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동방] 그녀에 대한 단상 -下-
메이린? 누군지 모르겠는데. 아, 아아 그 홍마관 문지기?
응. 기억해. 홍마관 녀석들이 전부다 날 바보 취급하는데 ─실제로도 그러하지만 지적하지 않았다.─유일하게 바보 취급하지 않는 사람이거든.
여름?
몰라. 여름만 되면 기억이 사라지니까.
아, 홍마관 지하에서 있었던 기억은, 으음, 날듯말듯한데......
아, 기억나. 문지기가 거기에 집어던졌던 것 같은데.
뭔지 모르겠지만 시원하게 해준 대가로 문지기들한테 얼음 한 덩어리씩 줬던 것 같기도 하고.
그 대장 문지기한테는 한 열 개 줬던가?
뭐야 그 눈은? '용케 기억하고 있군, ⑨주제에.' 하는 것 같은데?
다른 얘기? 놀라운 거? 아, 하나 있어.
음, 제일 놀랐던 게 아마 얼린 개구리에 놀랐던 일일까.
놀랐다고 해도, 다른 녀석들처럼 '우와아아앗!' 이 아니라 '오오오오!' 하는 거라서 말이지.
뭐라고 했더라. 중국 음식은 부모님과 책상과 비행기를 제외한 모든 것이 재료가 될 수 있다고 하던가.
어떻게 조리했는지 모르겠지만 얼린 개구리로 꽤 맛있는 음식을 해줬어. 아, 그래! 얼음 볶음밥! 뜨겁고 매콤한 밥알 위에 얼음 알갱이가 그대로 살아있는 거였어. 나중에 또 해주려나.
하여튼 그걸 만들어주면서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이라고 하더라고.
그러고는 내 꺼말고 자기 꺼 조금 먹다가 갑자기 하늘을 올려다봤어.
눈가가 반짝였던 것 같은데 난 먹기에 바빠서 잘못본 걸지도 몰라.
나중에 보니까 울면서 밥을 먹더라? 역시 내가 구해준 얼린 개구리가 밥맛을 끌어올린 원동력일거야. '엄마, 엄마...' 하고 울면서까지 싹싹 비우는 걸 보니, 나중에 다시 구해다줘야겠어.
-호수 근처의 ⑨OOL한 바보 요정
ㅡㅡㅡㅡㅡ
아, 그일은 아직도 기억해.
그게 아마 여름이었지?
언제나처럼 미니 팔괘로로 화려하게 홍마관 앞을 쏴날렸는데, 평소에는 날아가면 그대로 꽂혀버리던 녀석들이 계속 일어서서 내 앞을 막는 거야.
하나가 쓰러지면 옆에서 끌어당겨 일으키고, 또 하나가 쓰러지면 다시 일으키고......
코끼리에 대항하는 개미떼 같았지.
서로의 어깨를 걸치고, 손을 맞잡고, 허리를 둘러메고, 힘이 풀려가는 다리를 쓰러진 동료들이 부축하고......
뭐랄까, 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
문지기를 중심으로 필사적으로 일어나서, 아니면 기어서라도 나를 막으려드는걸 보니까 지금까지 내가 별 생각없이 마스터 스파크를 쓴 게 무슨 죄악같더라고?
꼬마 애들이 합심해서 근사한 모래성을 만들었는데 그걸 보고 '좋아, 잘했어!' 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이것도 모래성이냐? 와하하하핫!' 하며 짓밟는 못되먹은 인간이 된 것 같은 거야.
그리고 솔직히 감탄도 했고.
맨날 내가 정문을 뚫어도 한방에 날아가서는 여기저기 꽂혀서 웃긴 모습만 보여주다가 이렇게 진지하게 날 막는 걸 보니까 가볍게 파츄리 책 좀 몇 개 빌려가려고 하는 내가 참 초라해보이더라고.
그 왜 있잖아, 목적의식인가, 의무와 권리인가.
나는 단순한 목적인데 쟤네들은 의무인 거야.
그게 딱 머릿 속을 촥─ 하고 지나가는데 이야, 이게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 기분이더라고.
거기다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눈빛은 또 그게 아니란 말이지.
그때 그 중국이 외치더라고.
"오늘은 뚫리지 않는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문지기 애들이 다 그 말을 따라하데?
처음에는 시장통 같더니 나중에는 응원단 저리가라 할 정도로 딱딱 맞춰서는
"오늘은 뚫리지 않는다!"
"오늘은 뚫리지 않는다!"
"오늘은 뚫리지 않는다!"
그걸 보니까 이제 머리 속에 생각이 하나 탁 떠오르지.
그래, 오늘은 내가 져준다, 하는 거.
맨날 이기는 게임은 재미없잖아?
쟤네들도 가끔 이런 날이 있어야 일할 맛이 나지.
그리고 기합의 차이라는 것도 느껴졌고.
"기합의 차이인가. 오늘은 돌아가겠어. 하지만 다음을 기약하지고, 브레이브 파이터즈!"
음? 파이터즈가 아니라 가디언즈라고?
뭐 어때. 의미만 통하면 됐지.
하여튼 그날 저녁에 문지기 애들 전부다 밤참새네 포장마차에서 막 퍼마시더라고.
낮에 나 막았다고 보너스 조금 받은 것 같기는 한데 그거 낼 돈이 될까 싶은 양이었지.
게다가 얘들 월급이 짠 건 환상향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거든.
저기 마을의 애들 용돈의 한 10배 정도?
의식주는 홍마관에서 받쳐준다고 해도 말이지, 값싼 포장마차도 제대로 못가서 적당히 빼돌린 쌀로 만든 막걸리랑 남은 음식들을 조리해서 그 날의 해후로 삼는 애들이 할 짓이 아닌 거야.
뭐, 남은 음식 조리라고 해도 중국 녀석 요리 솜씨가 의외로 훌륭해서 원래 이런 게 아닐까 할 만큼 만드니까 문제는 없지만.
전부다 술에 취해가지고는 나도 그 사이에 몰래 껴서 마셨는데 유일하게 정상적인 녀석이 중국이었거든?
그때 밤참새가 중국한테 가더니 뭐라고 속삭이는데, 아마 돈 내라고 하는 거였을 거야.
중국이 보너스 주머니를 줬는데 밤참새가 그걸 세보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더라고?
돈이 모자라는구나, 하는 생각이 딱 들대.
중국이가 그걸 보고는 난처한 얼굴로 고민하다가 잠깐 자리를 비웠어.
난 그때 얘가 날른 줄 알았지.
사실 밤참새 얘도 이 바닥에서는 봉이거든.
저승의 무한 위장에게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이리저리 빼앗기는 게 얘 사는 삶이라서.
향림당에서 뒷받침을 해준다는 소문이 사실일지도 몰라. 맨날 적자같은데도 계속 장사하는 걸 보면.
하여튼 잠시 후에 중국이가 돌아와서는 다시 대금을 계산하더라고.
나중에야 그게 얘가 새옷 사겠다고 저축하고 있던 돈이라는 걸 알았지.
......그 알지? 마지막에 가장 작은 빵을 받으면서도 언제나 감사 인사를 하는 애 이야기.
왠지 그게 떠오르더라?
그 뒤로는 한동안 홍마관을 갈 때 뒷쪽으로 경유했어.
적어도 정문이 뚫리지는 않았으니 걔네들이 심하게 욕먹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다가 폭설이 지나가고 나중에 다시 한 번 대문으로 가봤지.
이제 다시 정문을 뚫어도 괜찮겠다 싶었거든.
폭설도 지나갔으니까 화려하게 신고식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
그런데 막상 마스터 스파크를 날리고 가보니까 안보이잖아.
이상하게 생각해서 눈속에 처박혔다가 간신히 빠져나와서 생체 바리케이트가 되어 있는 문지기들한테 물어봤지.
그러니까 일주일 내내 끙끙 앓고 있다데?
찾아가보니까 구들장인가 뭔가 뜨끈뜨끈한 데서 팔자 좋게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완전히 다 죽어가는 거야.
"우와, 나 이 녀석이 끙끙대는 거 처음 봤어."
반쯤 장난 어조로 말했는데 부관이라는 녀석이 그러더라고.
음식은 먹지도 못하고 묽은 죽과 물만 간신히 먹이고 있다고.
그 말을 듣고서는 주변을 살펴봤지.
이불이 무슨 솜이불이기는 한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그것도 크기가 작아서 하나는 상반신, 하나는 하반신을 덮고 있더라고. 아마 부하들 거였겠지.
눈앞이 뿌옇게 되더라.
"......니들 참......"
그리고는 곧장 홍마관 본관에 갔지.
사쿠야한테 내가 보고온 참상, 그래 그건 진짜 참상이었어. 어쨌든 그걸 말해줬지. 덧붙여서 명색이 홍마관인데 문지기들이 왜 저렇게 구질구질하냐고도 해줬고.
그러고 나니까 사쿠야가 약간 얼빠진 표정으로 "에?" 하더니 곧장 가서는 이불이랄까 거적때기랄까 말하기 참 묘한 걸 덮고 있던 중국이를 그대로 보쌈해 대려가더라고.
그 뒤는 모르겠는데, 봄쯤 되서 날씨가 풀렸을 때 가보니까 할머니들 쓰는 것 같은 걸로 재활훈련하고 있데?
주화입마라나 뭐라나 그것 때문에였다던가.
그렇게 다 죽어가면서도 홍마관 문지기 때려칠 생각 안하는 거 보면 용하다니까 정말.
음? 개인적인 의견?
언제나 볼때마다 형편 없이 약하지만 밉상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렇잖아, 그렇게 바보 같이 순진해서는 미워할래도 미워할 수가 없다고.
-평범한 과잉 화력 방출 마법사
ㅡㅡㅡㅡㅡ
겨울 때는 모르겠어.
그때는 신년 축제 준비로 한창 바빴으니까.
눈이 오는데도 기어코 축제를 해내겠다고 하는 바보 녀석들때문에 힘들었다고.
그러고보니 너도 근하신년을 써달라고 나한테 달라붙었었지.
제대로 나가지도 않는 신문─취재를 포기하고 한방 날려줄까 하다가 참았다.─에 무슨 신년 축하 축전을 쓰라는 거야.
하여튼 그해 여름은 굉장했지.
태어나서 그렇게 비가 많이 오는 건 처음이었다고.
사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저기 삼도천 사신의 의뢰였다고.
이 세계의 비가 저승의 삼도천을 불어나게 하고 있다나 뭐라나.
이승의 물이 저승으로 흘러드는 건 분명 뭔가가 있는 것이니 조사해달라는 거였지.
별
수 있나, 사건 터지면 처리해야하는게 하쿠레이 신사 무녀의 숙명─당시 같이 있었던 유카리 씨의 증언에 비추어볼때 무녀가 움직인
이유는 습기로 인해 숙면을 취할 수 없었고, 차가 맛이 없으며 전병이 쉽게 눅눅해져서일 것이테지만 입에 담지는 않았다.─인데.
저승으로 물이 흘러들어간다는 말에 우선은 백옥루를 의심했어.
그래서 그쪽에 가보니까 벚나무와 집은 안 보이고 바다가 있는 거야.
잘못 온건가 싶어서 근처를 돌다 다시 신사로 돌아오니까 유카리가 차를 끓여두고 기다리고 있더라고.
비오는 날 어딜 다녀왔냐는 말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니까,
"백옥루 침수된지 꽤 되서 지금 유-코랑 몽몽이는 우리 집에 살고 있어. 며칠 전에 말했잖아?"
......확실히 그랬었지.
하여튼 그래서 다른 데를 찾아봤어.
영원정이나 향림당에도 들러보고, 삼도천의 상류로도 가보고, 구름 위로도 올라가보고.
마지막으로 가본 게 홍마관이었는데 거기서 홍미령, ......메이린, ......중국인가? 하여튼 중국─홍 메이린이라 알려주었지만 가볍게 무시하였다.─이랑 문지기들이 홍마관 입구를 막고 있더라.
쓰레기를 쌓고 진흙을 퍼서 틈을 메꾸는데 솔직히 왜 그러고 있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가.
어쨌든 일단 들어가야하니까 음양옥으로 날려버리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말이지.
어떻게 된게 걔네들 눈이 퀭한게 일주일 굶은 얼굴이였어.
그래서 물었지.
"너희들, 밥 먹은지 얼마나 됬어?"
아무 말도 안하더라.
묵묵히 쓰레기산─차마 그것이 무녀를 막기 위해 쌓은 바리케이트라고 말할 수 없었다.─만 지키고 있는데 옷을 보니까 흙바닥에 뒹굴었는지 지저분해서,
"그 옷 며칠 째 입고 있는 거야?"
라고 물었는데도 아무 말도 없길래 대답받는 건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물어봤어.
사실 제일 중요했는지도 모르겠네.
"씻은 지는?"
냄새가 심해서─아무렇지도 않게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도 능력이라면 무녀는 이미 달인일것이다.─숨쉬기 힘들었던 건 그때가 처음일거야.
거기에 홍마관 문지기들은 요괴라고는 해도 여성이거든.
조금은 위생에 신경써줬으면 하는데 말이지.
그런데 그 때 문지기가 외쳤어.
"사적인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홍마관을 방문하신 이유를 말씀해주십시오! 부당한 이유일 경우 방문 거절 및 침입자로 간주하여 전력으로 격퇴시키겠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다고나할까.
그때는 그랬어.
그렇잖아? 넌 저기 호수의 얼음 바보가 너한테 "뭐라고 하던지 간에 제대로 기사로 내지 않을 거라면 신문 공장을 통째로 얼려주겠어!" 라고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그냥 싹 쓸어버릴까 했는데, 보니까 불쌍하더라고.
제
대로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옷도 못 갈아 입으면서 이 빗속에서 죽어라 고생하고 있는데 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쌓아놓은
걸 치워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걸 치우면서까지 쳐들어가서 레밀리아를 만나야 할 용무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홍마관이 이 비의 흑막이라고 한다면 부하들을 여기까지 혹사시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었고.
나중에 다른 애들 말 들어보니까 문지기들은 아예 홍마관 외부 단체를 임시로 취직시켜 놓은 것처럼 취급받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몰랐으니까.
"뭐, 그 꼴을 보아하니 여기도 엉망인 것 같네."
그렇게 말하고는 신사로 되돌아오니까 유카리가 가르쳐주더라고.
환상향에 흘러넘치는 비는 바깥 세계가 말라들어가면서 수분이 모두 여기로 밀려들어오는 거라고.
진작에 말해주지 않은 잠탱이 요괴한테 부적을 날려주는 걸로 여름이 끝났지.
음, 그 해 여름 겨울에는 그다지 보지 못했는데 그 해 앞뒤로는 꽤 많이 봤지.
작년에는 신사에서 임시로 가을동안 일하기도 했고.
솔직히 나는 그 애를 문지기로 쓰기보다는 메이드로 일하게 하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해.
차 끓이는 건 보통 수준보다 약간 높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달인이니까.
신
사 경내 청소하고 먼지 안 나게 물뿌리고 잡초 뽑는 걸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먹기 전에 다 해치우고, 여기저기 난 풀들을 다
알아보고 식용 약용 구분해내고, 마을 사람들한테도 인기가 있는지 좋은 물건들 싸게 받아오고, 그덕분인지 신사 방문객들도 늘어서
새전함도 평소보다 2배 정도 찼었고.
내가 입는 것 말고 평범한 무녀복이 잘 어울리는걸 보고 계속 입으라고 했었는데 가을 내내 그것만 입더니 나중에 돌아갈 때도 그걸 입고 돌아가려고 했었지.
본인은 자각도 없더라고.
데리러 왔던 사쿠야가 한숨을 내쉬면서 "수문대 시절에 입던 옷은 어디다 둔 거니?" 라고 묻자 그제서야 원래 입고 왔던 옷으로 갈아입고 왔지.
뭐, 그 무녀복은 아예 줘버렸어.
그 녀석이라면 소중히 쓸 것 같고, 나중에 또 불러서 일 시켜볼까 하고 있으니까.
장점? 일단 밥상이 풍성해져.
잡초랑 별 볼일 없는 조그마한 생선, 혹은 버리는 고기들로 다양하고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내는 것도 능력이니까.
거기에 귀찮은 가사를 모조리 떠넘길 수 있지.
뭐가 악질 고용주야? 적어도 나는 매일 씻을 수 있도록 해주기는 한다고? 밥도 제대로 주고. 게다가 최소한 3일에 한 번은 옷을 갈아줬어. 빨래야 그 녀석이 했지만.
개인적인 의견이라, 문지기말고 다른 것을 시켜라.
그냥 내가 빼와서 계속 신사 잡일 시키고 싶어.
들어보니까 신사 새전에서 그 애 월급을 빼더라도 충분할 것 같으니까.
게다가 그 애가 신사일을 하는 동안은 새전도 늘어나니까 효율적이지.
-무력개입식 전방위 범용 초고속 기동 무녀. 부제:주석(태클)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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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내가 그렇게 악독한 인상이 되어 버린 거야?
천구,─순간 세계가 멈췄던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은 착각일 것이라 믿고 싶다.─너 때문인 걸까.
어쨌든 메이린은 우수하지는 못하지만 성실한 아이야. 음? 이름을 제대로 부른다고?
당연하잖아, 부하의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해서야 상관이라고 할 수 없는 건.
지금 그 애는 좀 곤란해.
홍마관의 수문장으로서 조금 위엄을 가져야 하는데 맨날 깨지기만 하니.
게다가 요 몇 해 동안 하쿠레이 신사에서 일하다보니까 아예 그쪽에 머무르려고 하는 분위기란 말이지.
인간 마을의 꼬마들과 친해지는 건 나쁘지 않지만, 그애들이 메이린을 찾아와서 함께 놀다가 마을로 바래다 주는 건 곤란하고.
홍마관의 위상도 문제고 근무지를 이탈하는 것도 나쁘다고.
뭐, 그건 최근에 주의를 줘서 부하를 대신 보내는 걸로 됬지만, 어째서 그게 내 평판을 떨어뜨리는 일이 된 건지 알고 있어? 하아, 됐어.
어쨌든 그 해는 여러가지로 다사다난한 해였지.
여름은 그렇게 비가 쏟아지더니 푹푹 찌는 더위가 찾아왔었고 그것도 모자라 겨울에는 홍마관이 덮일 정도로 엄청난 눈이 내렸으니까.
그러고보니까 그 해에 메이린이 흑백과 무녀를 돌려보냈었지.
최초이려나? 하지만 흑백은 그 뒤로 정문 돌파 대신에 측면 돌파로 전략을 바꿔서 내부 수리 담당들이 고생했다고. 무녀야 뭐 그 때만 오고서 다시는 안왔으니까 문제 없지만.
아, 그애들 여름에 숙소가 날아가서 홀에서 잤었지.
비에 쫄딱 젖어서 홀을 물바다로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식료품을 훔쳐서 그대로 먹는다던가 해서 고생했다고.
내가 제대로 밥을 안주네 어쩌네 하는데, 그건 말 안듣는 메이드 요정들 때문이야.
왜 그렇게 수문대랑 사이가 나쁜지 모르겠어.
메이린 걔도 참 말 안 들어.
빈 방 하나 빌려줄 테니까 거기서 자라고 해도 부하들은 고생하는데 자기만 편하게 잘 수 없다는 정신은 좋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식료품 탈취에 미끼가 되는 건 조금 틀린 방법이라고 생각해.
바보라니까, 그 애는.
마음먹으면 메이린과 수문대 모두 칼집을 내줄 수 있지만, 새벽에 양손으로 가득 식료품을 챙겨서 달아나는 그 애를 보면 '하, 어쩔 수 없네.' 하고 그 애만 혼내고 말지.
즐기는 것 같다고? 그럴지도 모르겠네. 조금만 건드려도 화들짝 놀라는 걸 보면 계속 놀려주고픈 기분이 드니까.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훔친 식료품 양만큼 메이린 급료에서 제외했지.
한 1년 뒤에 수문대 애들이 돈 모아서 메이린 새옷 해줬지 아마?
슬슬 새옷을 해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평소에 정규복 빨고 나면 무녀복을 입고 있길래 조금 심술이 나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그애들이 먼저 해주더라고.
이불을 둘둘 말고 있었다거나 알몸으로 있었다면?
흠, 어땠을까나. 무녀의 말을 들어보면 잡일도 잘하는 것 같으니까 메이드 복을 입혀서 이쪽 일을 시켰었겠지.
노동자 탄압? 메이린은 홍마관의 피고용인이야. 고용주가 무슨 일을 시키던지 해야하는 게 그 애의 입장이라고.
......새전의 일부로도 먹여살릴 수 있을만한 쥐꼬리만한 월급─무녀의 의견이라고 말해주었지만 어째서인지 나를 노려보고 있다.─밖에 안 주는 악덕 상사?
다음 해부터는 나름 급료도 올려줬고 초소도 세워줬고 정규복도 새로 갈아줬으면 됬지 뭘 더 바래?
겨울?
말 돌리려고 하는 것 같지만,─또 시간이 멈춘 것 같다. 메이드장의 위치가 조금 변했어!─ 응해줄게.
글쎄, 그 해 겨울이라면, 기를 이용해서 눈을 날리는 걸 보고 주변 제설 작업을 명했었지.
역시 이런 겨울에 제일 편한 건 저기 영원정 근처 대나무 숲에 사는 그 애일지도 몰라.
흑백이야 뭐, 눈 치우는데 마스터 스파크를 뻥뻥 날려댈 것 같고.
어쨌든 제설 작업을 하면서 근처 숲에서 나무를 꺾어오길래 뭘 하나 봤더니 장작을 패서 자기네들이 개조한 숙소의 땔감으로 쓰더군.
그걸 보고는 나름 편하게 사는 것 같아서 신경쓰지 않고 지냈어.
수문대보다 더 급한 일들이 가득했기도 했으니까.
그
런데 겨울 끝나갈 때즘 되니까 한동안 보이지 않던 흑백이 와서는 하는 말이 "니들도 참 정없다. 부하들이 다 쓰러져가는 흙집에서
구멍 숭숭 뚫린 누더기 덮고는 쓰러져서 일주일 내내 의식불명이라는데 문병 한 번 안 가냐." 이러는 거야.
솔직히 놀랐어.
그렇잖아? 건강 빼면 시체인 애가 쓰러져서 끙끙대고 있다고 하니까. 가서 보니까 실제로도 그랬고.
속옷만 입고 있길래 누더기─수문대 입장에서는 이불이지만 지적하지 않았다.─째로 홍마관에 대려와서는 내 방에 두고 간병했지.
......빈 방에 놔두고 요정들 시키면 제대로 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내가 하려고 마음 먹었으니까 이왕이면 가까운 쪽이 낫잖아.─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 같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눈을 떴어.
기를 너무 많이 써서 주화입마에 빠졌었다고 스스로 말하더라고.
이불을 꼼지락거리면서 부끄러운 듯이 말하길래 꿀밤을 한대 먹여줬지.
이렇게 쓰러져서 여러 사람 곤란하게 하지 말고 평소에 자기 관리 좀 하라고.
한 달 정도 지나니까 몸을 일으킬 정도가 되어서 보행 보조기를 주니까 그걸로 재활 훈련을 하더라고.
그 애가 그 정도였으니까 보통 인간이었다면 어땠을까 싶어.
그러고 한 달 후에는 다시 수문대로 복귀했고.
마지막이라니, 개인적인 의견?
글쎄, 수문대 말고 다른 일을 시켜볼까 진지하게 고민중이라고 전해줘.
말 잘 전해야 돼. 자기가 잘린 줄 알고 짐 싸버리면 이쪽도 곤란하니까.
플랑 아가씨의 보좌 역, 이라고 전하면 어떤 표정이 될지 궁금한데?
-로드롤러는 전수받지 못한 스탠드 하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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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도 완료되면 옮겨달라고 해야하는 건가요?
그리고 하루 이틀 후에 올린다고 하고 사흘 만에 올리기 [도주]
이 글은 http://blog.naver.com/mileunai 와 http://www.typemoon.net/ 에도 올라갑니다.
[단편][동방] 그녀에 대한 단상 -상-
이 글은 지금까지 단순 바보에 언제나 부실한 덜떨어지고 신체 특정 부위만 큰 바보로만 알려져 있었던 한 여인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하여, 몇 년 전 환상향을 휩쓸었던 살인적인 더위와 경악스러운 태풍, 그리고 악몽같았던 폭설 속에서 그녀가 어떤 활동을
벌였었는지에 대한 목격자들의 단상을 집약하여 작성한 문서이다.
본래는 본문에 실어 모두에게 공포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조사 도중 이 사실이 당사자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알려져 주요 정보로써의 가치를 잃어버린바, 보존 기록으로 처리하여 보관한다.
-붕붕신문 기자 겸 편집자 샤메이마루 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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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때가 환상향 최고의 여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바깥 세계의 더위가 모조리 환상향으로 밀려들어왔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더위였죠.
아마 그분이 아니었다면 전 분명 더위에 죽었을 겁니다.
아니, 저뿐만이 아니라 저희 홍마관 수문대가 모조리 몰살당했겠죠.
사쿠야 씨가 이끄는 메이드대야 언제나 적정 온도에서 변동이 없는 홍마관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모를 겁니다.
찌는 듯한 여름에도 정규복장을 착용하고 순찰해야하고 살은 에는 추위 속에서도 관의 위엄을 위해 코트 하나 입지 못하는 수문대는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수문대를 때려치지 않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대장 메이린 님 덕분입니다.
에,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까요.
몇 년 전 여름, 그 엄청나게 더웠을 때 말입니다.
네, 그 ⑨OOL한 얼음 요정이 호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녹아내려가면서 코마치 씨에게 죽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심도 깊고 철학적인 논제를 던졌을 때 말입니다.
바보라고 생각했던 애가 지상 생명체를 몰살시키려는 듯한 열폭풍을 지상으로 방출하고 복사열이 끓어오르던 땅바닥에 정좌를 하고서는,
"생각하기에 고로 존재한다고 한다면, 죽은 자들은 생각이나마 하고 있기에 존재한다는 거지. 그렇다면 죽어서 물리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는, 관찰자를 잃어버린 자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면 영원이 관측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걸까? 그리고 그것을 죽는 것이라고 하는 건가? 이 명제를 증명하려면 우선 내가 죽는 수 밖에 없는데, 실질적인 육체가 없는 요정은 우선 살아있다는 명제에 합당하는 건가? 만약 내가 이미 죽어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코마치 씨는 내가 이미 죽어있는데도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염마 님에게 혼쭐이 날 것이고, 내가 살아있다고 한다면 코마치 씨는 제대로 일을 한 것이니까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겠지. 하지만 이 경우 영혼과 육체에 관한 논증이 제대로 이루어져있지 않으니까 절대적인 증명은 불가능하고 상대적으로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를 증명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요정이 살아있는 존재인가라는 논제로 되돌아가게 되어버리니 곤란해."
더위 먹었던 게 확실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 바보 요정이 어려운 말을 할 리가 있나요.
만약 그랬다가는 세계 멸망의 징조일 겁니다.
그 뒤로도 한참을 말하는 걸 메이린 님이 잽싸게 구해와서 홍마관 지하의 얼음 창고에 넣어뒀지요.
나중에 메이린 님은 사쿠야 씨에게 멋대로 외부인을 관에 끌어들였다고 혼이 났지만, 그래도 "그 애가 살았으면 된 거야." 라고 말하시는 메이린 님의 모습은 정말......
아, 죄송합니다. 눈물이 났네요.
하여튼 간신히 정신을 차린 바보는 다음 해 여름, 매일같이 제일 더운 2시 쯤에 수문대 모두에게 주먹만한 얼음을 하나씩 쥐어주었습니다.
대장은 10덩어리였죠. 그냥 주고 싶다고 말한 걸로 봐서는 은혜를 기억한다기 보다는 본능으로 보답하는 것 같았습니다.
은혜를 갚는 건 좋았는데 양이 조금 많았습니다.
그러나 거절도 못하고 잔꾀를 부리지도 못하는 우리 대장님은 매일 주먹만한 얼음 10덩어리씩 먹고 결국 배탈이 났습니다만, 그래도 대장은 쉬지 않았습니다.
여름감기까지 겹쳐 건강미인이라는 사람이 새하얀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매일같이 서있는 것을 보는 저희들의 마음 속에서는 항상 폭포수같은 눈물이 흘렀습니다.
쓰러지기 직전의 대장은 하얀 천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메고 빗자루를 지팡이 삼아 후들거리는 다리로, 그러나 당당히 홍마관 정문 앞에 섰습니다.
혹시 기적이라는 게 있다면 그거겠죠.
여느 때처럼 마스터 스파크에 휩쓸려 날아가버린 대장와 저희 수문대는 필사적으로 일어섰습니다.
하나가 쓰러지면 옆에서 끌어당겨 일으키고, 또 하나가 쓰러지면 다시 일으키고......
코끼리에 대항하는 개미떼가 그랬을까요.
서로의 어깨를 걸치고, 손을 맞잡고, 허리를 둘러메고, 힘이 풀려가는 다리를 쓰러진 동료들이 부축하고......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여 일어선 가운데 대치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때, 메이린 님이 외치셨죠.
"오늘은 뚫리지 않는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우리는 메이린 님의 말을 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중구난방으로 난잡한 소음에 불과했던 우리들의 외침은 하나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뚫리지 않는다!"
"오늘은 뚫리지 않는다!"
"오늘은 뚫리지 않는다!"
생체 바리케이트+확성기가 된 우리는 필사적이었습니다.
결국 흑백이 우리에게 등을 보였습니다.
"......기합의 차이인가. 오늘은 돌아가겠어. 하지만 다음을 기약하자고, 브레이브 파이터즈!"
그날 우리는 밤참새의 포장마차에서 첫 승리를 축하했습니다.
꽤 돈이 나갔을텐데 아무도 계산하지 않았다고 해서 다음날 밤참새를 찾아가니, 이미 대금은 다 지불했다고 하더군요.
메이린 님은 흑백을 막은 것에 대한 보너스로 충당했다고 했는데, 확실히 보너스가 있었기때문에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게 나중에 본관 메이드들의 뒷담화를 듣게 되었는데, 우리 보너스가 메이드들 급료의 1할 정도였다는 겁니다.
평소에 친분이 있던 소악마에게 부탁해서 파츄리 씨에게 사쿠야 씨가 수문대에 준 보너스가 얼마인지 물어보게 해서 돌아온 답변은 뒷담화 내용 그대로였습니다.
네, 그게 보너스가 한 20배 정도 되야 포장마차 돈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시겠어요? 메이드들의 급료와 우리들 급료는 거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수입 정도로 차이가 난단 말입니다.
하여튼, 그럼 돈은 어디서 났는가.
메이린 님이셨습니다.
쥐꼬리만한 월급 '에헤헤'하고 푼수 같이 웃으면서 받아 되는대로 저축하면서, 새옷 사겠다고 한푼 두푼 모아왔던 자비를 모두 술값으로 처분해버린 겁니다.
그러고서는 하는 말이 "일년 정도 이 옷 더 입고 내년에 사면 돼." 였죠.
우리가 모아온 돈으로는 그 포장마차비 간신히 냈을 겁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대장에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바보에요. 뭐든지 퍼주다가 어딘가에서 덜컥 죽어버릴 것 같다구요.
바보니까 뒷생각은 하지도 않고 자신을 깎아먹고 있어요.
......그래도 이런 사람이 대장이니까 수문대가 탈영없는 부대인 겁니다.
이 바보 같은 대장이 어디서 혼자 픽 죽어버리지 않도록 우리가 항상 감시하는 거예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아, 그 해는 또 태풍이 휘몰아쳤죠.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수문대는 초소도 없습니다.
잠이야 홍마관 제일 바깥쪽의 단체 숙소에서 잡니다만, 모이는 장소라던가 하는 건 홍마관 정원이나 정문 앞 같은 외부입니다.
햇빛이 내리쬐도 버텨야 하고, 비가 와도 비를 맞아야 하고, 눈이 와도 눈을 맞아야 하고, 우박이 떨어지면 그것도 맞아야 합니다.
하다못해 우비라도 지급해줬으면 합니다.
아니면 빨래라도 제대로 해주던가요.
우리들 빨래는 항상 물에 설렁설렁 헹궈서 대충 말려 뭉쳐서 단체 숙소에 던져두고 가는 메이드대를 보면서 우리는 항상 이를 갑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대장 빨래만큼은 좀......
아, 죄송합니다. 하아, 후우, 좀 진정하고 다시 할게요. 흑, 죄송합니다.
ㅡㅡㅡㅡㅡ
그녀는 한동안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린 후에야 간신히 눈물을 멈추었다.
그러나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는 듯 보여 함부로 말을 걸 수 없었다.
잠시 후, 굳은 결의를 한 듯한, 슬픔을 참는 듯한 눈과 울먹이는 얼굴로 그녀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ㅡㅡㅡㅡㅡ
그래요, 우리들이야 항상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부서라는 건 알고 있어요.
상대가 너무 강하다는 변명을 하지는 않습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홍마관 수문대입니다.
실제적으로는 항상 깨지고 부숴지는 부대라고 해도, 그 긍지와 자존심만큼은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수문대 대장인 메이린 님은, 그분은, 그분 빨래 만큼은 제대로 해줬으면합니다.
우리 숙소에 함께 던져지냐구요?
아뇨.
당신은 빗물을 큰 통에 모아 세제도 없이 맨손으로 돌에 박박 문질러 때를 빼내고 있던 대장의 모습을 보셨어야 해요.
우리가 맨처음 그걸 목격했을 때, 우리는 화를 냈습니다.
이게 뭐냐고. 그래도 대장인데 왜 이런 것까지 하냐고.
차라리 저 버릇없는 메이드들 대신 우리가 하겠다고.
그랬더니 뭐라고 하셨는 줄 아십니까?
"맨날 뚫리는 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내 손으로 해야지. 내가 일을 제대로 못하는 건 사실이니까. ......미안, 너희들은 맨날 고생하는데 대장이 못나서."
ㅡㅡㅡㅡㅡ
여기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울음을 터뜨렸다.
주변에 있던 수문대들 역시 새하얗게 될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고 위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의 눈가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으나, 숙연한 분위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다시 말하기를 기다렸다.
ㅡㅡㅡㅡㅡ
───하.
이 얘기는 그만하겠습니다.
하여튼 태풍 얘기로 돌아가죠.
절망적이었습니다.
단체 숙소는 이미 바람에 날아가버린지 오래라 우리는 밤늦게 홍마관 홀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 일찍 다시 관을 나서서 경비와 수문 업무를 봐야했습니다.
빨래요? 비가 오니까 몸만 움직이면 빨래가 된다고 하는 중간 관리급 메이드를 후려치는 바람에 내란이 일어날 뻔했지만 메이린 님이 필사적으로 사과한 덕분에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한 녀석이 바람에 날아가버리는 바람에 4인1조로 서로 허리에 끈을 묶어 생존력을 높힌 우리들 앞으로 날아가버렸던 녀석이 되돌아왔습니다.
진흙투성이가 된 체 가까스로 생환한 그 녀석은 놀라운 정보를 알려주었습니다.
깡패무녀가 온다.
홍마관 인근의 숲에서 억수로 쏟아지는 폭우 덕분에 날아오는 것보다 기어오는, 반은 헤엄쳐서 온 게 더 빨랐다는 부하의 말에 나는 재빨리 대장을 찾았습니다.
기상이변과도 같은 폭풍우의 뒷배경에 홍마관이 있다고 판단한 깡패무녀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관련되지 않았다고 해도 홍마관을 초토화시킬 것이다.
일반 수문대보다 더 힘들게 일하고 새벽에는 사쿠야 씨에게 칼집이 되고, 그럼에도 먹는 건 우리와 똑같으며 자는 시간은 우리보다 더 적은 대장은 퍼붓는 빗속에서 초췌한 얼굴로 제 보고를 들은 후,
"근처의 나뭇가지나 잡동사니를 모아서 바리케이트를 만들자."
처절했습니다.
뿌리째 뽑힌 나무와 굵은 나뭇가지, 바람에 날려온 쓰레기와 흘러넘친 빗물에 떠내려온 잡동사니들로 홍마관의 입구를 막고 삽 한 자루로 진흙이 되어버린 근처의 흙으로 틈을 메꾸고 그 뒤에서 쓰러지려는 바리케이트를 지탱하기를 몇 시간.
체력과 기력과 정신력 모두 바닥을 보일 즈음, 깡패무녀가 나타났습니다.
태풍 속을 날아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산뜻한 외형의 무녀는 당장에라도 음양옥을 발출시킬 것 같더니, 우리들을 보고는 한순간 멈칫했습니다.
그리고는 물었습니다.
"너희들, 밥 먹은지 얼마나 됬어?"
"씻은 지는?"
"그 옷 며칠 째 입고 있는 거야?"
......요괴지만, 그래도, 그래도 우리도 여자입니다. 그때,
"사적인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홍마관을 방문하신 이유를 말씀해주십시오! 부당한 이유일 경우 방문 거절 및 침입자로 간주하여 전력으로 격퇴시키겠습니다!"
뛰쳐나가 패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에 침묵하던 수문대 모두의 마음을 받은 것처럼, 대장은 그렇게 외쳤습니다.
빗소리에 사라질 법도 하건만, 지친 몸으로 낼 수 없을 법도 하건만 대장의 목소리는 우리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컸습니다.
저것이 얼마만에 들어보는 수문대 공식 멘트이던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바리케이트 맨 위에서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고 있는,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쇠파이프에 홍마관을 상징하는 깃발을 멘 임시 깃발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쓰러지지 않도록 하고 있는 대장의 모습.
그리고 사실상 바리케이트의 가치를 상실한 쓰레기 산을 필사적으로 다시 세우는 우리들을 보며 무녀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바보 같았지만, 그 바보 같은 일이 우리를 살렸습니다.
"뭐, 그 꼴을 보아하니 여기도 엉망인 것 같네."
그말과 함께 무녀는 되돌아가버렸습니다.
무녀가 돌아가는 것에 긴장이 풀려 바리케이트가 완전히 무너져버려 파묻혀버리는 부하들도 나왔지만 곧바로 뚫고 나와 서로를 끌어 안으며 환성을 내질렀습니다.
흑백과 홍백의 침략을 저지했다고.
아마 최초였을 겁니다. 그 둘의 침공을 저지했던 것은.
ㅡㅡㅡㅡㅡ
거기까지 말을 한 그녀는 그리운 듯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어찌어찌 홍마관 정문 부근에 지어진 수문대 초소 건물 밖으로 여전히 홍마관의 수문장으로 일하고 있는 한 여성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ㅡㅡㅡㅡㅡ
인간도 그렇지만 요괴도 의식주는 필수입니다.
사는 곳이야 뭐, 홍마관이라는 이름에 비하면 부실하지만 나름 괜찮고, 옷도 빨래가 엉망일지언정 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밥은 제대로 줘야 되는 게 아닙니까?
지금이야 나아졌지만 그 폭풍 때, 삼시 세 끼 꼭꼭 챙겨먹으며 음식이 맛이 있었네 없었네 하는 메이드들을 보면서 우리는,
시간에 맞지 않는다며 밥도 못먹고 새벽에 몰래 주방에 들어가 조리는커녕 손질도 안된 식료품을 그대로 먹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희는 못들어갑니다. 주방.
사쿠야 씨의 영역이라서 저희같은 일반 요괴들은 들어가기도 전에 순살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요?
......메이린 님이 스스로 제물이 되십니다.
일부러 요란하게 들켜 사쿠야 씨에게 죽기 직전까지 칼집이 되는 동안, 저희가 필사적으로 식료품을 탈취, 동료들에게 나눠주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굶어죽을지언정 이런 짓거리를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탈취해 굶주린 배를 채웠던 식료품들은, 모조리 메이린 님의 급료에서 '영구 삭감'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태풍이 지나간 지 1년이 지난 다음 해에야 그것을 알았고, 다 함께 운 뒤에 한 푼 두 푼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인간 마을에 부탁하여 메이린 님의 치수에 맞는 옷을 주문했습니다.
몇 년 동안 같은 옷만 입어 이미 헤질대로 헤진 옷을 입고 계셨던 메이린 님께 부대 모두가 바치는 선물이었죠.
선물받은 새 옷을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이던 대장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금 저기 입고 계시는 옷이 그 옷입니다.
끝이 다 헤져서 새 옷 입으라고 하셔도 저 옷만 입고 계십니다.
우리가 사준 옷이라고 말이죠.
또 돈 모아서 새 옷 사드려야죠.
그 해 겨울이요?
네, 그때도 정말 얄짤없었죠.
추수를 하자마자 날씨가 추워지는데 그 어디더라, 바깥 세계에서 조선이라는데서 왔다는 요괴 덕분에 구들장이라는 것을 만들 수 있어서 살았죠.
그게 없었으면 우리들 다 얼어죽었을 겁니다.
어쨌든 가뜩이나 부족한 수문대 인원을 쪼개고 쪼개서 하나는 구들장 만들게 하고, 하나는 땔감 준비하게 하고, 하나는 경비로 돌리고 이렇게 해서 간신히 첫눈이 오기 전에 우리들 겨우내 따뜻하게 지낼 곳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가 좀 추웠던가요?
이게 땔감이 부족해질게 딱 보이더라구요.
그래도 땔감이야 근처 숲에서 해오면 되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폭설이었죠, 그 해는.
그것도 환상향에 기록적인 폭설.
홍마관의 제설 작업은 저희 수문대가 합니다.
봐요, 기본적인 수문대 업무, 경비, 외관 청소, 우리 숙소 땔감 찾기, 제설 작업, 기타 등등. 죽어납니다.
겨울 최고의 적은 바로 눈이었어요. 흑백도, 홍백도 눈이 하도 많이 쌓여서 안 찾아왔으니까요.
이게 눈이 그때 얼마나 왔냐면, 한 40m 정도? 본관 시계탑 높이가 한 100m 정도인데 그게 반 하고 약간 더 보이는 정도였으니까 그 정도 되겠네요.
이러다보니까 우리 땔감을 얻으려면 눈부터 치워야하는 겁니다.
우리도 당장 얼어죽을지 모르니까 필사적으로 땔감을 모으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죠.
우리는 메이린 님 덕분에 살았던 겁니다.
기氣를 이용해서 눈을 날려버리는 기술은, 탄막대전을 벌이는 환상향에서 전투에서는 쓸모없을지 몰라도 이렇듯 일상 생활에서는 굉장히 유용한 기술입니다.
그런데 그걸 보고는 사쿠야 씨가 메이린 님에게 그걸로 홍마관 주변의 눈도 모두 치우도록 명령했던 겁니다.
대장은 고지식해서 그걸 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는 겨울 내내 봄이 올 때까지 기를 펑펑 쏴대며 눈을 치우고 우리들 땔감을 쓸만한 곳에 쌓인 눈을 날려주며 보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무한정 끝나지도 않을 것 같던 겨울이 끝나고 슬슬 날이 풀려갈 때 즈음, 눈이 이제 한 5m정도 남았을 때 사건이 터졌죠.
사실 우리가 조금만 더 신경썼어도 그런 일은 안 일어났을 겁니다.
대장이 숙소 제일 윗목에서 자는데 항상 춥다고 하길래 잘 때 몰래 아랫목으로 옮겨드렸는데도 계속 춥다 춥다 잠꼬대를 하고, 일어나는 시간이 계속 늦어진다 싶더니, 픽 쓰러져버리더군요.
처음에는 잠이 부족해서 잠깐 현기증으로 쓰러지신 줄 알았죠.
근데 그대로 쓰러지더니 일어나지를 못하는 거예요.
이제 일났다 싶어서 남은 장작 다 아궁이에 쑤셔넣고 아랫목 뜨끈뜨끈하게 만들어서 이불 덮어 눕히고 교대로 돌아가며 간호를 했습니다.
눈을 뜨지도 못하고, 가끔 눈을 떠도 눈이 풀려서는 다 죽어가는 환자처럼 보이고, 식은땀만 계속 흘리고, 몸은 사시나무 떨 듯 하고, 입은 항상 바짝 말라있고, 그게 한 일주일동안 그러시더라고요.
이게 웃긴게 가장 먼저 병문안, 이랄까 하여튼 그걸 온게 흑백입니다.
여름엔가 그냥 돌아가고는 안오고 있다가 이제야 왔는데, 와보니까 대장이 안보이길래 대타로 서있던 부하들에게 물어보고 왔다고 하더군요.
"우와, 나 이 녀석이 끙끙대는 거 처음 봤어."
대장은 계속 혼수상태였는지라 우리가 먹이는 묽은 죽과 물만으로 일주일을 버티고 있다고 얘기해줬더니, 흑백은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니들 참......"이라고 말하더니 곧장 본관으로 가버리더군요.
그리고는 잠시 후에 사쿠야 씨가 와서는 대장을 데려갔습니다.
우리 수문대는 정식 업무로 돌아갔고 면회가 거절되었기 때문에 메이린 님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은 약 한 달 뒤였습니다.
그동안 수문대의 대우는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우선 숙소가 정비되었고 경비 초소가 만들어졌습니다.
거기에 급료가 메이드들의 3분의 1까지 파격적으로 올라가고, 식사도 드디어 사람(인간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게 사람이죠)이 먹을 수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만한 것으로 바뀌었죠.
지금 신입들은 부실하다고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우리들로써는 정말 사람 대접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다시 본 메이린 님은 초췌했지만, 생기를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었습니다.
왜 쓰러졌냐고 물으니,
"기를 너무 많이 써서 주화입마에 빠졌었어."
그러니까, 이 사람 바보예요.
적당히 자기 몸 사린다고 누가 욕한답니까?
하여튼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환자복을 입고 보행 보조기로 아기들 걸음마 연습하듯 재활 훈련하는 거 보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약 두 달 정도 흘러서 봄이 돌아올 즈음에 대장은 다시 수문대로 복귀하였습니다.
확실히, 메이린 님은 홍마관이라는 거대한 관의 수문장치고는 약합니다.
하지만 그거야 흑백이나 홍백 같은 이름 날리는 괴악한 녀석들 때문에 약한 거지, 듣도보도 못한 것들에게 쉽사리 뚫려버리지는 않습니다.
난 이분이 좋습니다.
바보 같지만 누구보다도 홍마관을 사랑하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는 메이린 님이 좋습니다.
-홍마관 수문대 부대장
ㅡㅡㅡㅡㅡ
하편은 내일이나 내일 모레쯤에.
네이버 환상 도서관 엔세스 담당지부나 타입문넷의 글 역시 본인의 것입니다.
이걸 제로의 나노하 때처럼 밑에 써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