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아트 온라인] 승리의 열쇠는 대전차 오함마술
문넷에 올렸었던 소아온 팬픽 [?]
소드 아트 온라인 - 승리의 열쇠는 대전차오함마술
『 ……이상으로 소드 아트 온라인 정식 서비스 튜토리얼을 종료한다. 플레이어 제군들의─ 』
"아, 잠깐만. 질문 하나만."
그리 큰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소년에서 청년으로 향하는 중간 단계의 적절한 중저음은 제법 넓은 곳까지, 그리고 이곳에 모인 만여 명의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꿰뚫고 모두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물론 이 사태의 주범인 카야바 아키히코에게까지도.
『 ……무슨 일이지? 』
카아바 아키히코의 질문과 동시에 이곳에 모인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목소리의 주인에게로 향했다. 키리토는 그 목소리가 제법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동시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인물인지를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아니, 그……, 그전에 댁을 뭐라고 불러야 되는 거야?"
『 카야바 아키히코다. 』
"음, 그래 GM양반."
그럴 거면 대체 왜 물어본 거야. 순간적으로 마음 속으로 울컥한 건 분명 한 두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거기에 대해 지적하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누가 뭐래도 '바닥에 두 자루 검을 꽂아놓고 그 위에 서 있는 사람'에게 그러한 지적을 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텐구가 신는 신발 같다고나 할까. 애초에 저렇게 설 수 있기는 한 걸까. 외모가 평범하다는 것 때문에 그러한 행동이 더욱더 눈에 띄었다.
여튼 소년은 그러한 사람들의 의문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너브기어 말이야, 고출력 전자파로 뇌를 삶는 거라면 알루미늄 호일을 끼워넣고 벗으면 되잖아? 그건 전기가 끊긴 것도 아니고 네트워크 회선이 끊긴 것도 아니고, 너브기어 본체를 파괴하거나 분리하는 것도 아니고 해체하는 것도 아니니까."
『 ……그런 일이 가능할 것이라 보는가? 』
"적어도 우리 어머니라면 가능할껄. 너브기어랑 머리 틈새로 철사에 호일 감아서 이렇게 슬쩍 파고 들어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끝."
실제로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를 묻는다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실상 혼자서 이 세계를 창조한 천재 카야바 아키히코에게 있어 그러한 방법은 이미 예상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치 정말로 손에 호일이 있는 것처럼 동작을 재연하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만에 하나 가능하다고 한다면, 정말로 무서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단순하면서, 무식한 방법이었다!
『 그것 또한 너브기어 본체와의 강제 분리에 속한다. 』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카야바의 목소리에는 어처구니없음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뭐, 그럴 줄 알았어. 나도 생각해내는 방법인데 설마 해결방법이 없을까봐."
그럴 거면 대체 왜 물어본 거야. 다시 한 번 모두의 마음 속에서 울컥하고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 ……그럼, 플레이어 제군들의 건투를─ 』
"잠깐, 질문 하나만 더."
『 ……. 』
"아니 두 개 더……가 아니라 세 개다."
야 이 짜샤. 그렇게 생각한 건 비단 카야바 뿐만이 아니었으리라.
『 ……뭐지? 』
"일단 첫 번째로 말야, 그, 아까 GM양반 목적이 이 세계, 그러니까 소드 아트 온라인 세계의 완성이라고 했었지? 그리고 이 세계를 완성함으로써 목적은 완성했다고 했고?"
『 그렇다. 』
"그럼 이 세계는 적어도 당신 입장에서는 완벽한 거지?"
『 그렇지. 』
"그럼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지간에 그건 다 예상된 일들 중 하나라는 거지?"
『 ……그렇다. 』
"그래. 그럼 일단 첫 번째는 됐어."
뭐가. 뭐가 된 거냐. 그런 의문을 떠올릴 새도 없이 소년은 두 번째 질문묶음을 던졌다.
"그리고 다음으로, GM양반 마음에 안든다고 아이템 성능을 수정하거나 갑자기 난이도를 바꾸지는 않는 거지? 예를 들어서 사람들의 레벨업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으니까 난이도를 올린다던가, 아이템 드랍률을 낮춘다던가."
『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
"그럼 이후로 게임에 손대는 일은 절대로 없는 거야? 그러니까 운영자나 GM이나 개발자로서 개입해서 이 세계를 수정하지는 않는다는 거냐고?"
『 그렇다. 』
나중에서야 깨닫게 될 테지만, 카야바는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저 그렇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흠, 좋아. 그럼 마지막 질문 패키지. 버그가 생겨서, 혹은 서버렉으로 죽으면 어떻게 해줄 거야?"
그것은, 적어도 지금 이 순간까지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문제였다. 당면한 사태로 인해 집단공황상태에 빠져 떠올리지 못했던 문제에 사람들은 다시 소년을 바라보았다. 만에 가까운 사람들의 시선과, 이 세계─소드 아트 온라인의 절대자인 카야바 아키히코의 시선에도 그 소년은 씩 웃으며 말했다.
"완벽한 세계에 버그나 서버렉 따위는 있을 수 없고, 따라서 그렇게 죽으면 모두 플레이어의 책임이 되는가 싶어서 말이지."
『 그럴 일은 없다. 』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GM양반. 분명 눈앞에서 스킬 썼는데 안 나가고, 위치랙 걸려서 이상한데 떨어지고 하는 사람 나온다니까. 다른 때도 곤란하지만 전투 때 그러면 어떡할 건데. 아니 애초에 버그 없는 프로그램이 어딨어?"
진리였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코드가 활용되고 있을 이 세계에 버그가 없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 버그로 인해 죽게 된다면.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죽게 된다면.
그러나 카야바는 그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 여기에 있다. 』
그는 말했다. 카디널 시스템이 기동중인 이 세계─소드 아트 온라인에서 버그나 렉으로 죽을 일은 결코 없다고.
이 사태의 주범이자 증오할 수 밖에 없는 상대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있다고 느껴졌다.
오직 단 한 사람만 빼고.
"님 패기 쩌내효. 어디서 그런 개구라를."
『 ……. 』
소년은 콧방귀까지 뀌며 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흔해빠진 10대 불량청소년 같았다. 물론 그가 진짜 불량청소년이었다면 이럴 담력은 있지도 않았을 테지만.
『 ……만에 하나 그러한 일로 인해 플레이어 제군들이 죽게 된다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도록 하지. 』
사람들의 술렁거림에 카야바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말투로 그렇게 약속했다. 그 속에는 '너희들이 예상하는 사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않을 테니 일단 그렇게 말한다'는 속내가 담겨있었지만 그걸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케이. 콜. 나중에 구라치지 말어. 손모가지 날라가붕게."
소년은 손을 절단하는 시늉과 함께 씩 웃으며 카야바 아키히코를 바라보았다. 세계의 창조주이자 절대자임이 분명할 그에게 하는 행동치고는 너무나도 조심성이 없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런 것 또한 예상의 하나였던 것일까.
『 ……그럼 플레이어 제군들의 건투를 빈다. 』
정정하겠다. 나타날 때와는 달리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잽싸게 사라지는 그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그 역시 이 사태가 예상 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KIMCHIMAN 킴치맨이 예상 외의 인물이라는 것을 소드 아트 온라인 내부의 모든 사람들이 좋든 싫든 뇌리에 각인하게 될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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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바 아키히코는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 그러한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설령 그러한 약속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놈'을 막을 수 있었을까. 분명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기어들어왔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서비스가 시작된지 오늘로 6일째. 그렇다. 고작 6일 밖에 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식 서비스 튜토리얼이 끝난지 6일이 지났다. 그러나 '놈'은 벌써 아인크라드 82층에 도달해 있었다. 레벨은 놀랍게도 여전히 1.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애초에 뭐하는 놈일까.
물론 정상적인 방법으로 도달한 것은 아니다. 그는 끝에 와이어를 연결한 검 여러 자루로 아인크라드 외벽을 타고 층을 올라왔다. 다시 말해서, '버그를 사용해서' 층계를 넘은 것이다. 당연히 원래대로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놈은 해냈다. 대체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손에는 크리스탈을 들고 한손에는 와이어를 매달은 검을 들고, 각 층의 끄트머리에서 특정한 동작─놈은 그것을 시몬 춤이라고 했다─을 취하면 윗층으로의 구멍이 뚫리는 것이다. 그렇게 구멍이 생기면 포탈이 열리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적인 구멍이 뚫리는 것이기에 그냥 올라갈 수 없다. 그리고 그때, 와이어를 연결한 검을 피크처럼 사용하여 올라가는 것이다.
물론 각 층계 끝 지역 아무데서나 열리는 건 아니다. 그야말로 무작위지만 '놈'은 노가다에 가까운 반복 끝에 그 길을 개척한 것이다. 게다가 정식으로 층이 개방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몬스터는 생성되지 않는다. 일단 시스템상 구현해둔 배경이나 NPC, 아이템 등은 존재하지만 몬스터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애초에 '놈'은 그런 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층 뚫기만 계속했기 때문에 그런 건 알고 있지 않았다. 설령 몬스터가 나온다고 해도 신경 쓰기는 했을까 의문이다.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명백한 버그 플레이였다. 게다가 카디널 시스템이 이 현상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놀랍게도 '놈'은 다수의 유저들이 거의 동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미세한 시간차만 두고 레벨업하여 시스템이 그쪽에 집중하는 타이밍에만 프로그램 구멍을 뚫으며 시스템을 속여왔던 것이었다. 모니터링해본 결과 계획한 게 아니라 그저 우연의 일치였지만, 그래서 더 나쁘다. 본능적으로 버그를 사용한다는 말이지 않은가. 프로그래머의 숙적이라 할 수 있는 놈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강제 로그아웃─다시 말해서 사망처리 시키고 싶었지만 첫날한 약속으로 인해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시간을 되돌려 엿새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세계의 창조주인 그에게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카디널 시스템은 이러한 프로그램 구멍을 통한 층계 돌파를 명백한 악의적 프로그램 사용으로 판단하고, 이 방법을 완전히 막아버린 후 '놈'을 1층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 처사에 '놈'은 GM의 간섭이니 약속이 다르다니 등의 얘기를 했지만 눈앞에 나타난 카야바가 '이것은 GM의 간섭이 아니라 관리 프로그램이 작동한 것일 뿐이다'라는 얘기를 듣고는 납득했다. 온갖 진상짓을 다 하리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일단 '놈'의 흥분을 가라앉혔다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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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룸에서 장작 6개와 성냥으로 모닥불을 만들고 거기에 힐링포션을 부은 후 초보자용 가죽 신발을 올려둔다. 그러면 그 모닥불은 오브젝트로 설정되어 최초의 설치자가 아니면 제거할 수 없는 버그가 있었다. 게다가 겉으로 보기에 불길은 무릎 높이까지밖에 안 올라오지만 그 누구도 그 위를 넘어갈 수 없었다. 즉 임시로 절대 깨지지 않는 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사용자는 킴치맨이었다.
[감히, 감히 하등한 인간이이이이이이!!!!!!!!]
"하하하하하하!!! 울부짖어라 멍청한 악마야!!! 하하하하하하하!!!!!!"
보스를 구석에 몰아넣고 모닥불 버그로 가둔 뒤 그 틈새로 자신의 전용무기가 된 오함마를 휘둘러 보스를 잡던 킴치맨의 모습은, 바로 그가 이 층계의 보스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악했다.
여튼 그를 발견자가 아니라 사용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처음 써먹었기 때문이며, 도대체 언제 그런 걸 알아냈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자신도 언제 그런 걸 알게 되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어, 그냥. 왠지 그렇게 해보고 싶었어. 왠지 하면 될 것 같았거든."
언제 그런 걸 알아차렸느냐는 키리토의 질문에 킴치맨은 그렇게 대답했다.
"어차피 알아봤자 이미 써먹었으니 다음 번에는 못쓰게 될 테니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
맞는 말이었다. 전설의 6일 82층 돌파 이후, 그가 일으킨 버그는 거의 한 두 시간이면 완전히 디버그되었다. 분명 굉장한 처리속도였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그러한 처리속도보다는, 그 처리속도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버그를 일으키는 킴치맨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혹자는 그러한 킴치맨의 모습을 보고 '그의 버그는 마치 인간의 3대욕구와 같은 레벨일 것이다' 라고 표현했다.
그렇기에 키리토는 두어 시간 후면 사라질 이 완전한 보호벽을 보며 말했다.
"다시 말해서 버그로 여기 보스를 잡는 건 이번 뿐이라는 거네."
"응? 아니. 시험해볼만한 버그는 꽤 많은데?"
"……어?"
쉽게 볼 수 없는 키리토의 얼빠진 표정에 킴치맨은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걱정하지마. 이 허접한 악마 보스 잡을 때 시도해볼만한 치명적인 버그는 대충 13개 정도 있으니까."
"……."
"후후후, 카야바 아키히코 녀석, 뭐가 완벽한 세계냐. 이토록 수많은 버그가 살아숨쉬는데. 음, 아니군. 현실도 수많은 꼼수가 존재하니까 이것도 나름대로 완벽한 세계로군. 그래, 디버깅 프로그램이 사회집단의 규약과도 같은 위치에서 개체의 불법적 행동을 감시하고 행동을 강제하는 거니까……."
뭔가 자신의 세계에 빠져든 그의 모습에 키리토는 생각했다. GM─카야바 아키히코와 카디널 시스템이 오늘도 불을 뿜겠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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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벼라 이 괴물아!"
"무오오오오오오오──" 퍼억! "─────음모오오오오오오오?!!??!?!?!"
어느 새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미노타우로스의 아래로 파고든 킴치맨은 단숨에 미노타우로스의 무릎에 그의 무기가 된 오함마를 휘둘렀다. 압도적으로 높은 힘 스탯과 숙련된 동작의 파괴력은 거대한 괴수의 무릎을 단숨에 부숴놓았다. 무릎을 잃고 쓰러진 미노타우로스가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지만,
퍼걱!
"쿠ㅤㅎㅡㄾ──……."
킴치맨의 오함마가 미노타우로스의 두개골을 박살냈다. 상당히 끔찍한 광경이었기 때문에 아스나는 무심코 시선을 돌렸지만 이미 뇌리에 박힌 그 장면은 계속해서 눈앞에 아른거렸다. 게다가.
"흐헤헤헤헤, 훌륭한 사골을 얻었군. 후후후후후……."
푸욱. 퍽. 끼익. 카카가각. 쯔억. 콰득, 콰드드극.
뼈와 살이 갈라지고 찢어지는, 등골이 오싹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귀에 파고들었다. 킴치맨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만능 단도로 미노타우로스를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HP가 0이 된 몬스터의 시체는 곧바로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사실에 굉장히 분개하며 이건 게임도 뭐도 아닌 되다만 물건이라며 카야바 아키히코를 욕했다. '현실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으며, 이렇게 흔해빠진 게임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들 '아, 그런 게임이 유행했었지.' 하고 사라져버릴 물건이라며 한탄을 쏟아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몬스터 시체를 굳이 갈무리하지 않아도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욕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 한탄이 이 세계의 창조주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 시체는 아이템창에 들어오는 돈과 아이템과는 별개로 그 생물체의 신체 일부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당신 정말! 역시 뭘 좀 알아! 날 가져요 엉엉!"
『 ……필요없다. 』
그러한 사실을 공표하자마자 곧바로 태도를 바꾸는 킴치맨의 모습에 그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그렇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어찌되었든 그 이후 킴치맨은 열광적으로 모든 몬스터를 때려잡고 그 시체를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고기, 가죽, 뿔, 뼈, 내장 등 재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것을 뜯어냈다. 혹자는 그러한 그의 모습에 '그 녀석 언젠가 이 세계 전체를 약탈하고 다닐 것이다.' 라고 예언하였다.
어찌되었든 그는 미궁의 보스인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렸다. 그것도 모자라 그 시체를 완전히 해체하고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쥐어짰고, 그제서야 미노타우로스의 잔해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
"아스나."
"어, 응?"
"미노타우로스는 쇠고기 맛이야."
"……헤?"
"그것도 A등급. "
"그걸 어떻게 알, 히익?!"
아스나는 자신의 질문에 고개를 돌린 킴치맨의 얼굴을 보고는 비명을 내지를 뻔 했다. 완전 피칠갑한 얼굴에 음미하는 듯한 표정으로 미노타우로스의 고기라 추정되는 것을 씹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무, 뭘 먹는 거야?!"
"소머리 고기."
"왜?!"
"먹을 수 있으니까? 왠지 이 녀석 해체하다보니까 육회 같아 보여서."
"그렇다고 먹지마?!"
"!"
"으, 왜?!"
"이 고기, 씹을 수록 고소해. 질감이 쉽게 변하지 않아. 마치 쇠고기맛 껌을 씹는 듯한, 그러면서도 고기의 질감은 충분히 살아있는! 음! 오오! 오오오! ㅤㅃㅡㅎ릴리언트! ㅤㅃㅡㅎ완타스틱! A++! A+++++++!!!! GM양반 당신 정말! 엉엉! 날 가져요 엉엉!"
진심으로 울고 있는 킴치맨의 모습에 아스나는 어서 집에 돌아가 쉬고 싶다는 생각과, 저렇게 극찬하는 미노타우로스 고기가 무슨 맛일지 궁금해하는 자신의 심정에 약간 자괴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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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치맨이 지금까지 휘둘러왔고 앞으로도 휘두를 무기인 오함마는 사실 무기 카테고리에 속해있지 않다. 아니, 애초에 오함마라는 아이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저건 어디까지나 '오함마 형태를 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 제련체'다. 강철에 탄소를 섞듯, 그보다는 패밀리 레스토랑 드링크바에서 모든 음료수를 적절한 비율로 섞다보니 나온 정체불명의 무언가와 비슷한 것이다. 그러한 물건인 주제에 왠지 모르게 가끔씩 빛을 내기도 하고, 어떨 때는 꼭 폭탄처럼 터질 듯 빠르게 점멸하기도 한다. 그런 기괴한 물건이다.
만들어낸 본인도 두세 시간 뒤면 버그로 판정되어 사라지리라 예상했고, 그렇기에 킴치맨은 공중날기 버그를 사용해 도시 상공에 올라가 투포환 던지기와 같은 느낌으로 빙글빙글 돌다가 오함마 비스무리를 내던져버렸다. 물론 사람이 전혀 없는 방향이었고, 그의 기괴한 스텟과 버그로 인해 잠시 꼬여버린 물리엔진 덕분에 오함마 비스무리는 잘 날아가다가 도시 벽 쯤의 위치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역시 버그였군. 킴치맨은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도시로 내려왔다.
그랬기에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던져버린 오함마 비스무리가 악명높은 PK길드 래핑 코핀의 본진에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을 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건 전혀 의도되지 않은 버그였다. 하지만 본거지, 그것도 길드장을 비롯한 핵심간부가 모여있는 중심부에 갑자기 나타난 그 물체와 그 표면에 새겨진 단어─KIMCHIMAN을 본 순간 래핑 코핀 길드원들은 집단 패닉을 일으키며 본거지에서 뛰쳐나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 분명 자신들에게 좋은 일은 아닌 무언가가. 애초에 킴치맨과 엮여 좋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해안가에서 내 마음에 드는 모래알 한 알 찾는 것과 같은 확률이다. 그리고 그렇게 무질서하게 도망쳐 나온 그들을 맞이한 것은,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모인 대규모 토벌대였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토벌대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여담으로 래핑 코핀의 본진에서 발견된 오함마 비스무리로 인해 사람들은 킴치맨도 일원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지만, 그의 투포환(…)을 지켜본 유저들이 그의 결백을 증언해주었기에 킴치맨은 무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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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버그 플레이는 생각나면 올려보겠습니다.
책 사긴 했지만 1권만 봤고, 애니는 건드리지 않아서 오류가 있을 것 같지만 뭐 어때요. 애초에 주인공이 버그캐인데 [...]
소드 아트 온라인 - 승리의 열쇠는 대전차오함마술 2.
"지금 당장 쭈그리고 앉아서 벽에 붙어! 그리고 그대로 일어나!"
"어, 에? 무슨……?"
"시간 없어 빨리!"
그렇게 외치며 킴치맨은 곧장 가까운 기둥으로 달려가 곧바로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마치 앞에 구멍이 있는 것처럼 꿈지럭거리며 기어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대체 이 급박한 상황에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빨리!"
"뭐야, 뭔데 그게?!"
"벽뚫기! 이렇게 하면 전체공격을 피할 수 있어!"
킴치맨이 몸은 돌릴 수 없는지 고개만 돌려 그렇게 외치자 모든 유저들이 벽을 향해 달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버그의 화신이자 전자세계라는 전장에서 미쳐 날뛰는 한 마리의 체셔 고양이인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방금 전 킴치맨이 했던 것처럼 벽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바싹 붙은 후 그대로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와 동시에 공략부대원들 모두 확연한 이질감을 느꼈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이 지금 정상적이지 못한 방법─버그를 사용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곧바로 이어진 보스의 전체범위공격이 지나갔음에도 아무런 데미지를 받지 않았다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나올 때는 반대로 하면 돼! 쭈그려 앉아서 뒤로 움직여!"
그야말로 번개같은 동작이었다. 나오기가 무섭게 팔다리를 흔드는 요란한 동작으로 크게 점프하며 보스에게로 달려가며 킴치맨은 외쳤다.
"입던은 점프가 개념!"
어질형 검사도 아니건만 킴치맨은 눈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도로 유연하고 빠르게, 그러니까 마치 WHEEL BUG를 떠오르게 하는 끔찍하게 잽싼 동작으로 보스에게 달라붙어, 형용할 수 없이 두려운 속도로 꿈틀거리며 오함마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분명히 감정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을 보스가 경기를 일으키며 마구잡이로 자신의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훗날 공략전에 참가했던 혹자는 그러한 보스의 모습을 '킴치맨이라는 WHEEL BUG가 달라붙어 필사적으로 떼어내려고 하지만 그러지 못해 광란 상태에 빠진 심약한 인간'같다고 표현했다.
제법 많은 HP를 깎아낸 킴치맨은 그제서야 떨어져 나와 다시 한 번 벽으로 달려갔다.
"뭐하고 있는 거야! 다시 달라붙어! 놈이 전체공격을 할 거라고!"
""""""너 때문이잖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모두가 그렇게 외치며 전체공격을 피하기 위해 벽에 달라붙었다.
훗날 공략부대원들은 생각했다. 그때 그렇게 외쳤을 때, 보스도 왠지 같이 외쳤던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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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불려나온 키리토는 대뜸 돈을 받았다. 10만 콜. 가볍게 주고받기에는 너무나도 큰 금액이었고, 준 사람 또한 문제였다.
"……왜?"
"잔말말고 일단 받아봐."
온갖 버그로 기행을 일삼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그와 연관되어 불이익을 받은 적은 없었기에 키리토는 말없이 돈을 받았고, 그와 동시에 킴치맨은 곁에 있던 다른 사람과 거래창을 열었다. 이번에도 10만 콜이었다.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 킴치맨은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마다 거래를 걸어 10만 콜씩 돈을 쥐어주었다. 그것은 키리토와 마찬가지로 불려나온 아스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돈을……?"
"일단 받아봐."
최상급 식재료인 라구 고기가 10만 콜이다. 그런 돈을 벌써 40번 가까이 정도 나눠준 셈이다. 아스나의 집 가격과 엇비슷한 거금인 셈이다. 아니, 그의 성격과 지금까지의 활동에 비추어 봤을 때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줬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돈을 번 겐가?"
앞선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불려나온 히스클리프 역시 의문스러운 듯한 얼굴로, 동시에 희미한 불쾌감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지만 킴치맨은 나중에 대답해주겠다며 다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뿌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렇게 돈을 얻은 거야?"
저녁노을로 거리가 주황빛으로 물들 때쯤에 키리토가 킴치맨이니까라는 납득 반, 킴치맨이라도라는 어이없음 반으로 그리 물었다. 당연한 질문이었다. 현실의 자원은 유효하다. 그것은 가상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도저히 개인이 벌어들일 수 없는 거대한 금액이라는 것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그 유효 범위가, 전자세계─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숫자로만 존재할 뿐인 거대한 '돈'의 범위가 현실을 아득히 상회할 수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보유 콜이 대체 얼마길…… 래……."
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
화면 창을 뚫고 나온 숫자의 향연에 키리토와 아스나, 그리고 히스클리프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킴치맨은 그러한 두 사람의 모습에 씩 웃었다. 눈이 이상해진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단위였다. 게다가 방금 전까지 마구 퍼 준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9 이외의 숫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사실상 무제한이지."
"……어떻게……, 아니, 물론 버그겠지만……."
"아니, 설마하니 나도 이 허접한 돈 버그가 될 줄은 몰랐어. 그래서 시험삼아 제곱 단위로 복제하다보니까 이렇게 되버렸지."
아무 것도 아닌 양 말하지만 이건 이 세계의 경제 시스템을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난 행위였다. 사실상 무제한인 NPC상점의 물건들을 제외하고 나면 유저들이 거래하는 모든 물건들부터 시작해서 주인없는 모든 건물들을 전부 다 한 사람이 소유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화폐경제 시스템 자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
"뭐, 돈이 필요해지면 나한테 얘기해."
"그전에 버그로 처리되서 사라질 것 같은데."
"음, 통화 시스템이 어떻게 구축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복제화폐를 각 층에 마구 뿌리고 뒤섞었으니까 이제 분리도 못하고 회수도 못 할껄?"
"……어떻게?"
아스나의 의문에 킴치맨은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각 층 NPC상점에 가서 세 자리 네 자리 단위로 물건 사고팔고 사고팔고 반복하고, 너희들 포함해서 유저들한테 돈 막 뿌리고, 하여튼 그렇게 막 뿌려서 다들 돈 적어도 1콜은 썼을 거 아냐? 이제 분리나 회수는 불가능하지. 유일한 방법은 서버 전체 백섭이겠지만, 이 게임은 그럴 수가 없지."
"……."
"……."
그야말로 완벽한 범죄였다.
키리토와 아스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도 못한 체 킴치맨을 바라보았고, 히스클리프는 "오늘도 야근인가……." 라는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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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아트 온라인에서의 전투는 소드 스킬을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그렇다고해서 소드 스킬을 쓰지 않으면 데미지를 입히지 못한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효율이 떨어진다. 일반 공격은 한 번의 공격에 1의 데미지밖에 주지 못하지만 소드 스킬을 사용하면 10의 데미지를 줄 수 있다. 그만큼 큰 차이인 셈이다.
어찌되었든 데미지를 입히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버그 또한 존재한다.
최고급 장작 8개와 피닉스의 불꽃으로 만든 장작불에 요리용 올리브유를 듬뿍 바른 아이템 제작용 망치를 4초 동안 올려둔다. 그러면 불타는 망치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집어던지면 맞은 몬스터는 5초 동안 제법 큰 불데미지를 받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이 망치는 상대가 누구든지간에, 그러니까 일반 몹이든 보스든지간에 3초간 스턴에 걸리게 하고 4m 정도 넉백을 시키는 효과를 가진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무조건적으로 망치를 던진 사람에게 어그로 우선순위를 배정한다.
터엉!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워뒀던 망치를 던지자 보스가 스턴에 걸리며 밀려났다.
[어째서…….]
"너희는 항상 그렇게 똑같은 말만,"
터엉!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뒀던 망치가 명중했다.
[이 하등한 인간이!]
"하는 것 같아. GM양반이 AI에 좀 더 투자를,"
터엉! 중지와 약지로 물고 있던 망치가 허공을 갈랐다.
[아직이다! 나는 아직!]
"했으면 다양해졌을 것 같은데 말이야!"
터엉! 약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마지막 망치가 보스에 직격했다. 그와 동시에 킴치맨은 재빠르게 달려가 왼손에 쥐고 있던 오함마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메가 스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언!!!!!!!!!!!!!!!!!!!!!!"
콰직! 킴치맨은 왼손에 쥐고 있던 오함마를 양손으로 꽉잡고, 보스의 '엄지발가락'을 정확하게 내리찍었다. 훨씬 더 큰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다른 부분들은 모두 제껴버리고 집요하게 그 부분만 노리고 있었다. 이는 몇 번이고 반복된 일이었기에 공략대원들은 익숙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뒤에 이어진 보스의 비명에 차라리 얼른 잡아죽이는 게 사람다운 일이 아닐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래, 비명소리는 제법 다양하네."
그냥 얼른 죽여 이 미친놈아. 모두의 생각은 동일했다.
결국 이러한 일이 두어 번 반복된 후, 더 이상 이 참극[?]을 지켜볼 수 없다 판단한 유저들은 재빠르게 보스를 잡은 후, 가지고 있던 포션 등으로 조촐한 위령제를 올렸다. 그리고 킴치맨은 그러한 유저들 뒤에서 조용히 보스의 시체를 어떻게 갈무리할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만해 이 미친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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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보스는 보스룸에 가기 위해 미궁을 돌파해야했다. 가는 길에는 끊임없이 몬스터가 리젠되었는데,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 피로해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공략팀에 킴치맨이 들어간 순간, 몬스터들은 언제 그렇게 튀어나왔었냐는 듯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 유저들은 기뻐하면서도 불길한 징조가 아닐까 불안해했다. 하지만 킴치맨이 매우 불만스러운 듯한 얼굴로 입을 열자 그 불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왠지 몬스터들이 나를 피하는 것 같지 않아?"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클라인이 말도 안된다는 듯이 말하자 킴치맨은 요 최근 동안 겪은 일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1층 필드에 나갔는데, 왠지 몬스터들이 슬금슬금 멀어지더라고. 선공 아닌 애들은 안 건드리면 그냥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그러잖아?"
"그렇지."
"그런데 왠지 나를 보더니 조금씩 멀어지는거야."
"허어……."
"게다가 선공인 몹들도 내가 노골적으로 눈앞에서 얼쩡거려야 겨우 인식하고 달려들고, 그게 아니면 가까이 오지도 않고. 미궁 던전 같은데서 리젠되는 애들은 뭐시냐, 왠지 '아 X바 오늘 일진 거지같네.' 같은 표정 한 번 짓고는 전투준비하고. 하여튼 좀 그래. 오늘도 그렇고. 덕분에 몬스터 실험이 좀 힘들어서 짜증나지."
투덜거리는 킴치맨의 말에 곁에서 걷고 있던 히스클리프가 묘하게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포의 피드백이 몬스터 프로그램 침투했을지도 모르네. 자네가 한 악행에 프로그램이 변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
"음, 내키지 않는데……. 난 언제나 선량한 플레이어였는데."
누가 선량한 플레이어냐.
"흥. 영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세계의 완성도 측면에서 봤을 때는 훌륭하다고 밖에 못하겠군. 개인의 영향력 피드백이라는 측면에서는 훌륭해.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러한 킴치맨의 말에 히스클리프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듯한 얼굴로 킴치맨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프로그램이 스스로 변화해버릴 정도로 거대한 영향력─버그를 행사한 프로그래머의 숙적이, 자신이 그토록 꿈꿔왔던 이 세계의 완벽함을 인정해주었다는데서 온 감정이라는 걸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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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걸 필드보스라고 하던가. 전력을 다해 도망치면서도 시리카는 그런 생각을 했다. 옆에는 킴치맨이 마치 흥겨운 듯 깡총깡총, 하지만 결코 깡총거림으로는 낼 수 없는 속도로 달리는 킴치맨이 있었다. 쫓기는 상황이건만 이러한 그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대체 그게 뭐에요?!"
"스머프식 전투기동이라고 하지! 가가멜을 쓰러뜨리기 위해 푸른 난쟁이들이 완성시킨 전설의 보법이야!"
달리면서 웃느라 호흡이 흐트러졌음에도 외칠 수 밖에 없었던 물음에 킴치맨은 그렇게 대답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쉽사리 배울 수 있는 기술은 아니지만 일단 배우고 나면, 고개 숙여!"
갑작스러운 외침이었지만 시리카는 군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럽게 흐트러진 균형에 결국 앞으로 구르며 넘어져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시리카는 갑작스레 명령한 킴치맨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아니었다면 거대한 도마뱀과도 같은 그 보스의 입이 자신의 머리를 물어뜯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제기랄, 오함마 메가스턴이 패치되었군! 잊지 않겠다 GM양반! 카디널 시스템! 일단 넉백은 살려뒀으니 다행이지만!"
킴치맨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약 30m 정도 밀어냈으나 공격적인 몸짓과 함께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집채만한 도마뱀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잠깐 시리카를 바라보고는, 놀랍다는 얼굴로 외쳤다.
"시리카! 너 테이머였어?!"
"……지금까지 뭘로 알고 계셨어요?!"
"난 닌자인 줄 알았어!"
"그런 직업 없잖아요?! 게다가 제 어딜 보면 닌자라는 소리가 나오는 건가요?!"
"내 감! 제길, 내 감도 이제 다 죽은 건가! 아니, 여튼 테이머라면 다행이야!"
오함마 공격에 넉백당했다는 걸 아는지 20m 거리에서 노려보고만 있는 도마뱀의 모습에 킴치맨은 오함마를 땅에 박아 세우고는 아이템 창에서 강철 부츠 두 켤레와 강철 투구 하나를 꺼냈다.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던지고 아이템 창에 넣는 것은 거의 그와 동시였다.
"잘 들어 키리카. 지금 내게는 고속이동과, 몸통 박치기, 무서운 얼굴, 어, 그리고 마지막이…… 시부럴, 뭐였더라……. 아 그래, 파괴광선이 있어. 4족보행을 시작하면 말을 할 수가 없으니까 네가 나한테 명령을 내려줘야돼. 알겠지?"
"모르겠어요!"
"괜찮아! 포●몬 하던 것 같은 감각으로 하면 돼! 저 놈의 패턴은 강 약 중간 약이니까 무서운 얼굴, 몸통 박치기, 고속이동, 파괴광선 순으로 계속 명령하면 돼. 알겠어?!"
"어, 그러니까……."
"좋아. 못 외웠으면 이 쪽지 순서대로 해."
킴치맨은 자신이 말한 기술 순서를 그대로 휘갈겨 적어 시리카에게 내던지다시피 넘겨주었다.
"그리고 패턴이 바뀌면 그냥 네 눈대중으로 기술을 쓰게 해. 설명은 짧게 할게. 고속이동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몸통 박치기는 말 그대로 냅다 들이 박는 거야. 난 조금 있다가 투구를 써서 괜찮을 터니까 된다 싶으면 신경쓰지 말고 써버려. 그리고 무서운 얼굴은 녀석에게 스턴을 거는 기술이야. 쿨타임이나 횟수 제한이나, 하여튼 포●몬 같은 제한이나 버그로서의 한계가 있을지도 몰라. 잘 써 줘. 그리고 파괴광선은 말 그대로 파괴광선이야. 아마 다섯 번이 한계일 거야. 참고로 날 기르기 위해서는 그냥 내 질문에 '우훗, 멋진 남자!' 라고만 하면 돼."
"어어, 네……."
시리카의 얼떨떨한 대답을 들으며 킴치맨은 투구를 쓰고, 양손발에 강철 부츠를 신었다. 그렇다. 발 아이템인 강철 부츠를 손에도 끼운 것이다. 그리고는 마치 벤치가 있는 듯한 자세를 투명의자로 해내는 경이롭다고 해야할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야할지 모를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기르지 않겠는가."
"……."
시리카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그래픽이 굉장히 이상하게 변했던 것 같은데……. 잘못 본 걸까. 그러나 길게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도마뱀의 으르렁거림을 들은 시리카는 킴치맨을 보며 방금 전 그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어, 그러니까, 우훗, 멋진 남자……?"
"음!"
그 말에 킴치맨은 기괴한 투명의자 자세를 풀고 양손발로 서 도마뱀을 노려보았다. 다시 말해서, 4족보행이라는 소리였다.
"……."
시리카는 물론이고, 저 거대 도마뱀도 이 상황이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처럼 보였다.
"……저기……."
"킴치! 킴치킴치!"
"……그러니까……."
"킴치킴치킴치! 킴치킴치!"
"……."
4족보행을 하면 말을 못한다는 건 이런 얘기였나. 아, 진짜 이제는 아무래도 좋아. 그렇게 생각하며 시리카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외쳤다.
"가자 킴치맨몬!"
"킴치!"
그렇게 장렬한 포●몬 배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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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 별의 바다, 아이돌과는 달리 여전히 1권 밖에 안 읽어서 정식 연재 기약은 없습니다. 그래도 진지하게 고민 안하고 막 쓸 수 있어서 좋아하기에 고민중이긴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각종 게임 버그 제보받습니다.
[스트라이크 위치스] 프로젝트 위치스!
[스트라이크 위치스] 프로젝트 위치스!
[스트라이크 위치스] 프로젝트 위치스! 2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않나.
이제는 입원실을 내 방으로 삼는 게 좋을까. 아니면 내 방을 입원실화 시키는 게 나을까. 물자관리 측면에서 보자면 후자가 낫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아무래도 그건 무리겠지. 음. 그렇다고해서 전자를 선택하자니 있는지도 의문인 보안점검 같은 게 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한테 민폐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뭔 의미에서?"
"팀의 체력을 책임질 인간 성기사가."
"……."
"왜?"
내 물음에 메이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체력을 책임진다는 건 일단 우리가 맞아서 체력이 깎인다는 게 전제 아냐?"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런가. 그렇군. 그렇다면.
"좋아. 실드로 바꾸자. 이지스가 필요해."
"방공체계라는 개념이 나오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지금 도입해. 그리고 리베리온의 우월한 국력으로 공돌이를 갈아넣어서 만들면 1년 안에 나오겠지."
"되겠냐."
평소라면 이쯤에서 나와 메이가 석양이 물든 바닷가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제법인데." "너도 마찬가지야." 하는 열혈청춘틱한 싸움을 시작했을 타이밍이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무리다. 왜냐면 둘 다 붕대를 칭칭 감고 침대에 누워있으니까. 난 양쪽 다리에 평타 직격이고 메이는 왼쪽 어깨 관통상. 네우로이 빔의 독성 침투는 옵션이다. 마녀가 아니었으면 당연히 골로 갔을 중상이다. 제기랄. 이 작전 입안한 녀석 내 반드시 대서양 바닷물에 내동댕이 쳐주겠어. 그런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자니 메이가 그땐 반드시 자신에게도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래. 해치우자!
뭐, 그건 그렇다치고. 베로니카 상태가 영 심상치 않다. 이쪽도 오늘 체인소드로 네우로이의 빔을 가르고 코어를 개발살 내는 활약을 했는데,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서보암 경파, 우측 옆구리 스침, 스트라이커 유닛 경파라는 기록을 달성했다는 거다. 덕분에 전투 끝나고 복귀하자마자 테이크다운. 곧바로 입원실로 실려왔다. 그리고 저쪽 침대에서 실시간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하고 있다. 평소에는 관운장마냥 마취 없이 살을 째고 뼈를 긁어도 신음소리 하나 안 내던 아가씨가 그랬다는 건, 이거, '그거'로군.
"'그거'지."
"'그거'네."
나와 메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프리카에서 로니카가 있던 부대는 항상 박살났다지?"
"그러면서도 본인은 멀쩡했었고. 그게 놈들 작전이었던 것 같지만, 이제 전술을 바꾼 것 같은데."
"덕분에 본인도 깨지고 덤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도 깨진 거구만. 나중에 아프리카 가서 그 아저씨 다시 만나면 이제 슬슬 일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좀 쪼아봐."
"내가 쫀다고 되겠냐."
그래도 언젠가 만나면 한 번 거하게 쪼아보자고 생각하며 나는 오른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여 주사위를 꺼냈다. 그 모습에 메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좋아. 해치워버려."
"그렇게 쉬운 게 아닌데……. 『강제 집행(Game Set). 선공 양보(Batting Second). 목적은 강제 퇴거(Eviction). 시작(Start).』"
언젠가 꿈에서 배운 단어를 읊으며 주사위를 던졌다. 허공에 떠오른 주사위는 순간적으로 격하게 회전하더니 5라는 숫자를 위로 한 체 침대 바닥에 떨어졌다.
"호오, 세게 나오는데."
"그러게."
나는 다시 한 번 주사위를 던졌다. 방금 전과는 달리 힘없이 돈 주사위는 침대 바닥에 떨어졌다. 숫자는 2. 졌다. 그와 동시에 베로니카의 상태도 나빠졌다. 숨이 막혀오는 것 같다.
"엑, 뭐야. 질 때도 있었어?"
"당연하잖아. 맨날 이기는 약속된 승리의 검 같은 게 아니라고."
"그 검 가지고서도 결국 브리튼은 멸망했던 것 같은데. 여튼. 그럼 끝이야?"
"아니."
머리를 긁적이며 나는 다시 한 번 주사위를 쥐었다. 그리고 말했다.
"『2연격(Double strike).』"
던져 나온 주사위의 눈은 6. 합은 8. 이기고도 남았다. 그와 동시에 일그러져 보이던 베로니카의 침대 위 풍경이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메이는 YES! 라고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감사합니다 주사위의 신이시여Thanks Dice God. 이걸로 한 건 해결. 자, 그렇다면.
"우리 꼬마 아가씨들은 어쩌고 있으려나."
중환자인 우리와는 달리 경미한 타박상이나 찰과상 정도로 끝난,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마음고생하고 있을 제이니와 쟌을 생각하며 나는 주사위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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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늘을 날던 사람이 며칠, 혹은 몇 달 동안 움직이지 못할 부상을 입고 돌아온다.
그 중에는 부상의 후유증으로 몇 년, 혹은 몇 십 년, 아니면 평생 고생하며 살아갈 사람도 있고, 갑작스레 영원히 눈을 감기도 한다.
"……."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 수많은 사람들만큼 수많은 부상자들을 보았다.
그토록 많았던 사람들과 헤아리고 싶지 않을 만큼 많은 부상자들과, 절대 잊지 못할 사망자들을 기억한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나였다.
"……니……."
잊고 있었다. 분명 잊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이곳에 와서 언제 어디서든 그 어떤 역경이든 헤치고 나올 것 같은 이들과 함께 하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는 안되건만.
"……이니……."
아무 것도 몰랐다는 건 결코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걸. 내가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걸.
이번에도. 내 실수 때문에.
"제이니 씨?"
"……어? 어, 응."
상념에 잠겨있던 의식을 떠올리자 눈앞에 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인 순간, 붕대를 감은 손이 보였다. 쟌의 손이다. 무리하게 클레이모어를 휘두른 여파다. 옷에 가려져 있지만 붕대는 팔꿈치까지 메여 있을 것이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쟌은 황급히 손을 등 뒤로 감추며 말했다.
"괜찮아요 이제는. 요시카한테 치료도 받았고. 오히려 치료할 때 아팠죠."
그건 요시카가 앨리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거야. 실천주의 학파의 힘이 날로 강해지는 게 느껴진다.
그것보다도, 여기 사람들은 왜 그렇게 다들 자기 아픈 것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신경쓰는 걸까. 오늘만해도 그렇다.
베로니카.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했던 오라샤 소녀는 기절하기 전에 "패배는 흔한 일이다. 그리고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다가 입은 상처다. 신경쓰지 마." 라고 했다.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말이다.
메이. 스물이 넘어 실드가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나는 감사관은 "괜찮아. 애초에 전멸할 뻔했던 작전을 성공시킨 건 너야. 가슴을 펴라고 꼬맹이. 우울해 하지 마. 살아남았잖냐." 라고 했다. 붕대를 감지 않은 쪽 손을 휘저으며.
세라. 다른 이로쿼이 아이들을 전선으로 보내지 않기 위해 하늘의 포병이 된 상냥한 들소는 "괜찮아. 잘했어. 그러니까 울지 마." 라고 했다. 반파된 스트라이커 유닛에서 피로 젖은 다리를 빼내며.
쟌. 두렵고 무서워도 굴하지 않고 날아올라 용맹하게 검을 휘두른 작은 새는 지금도 이렇게 내게 괜찮다고 얘기하고 있다.
뭐야. 왜 그렇게 다들 얘기하는 거야. 뭐냐고 대체.
내 실수였다. 적의 변화와 함정을 인식한 시점에서 작전을 바꾸던가 포기했어야 했다.
그런데 다들 잘했다고 한다. 괜찮다고 한다. 마녀가 아니었다면 죽도록 괴로웠을, 혹은 죽었을지도 모를 상처를 입고도, 그런 상황에서 간신히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뭐가."
"네?"
"뭐가 괜찮은 거야."
"제이니 씨……."
"욕하고 화내야 하는 게 정상이지 않아? 잘못한 지휘관은 욕 먹는 게 당연하잖아."
바르크호른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그녀가 알려준 인생과 긍지를 떠오르게 한다.
눈부신 사람들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앞서 나가 방패가 되는 사람들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가 고민하는 것보다도,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눈부신 긍지와 명예를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초라함을 더욱더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왜 다들 괜찮다고만 하는 거야. 왜 그러는 거냐고."
"제이니 씨."
"아프잖아. 힘들었잖아. 투덜거리고 비아냥거리고 그러는 게 사람이잖아."
"제이니 씨."
"내 말에 따르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그런데 왜. 다들……. 모르겠어……."
고개가 숙여진다. 눈앞이 흐려진다. 가슴 속이 답답하다.
그때, 무엇인가가 나를 끌어안았다.
그게 무엇인지를 깨닫는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쟌?"
"똑같으니까요."
"……뭐가?"
"아프고, 힘들고, 무섭고, 화가 나는 건, 다들 똑같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쟌의 목소리는 촉촉히 젖어있었다.
"다들 똑같아요. 똑같이 아프고, 똑같이 힘들고, 똑같이 무서워요. 그러니까 다들, 제이니 씨랑 같은 마음이니까……. 그러니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숨죽여 우는 작은 소리만이, 기대듯하면서도 지탱해주는 온기만이 이어졌다.
납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부정한 것도 아니다.
그저, 다들 소중했던 누군가의 희생을 뒤로 하고, 그걸 가슴에 품고 이곳에 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을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울고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지금은.
"……응. 고마워."
함께 눈물을 흘리며, 온기를 나누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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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안 나가도 되겠는데?"
"그러게."
입원실 앞에서 들려오는 두 꼬마 아가씨의 대화를 들은 나와 세라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 언니, 간만에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뭐, 제이니는 나중에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얘기를 해서 풀어줘야할 필요가 있겠지만. 역시 아직 과거를 떨쳐내지 못했나. 물론 쉽게 휙휙 던져버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서도.
바르크호른과의 대화로 제이니가 조금은 나아졌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쉽게도 여전히 그 꼬마 아가씨는 [아군의 죽음은 자신의 지휘 때문이다] 라는 트라우마를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전쟁 초기에 사령부가 보여준 멍청함이 아직까지도 제이니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은데도.
여튼.
"후후, 이 훈훈함. 지금 나가서 둘 다 안아주고 싶군."
"너 그러다가 어깨 주저앉는다. 깔끔한 관통이라서 푹 쉬면 깔끔하게 나을 거라는 말 맹신하지 마. 여차하면 훅 간다고."
"알고 있어 나도."
자, 그럼 이제 조용히 물러나서 침대에 누워 한 숨 푹 자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용무는."
"끝나셨나요?"
요시카와 앨리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Holy shit…….
삐걱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나는 멀쩡한 오른손을 뻗어 세라의 어깨를 붙잡았다. 잡았다 요놈. 어딜 도망가려고.
"옛날부터 시즈 탱크는 적이 근접하면 시즈 모드 풀고 도망치도록 되어 있어."
"도망칠 수 없다면 퉁퉁포로 버텨야지."
"왜 하필 다리를 다친 걸까. 제기랄. 잊지 않겠다 네우로이."
투닥거리던 우리는 결국 두 사람에게 붙잡혀 그대로 침대 위로 직행했다.
이후 우리가 어찌되었냐면, 요시카랑 앨리스에게 중환자가 휴식 취하지 않고 뽈뽈거리며 돌아다닌다고 혼났습니다. 넵.
최근에 요시카 엄해진 감이 없잖아 있다. 특히 다친 사람들한테는 더더욱.
뭐, 환자가 휴식 취하지 않고 돌아다니면 안 나으니까 당연히 혼내겠지만서도. 뭐, 무섭다기보다는 귀엽지만.
"……듣고 있나요, 메이 씨?"
"그야 물론."
"……."
의심의 눈초리가 사라지지 않지만, 아쉽게도 높으신 어른들과의 눈치 싸움을 밥 먹듯이 해온 내게는 아직 상대가 되지 않는단다.
결국 포기했는지 다시 설교를 시작한 요시카를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딴 생각을 시작했다. 오늘 저녁은 뭐려나. ……이런. 최근에 세라랑 같이 다니면서 먹을 거 생각만 늘어난 것 같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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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얘기가 있었던 것 같지만 본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유쾌함과 훈훈함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암요. 그렇구 말구요."
"……."
"지금 당장 그게 누구한테 하는 얘기인지 말하지 않으면 베로니카가 체인소드를 휘두를 것 같은데."
"아니, 괜찮아. 베로니카. 워프의 속삭임 같은 거 아니니까 체인소드 뽑지마."
어허. 넣어둬. 어허. 씁. 어허. 일단 체인소드에서 손은 뗐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히 빛나고 있다. 무섭다 베로니카. 무서워.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본 페리느가 평소의 우아한 톤으로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전파를 수신하신 건가요?"
"시공을 초월하여 세계를 뛰어넘은 전생의 전파."
메이의 정답이지만 이해하는 사람이 없을 대답을 들은 페리느는 찻잔을 기울여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그러신가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겼다. 되려 경악한 건 셜롯과 메이였다.
"페, 페리느가 태클을 걸지 않았어!"
"성장인가! 페리느의 정신적 성숙인가!"
"뭐가 어찌되었든 좀 조용히 할 수 없겠나 리베리안."
"동감이에요. 다과회에서의 소란스러움은 운치가 없지 않나요."
"설마했던 갈리아와 카를스란트의 동맹이 현실로!"
"우리는 지금 역사의 순간에 서 있는 건가……."
소란스러운 구대륙 동맹 대 신대륙 동맹 인원들은 일단 제껴두고, 나 역시 머그컵을 들어 홍차를 입에 머금었다. 음, 좋다. 무슨 찻잎인지는 모르겠지만. 참고로 다른 사람들은 다 찻잔인데 나만 머그컵인 이유는, 예전에 홍차를 한 입에 털어넣는 내 모습을 본 부대원들이 정말로 진지한 얼굴로 그건 아니라며 머그컵을 주었기 때문이다. 왜. 솔직히 그때 주전자 다이렉트로 마시고 싶었어.
여튼, 오늘은 무슨 일인가 하면 501부대와 프로젝트 위치스의 교류회다. 교류회라고는 해도 사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인지라 그냥 모여서 다같이 차 마시고 과자 먹고 수다 떠는 걸로 끝이다. 바로 어제 네우로이도 때려잡았겠다, 특별히 할 일도 없겠다, 그러면 모여서 수다나 떨자, 하는 김에 차랑 과자도 준비하고, 좋겠네, 야간조도 참여할 수 있게 저녁 때 하자, 그래, 오고 싶은 사람 모여라, 하는 과정을 거쳐 급조한 모임이다.
……그것 뿐이라면 좋겠지만, 사실 이 교류회는 상당히 고도의 정치적 공작에 의해 마련된 자리다.
왠지 모르게 바깥에서는 501부대와 프로젝트 위치스 멤버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듯 하다. 착실하게 실적을 쌓아온 501과 그걸 위협하는 PW 사이에 갈등이 없을 리가 없다나 뭐라나. 정작 우리는 언제든 상부상조하고 있는데. 서류상 편제가 갈려있을 뿐 실제로는 완전한 하나의 부대나 다름이 없다. 부대원들 사이도 약간의 편차는 있을지언정 다들 양호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고. 헛소문 퍼뜨린 건 누구야 대체.
어찌되었든 그러한 소문 때문에 사령부에서는 우리에게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도록'이라는 명령을 내려보냈다. 평소에도 화기애애하게 지내고 있는데. 그렇지만 일단 뭔가 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해야하고, 솔직히 소문도 신경쓰였기 때문에 그 소문을 잠식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교류회를 계획했다.
"……그리고 증거가 될 사진을 찍을 사람들로 우리를 불렀고."
"응. 정확하게는 메이가 불렀지만."
한숨을 내쉬며 찰칵, 하고 사진을 찍는 남자─알버트 카일 어니스트의 말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하긴, 그런 게 아니면 금남구역인 이 부대에 들어오지도 못했겠지."
"금남구역 해제된 지 꽤 됐던 것 같은데, 여튼 미안해. 한창 바쁠 텐데."
"최근에는 한가해졌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덕분에 미인들 가득한 공간에 들어올 수 있게, 농담이야 농담."
내 매서운 눈빛을 눈치챘는지 알버트는 양손을 들어올리며 항복의사를 표명했다. 이 아저씨가 사선을 몇 번 넘기면서 계급과 배짱이 늘더니 묘하게 아저씨틱한 개그가 늘었어.
"근데 굳이 부를 거면 저쪽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어?"
내가 앉은 의자 등받침 쪽에 양 팔을 걸치며 알버트가 가리킨 쪽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사진기를 들고 미나 대장님과 대화 중인 중성적인 느낌의 남자가 서 있었다. 필립 카린스. 브리타니아 공작가의 청년으로, 우리와 마찬가지로 스트라이커 유닛을 가동시킬 수 있는 인물이다. 우리들을 마녀Witch라고 부르듯 그는 마법사Wizard라고 불린다. 그런데 위치Witch는 남녀 구분없는 말이었던 것 같은데.
"프로젝트 위치스 멤버잖아. 중립적인 입장에서 쓸 수가 없다던데."
"그런가. ……어? 카린스가 PW 멤버였어? 예전에 왕립연구소 소속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둘 다 맞아. 왕립연구소 항공각 연구부…… 여튼 거기서 파견되서 지금은 PW 멤버야."
덕분에 한동안 부대 안 분위기가 껄끄러웠지. 미나 대장님이 과거를 떨쳐내기 전까지 왠만하면 서로 안 부딪치게 해야 했으니까. 설마 우리가 대립한다는 소문은 그때 생긴 거였나. 가능성은 있다만.
"그럼 저걸 찍으면 되겠네. 자, 가라 알버트!"
"Rog!"
장난스러운 내 명령에 알버트가 씩 웃고는 기세 좋게 포즈를 잡으며 사진기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찰칵. 카메라가 서로 미소를 지으며 대화하고 있는 필립과 미나 대장님을 찍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또래 소년소녀들의 모습 같아서 좋다.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대면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다른 쪽도 왁자지껄이든 흥얼흥얼이든 대체적으로 온화한 분위기다. 한동안 이런 분위기에 잘 끼지 않던 베로니카도 에리카랑 공중전에서의 기동로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하고 있다. 뭐, 소녀틱한 얘기 같은 건 당연히 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게 어디야.
우리가 서로 으르렁거리니 어쩌니 하는 사람들이 이 광경을 봐야할 텐데. ……메이와 바르크호른 대령님이 서로 헤드락을 걸고 메다꽂으려고 하고 있는 건 장난일 것이다. 응. 그래야 한다. 감사관과 카를스란트 에이스의 싸움은 여차하면 국제문제가 된다는 것 쯤은 메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알고 있겠지?
그때 조용히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냐다. 주변에는 에이라, 요시카, 루키니, 쟌, 제이니가 같이 피아노를 뚱땅거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운율에 튀는 음이 섞이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지만, 딱히 듣기 싫은 느낌은 아니었다. 화기애애해서 좋다. 까르르 하는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섞여있다.
찰칵. 사진기 소리가 들렸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알버트가 옆자리에 앉아서 사진기를 들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찰칵.
"뭐."
"자식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훈훈한 미소를 찍어봤어."
"……."
그러지 마시오 전폭대장. 가뜩이나 어머니 소리 듣고 있고, 본의 아니게 딸처럼 키운 아이들이 여럿 있다지만, 아직 스물도 안 넘긴 소녀를 유부녀로 만들지 마시오.
그런 복잡한 심정과는 달리 교류회는 무사히 지나갔고, 사진들 또한 별일 없이 신문에 실려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덕분에 불화설은 가라앉았지만, 이제는…….
"네가 할머니고, 사카모토랑 미나가 아빠 엄마에 나머지는 자식들이라. 꽤 적절하지 않아?"
"……적절하냐."
501+PW 가계도 같은 게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이제는 할머니냐. 엄마 들소에서 할머니로 업그레이드냐.
낄낄거리며 가계도(?)를 보고 있는 메이의 모습에, 나는 한숨과 함께 집무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창문 너머 우중충한 브리타니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자연이 내 심정을 그대로 대변하는구나. 후후후…….
#####
- 세라 비중이 많아 보이는 건 쓰는 사람이 저이기 때문입니다. 아쉬우면 쓰시던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시던가! 하하하하하핳하하 ……써주세요 아무나! 제발! 내가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걸 시작한 거야?!? 살려줘!! 잊지 않겠다 PW 멤버들이여어어어어어!!!!
- 설정을 쪽지나 덧글로 부탁했던 이유는 다른 거로 봤다가 기준을 알 수 없는 사지방 통제에 걸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부디 불쌍한 군인에게 따스한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메일도 통제되는 세계라구요, 여기는!
- 그러니까 여러분. 위치스 팬픽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무기 고증 지적 환영합니다. 다만 이쪽은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