에 기계음 같은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분홍빛 마법진이 펼쳐졌다.
콰앙!
폭발음과 함께 주변으로 열풍이 흩어졌다. 여전히 후끈한 열기를 품고 있었지만 적어도 화상을 입을 정도로 심한 열기는 아니었기에 주변에 피해가 가지는 않았다.
후끈한 바람이 어느 정도 가시자 큐르케는 방어 자세를 풀고 앞을 바라보았다.
“나노하…….”
“괜찮아요, 큐르케 언니? 꺄악!”
“우와아앗, 나노하! 이 언니를 구하기 위해서 바람같이 촥! 멋져 멋져!”
상대가 나노하임을 깨달은 큐르케는 곧장 나노하를 끌어안았다. 루이즈가 대놓고 노려보았지만 이미 큐르케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읍, 저, 저기, 조금 놓아주셨으면, 푸하!”
“흐흥~ 싫은 거야? 이 언니가 싫은 거야?”
“시, 싫은 건 아니지만, 하아, 숨이!”
큐르케의 가슴에 파묻힌 형태가 된 나노하는 호흡곤란 직전까지 가서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그 장면에 대다수의 남학생들과
소수의 여학생들이 얼굴을 붉히며 엄지를 치켜든다거나 흘러넘치는 코피를 닦아낸다거나 했던 것은 무시해도 될만한 일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붉어진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기트는 헛기침으로 아득히 머나먼 이상향으로 떠나가려는 학생들을 현실로 끌어내린 뒤 수업을 재개하기 위해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유비키타스 델 윈데-”
그 순간, 교실 문이 열리며 굉장히 말하기 힘든, 그러니까 “취향이니 존중해주시죠.” 같은 대사를 내뱉을 것 같은 긴장된 얼굴의 콜베르가 들어왔다. 커다란 롤 케이크 같은 둘둘 말린 금발 가발을 쓰고 로브에는 풍성한 레이스나 정성스럽지만 어울리지 않는 자수가 놓여 있는 로브를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한눈에 보기에도 어색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꾸미고 있는 것일까.
“무엇입니까, 미스터 콜베르?”
눈썹을 찌푸리며 한눈에 봐도 호의적이지 못한 시선을 보내는 기트의 모습에 콜베르는 당황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아차차, 미스터 기트. 실례하겠습니다.”
“지금은 수업중입니다만?”
“아, 그것 때문입니다.”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 기트를 뒤로 하고 콜베르는 학생들을 향해 외쳤다.
“오늘 수업은 모두 중지입니다!”
그 말에 모든 학생들이 “와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귀족답지 못한 태도에 일갈을 한 콜베르는 잠시 후 학생들이 진정하게 되자 말을 이었다.
“황송하게도, 선제 폐하가 남기신 유품, 우리 트리스테인이 하르케기니아에 자랑하는 가련한 한 송이 꽃, 앙리엣타 공주님께서, 오늘 게르마니아 방문에서 돌아오시는 길에, 이 마법학원에 행차하십니다.”
눈에 보일 정도로 교실이 술렁였다.
당연한 일이다. 귀족 중의 귀족인 왕족, 그것도 여자라고는 하지만 정통 왕위 계승자인 앙리엣타 공주의 방문은 귀족들로 이루어진 이 학교에 상상 이상의 파급을 불러온다.
“따라서,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갑작스런 일입니다만,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환영식전의 준비를 합시다. 그 때문에 오늘의 수업은 중지. 학생 여러분은 정장으로 정문에 서주십시오.”
학생들은 긴장한 얼굴이 되어 일제히 끄덕였다. 미스터 콜베르는 엄중하게 끄덕이고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여러분들이 훌륭한 귀족으로 성장한 것을 공주님께 보여드릴 절호의 기회입니다! 전하께서 좋게 기억하실 수 있도록 정신 차리고 지팡이를 닦아놓으십시오! 알겠습니까!”
─────
공주가 가지 않을 것이 뻔한 학원 구석이나 주방, 그리고 하인들의 숙소까지 대청소의 열기에 빠져 있는 것을 큐르케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희한한 데까지 준비하는구나, 너네 나라는.”
루이즈는 그런 큐르케를 노려보았다.
“시비 거는 거야?”
“아니, 그냥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서 놀란 것뿐이야.”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낮은 게르마니아의 귀족인 큐르케로서는 공주가 가지도 않을 곳까지 일일이 정비하는 트리스테인 귀족들의
모습이 이색적으로 보인 것이다. 전통을 귀하게 여기는 나라다운 일이지만 전통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큐르케에게는 쓸데없는
일이었다.
근처에 서 있던 기슈가 그 둘의 말싸움에 끼어들었다.
“게다가 귀하신 분이시라고? 우리 공주님은. 여왕이 한번도 없었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는 여왕님도 몇 분 계셨으니까, 잘하면 여왕이 되실 분이시니까.”
“그게 기슈 너의 자랑스러운 태도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물론 아름답고 청초한 공주님과 우리 그라몬 가는, 흐익, 몽모랑시?!”
“헤에, 계속해보시지?”
“아, 아니, 저기 잠깐만!”
등 뒤에 몽모랑시가 있었다는 걸 잊은 채 공주님의 미모를 칭송하던 기슈는 그대로 끌려가버렸다. 자기 무덤을 판 꼴이다.
어찌되었든 공주가 마차에서 내려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자 환호가 울려 퍼졌다. 그것을 보며 큐르케는 앙리엣타를 보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야, 내 쪽이 더 아름답잖아. 어때, 나노하? 언니랑 저기 공주님이랑 누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
“에에, 두 분 다 굉장히 아름다우신데…….”
“그래도 그 중에서 누가 더? 응? 말해봐.”
“고, 곤란해요…….”
큐르케의 압박에 나노하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루이즈를 바라보았다. 그녀라면, 평소에는 좋은 사람이지만 이런 때는 곤란한 큐르케의 폭주를 한방에 멈춰 주리라. 그렇지만 루이즈는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 순간 루이즈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 변화에 신경이 쓰여서 앞을 보니 멋진 깃털
모자를 쓴 늠름한 모습의 젊은 귀족이 있었다. 확실히 남자다운 모습은 멋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독촉하던 큐르케도 그 젊은 귀족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나 오빠에 비하면 그다지…….
확실히 단련된 듯 균형 잡힌 몸과 부드러움과 강함을
겸비한 듯한 외모는 여성들에게 사랑받을 타입이었지만, 시로나 쿄우야 같이 이미 평범한 인간의 범위를 벗어난 사람들과 살아온
나노하에게 저 정도는 한눈에 푹 빠질만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직 12세이며 그쪽 방면으로는 둔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나노하에게
눈앞의 귀족은 그저 멋진 사람일 뿐이었다. 즉, 루이즈와 큐르케가 왜 멍하니 쳐다보는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고민에 빠진 세 사람을 보며 타바사는 한마디로 압축했다.
“생각의 차이.”
이러나저러나 객관적으로 가장 사령탑에 어울리는 사람의 말투였다.
─────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에스타와 함께 씻고 루이즈의 방으로 돌아온 나노하가 본 것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루이즈였다.
“루이즈 씨?”
“응. 아, 왔어?”
방으로 들어온 나노하를 이제야 깨달은 듯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뭘 그리 놀라세요?”
“아니, 아무것도.”
“안 주무세요?”
“자야지. 아니, 조금 있다가…….”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자신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라도 있는 것일까.
말해주지 않아서 서운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것을 지켜주어야 한다. 가깝기 때문에 비밀을 들추어도 될 거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그렇기에 나노하는 루이즈의 행동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너무 긴장하고 있다는 게 보일 정도가 되자, 나노하는 방안을 이리저리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루이즈의 앞에 딱 섰다. 그리고는 놀라 비명을 지른 루이즈가 뭐라고 하기 전에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말 못하는 것이라면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만큼 중요한 일일 테니까. 그래도 조금은 진정해주세요. 적당한 긴장은 좋지만 너무 긴장하는 건 일을 망치니까요.”
“……나노하.”
뜻밖의 말에 루이즈는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나노하의 눈을 보았다. 한점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 루이즈는 점차 진정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길게 두 번, 그리고 짧게 세 번.
그
소리에 루이즈가 다시 긴장으로 굳어갔다. 그렇지만 방금 전처럼 심한 수준은 아니었기에 나노하는 루이즈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방문을 열었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새까만 로브에 후드까지 푹 눌러쓴 사람이었다. 주변을 살피듯 좌우를 돌아본 소녀는
허둥지둥하며 방으로 들어와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저기, 누구신지…….”
나노하의 말에 그는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동작을 취하고는 망토 틈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고 가볍게 흔들며 룬을 읊었다. 그러자 빛의 가루들이 방안에 머물다 사라졌다.
“……디텍트 매직?”
“어디에 귀와 눈이 있을지 모르니까.”
방 어딘가 도청 마법이나 훔쳐보기 구멍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후드를 벗었다. 방의 불빛 아래 드러난 그 사람은 놀랍게도 앙리엣타 공주였다.
나
노하는 순수하게 놀라서 읏, 하고 숨을 삼켰다. 평범한 서민 가정에 갑자기 찾아온 고위 정치인을 보게 된 아이의 기분이랄까.
게다가 분명 루이즈와 같은 나이 또래의 소녀임에도 불구하고 행동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어른스러움과 신성하게 느껴질 정도의 고귀함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행동을 조심하게 하도록 압박한다. 이른바 타고난 기품이라는 것이다.
“공주님!”
루이즈는 부서져라, 까지는 아니더라도 황급히 무릎을 꿇었고 나노하 역시 엉겁결에 그 옆에 함께 무릎 꿇었다. 그것을 보며 앙리엣타는 듣기 좋은 미성(美聲)으로 말했다.
“오랜만이야, 루이즈 프랑소와즈.”
─────
이 글은 마법小女Love 나노하 =StrikerS=(http://cafe.naver.com/lovenanoha.cafe), 『제로의 사역마 - 쌍월의 기사』(http://cafe.naver.com/saitolouise.cafe), 타입문넷(http://www.typemoon.net/), 환상 도서관 반쪽사서 담당 지부(http://halflibrarian.tistory.com/), 환상 도서관 엔세스 담당 지부(http://blog.naver.com/mileunai)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1부를 약 두 달만에 끝냈듯이, 2부도 약 두 달 만에 재개하게 되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그리고 비축분을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안 만들었을까요?
이게 다 TIG(This Is Greece)때문입니다. [전속력 도주]
그래도 갓 토순의 가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저는 살아있습니다.
일일 연재의 벽을 깨부수겠다고 하시는 분들을 보면 날려주고 싶어요.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