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하늘과도 같은 그대 12.
[비뢰도] 하늘과도 같은 그대 12.
그러니까 대충 열다섯 살 되던 해 초여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레에 한 번 대장간이 쉬는 날이었기에 오후 시간이 비어야 했지만 나는 나물캐기와 사냥을 위해 아미산을 타고 있었다. 사부도 술 마시러 놀러갔겠다, 놀기 딱 좋은 날이었지만 사부가 수련거리─인 척하는 재화벌이─를 명하고 갔기에 우울한 심정으로 오두막을 나섰다. 청명한 하늘과 상쾌한 바람이 나를 더욱더 우울하게 만드는 날이었다. 그나마 누나가 산 타다가 배고프면 먹으라고 싸준 도시락이 있어 그나마 기분전환이 되었다.
누나의 도시락과는 별개로, 놀기 좋은 환경 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나를 위해 하늘에서 선물을 내려주신 걸까. 나무 그늘 아래서 청아한 향기와 고결한 기품이 느껴지는 청보랏빛 꽃 세 송이가 피어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내 뇌리에 경종이 울렸다. 돈 된다. 분명 이것은 돈이 된다. 그것도 매우 큰 돈이.
매우 신속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땅을 파던 나는 순간 깜짝 놀라 손을 멈추었다.
"우와……."
어른 손바닥 만한 나신裸身의 여체女體가 있었다. 세상에 맙소사. 이게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숨쉬는 것조차 잊어버릴만큼 경이로운 광경을 얼마나 보고 있던 것일까. 코끝을 간질이는 청아한 향기가 아니었다면 하루 종일 그 광경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신 차려라 비류연. 세상에 손바닥만한 인간이 어디 있으며 그런 인간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있단 말이더냐. 눈꺼풀 벗겨저라 거하게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거기에는 한 뿌리의 산삼이 다소곳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게 바로 인형설삼人形雪蔘이구나.
그야말로 금덩이를 발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산이 흔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환호성을 터뜨리고 싶었으나 급작스럽게 떠오른 사부의 모습에 냉정을 되찾았다. 진정해야지. 심호흡과 함께 영사심결로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곧 고민에 휩쌓였다. 이걸 팔 것이냐, 먹을 것이냐. 전자前者의 경우는 막대한 돈을 얻을 수 있었고, 후자後者의 경우에는 심후한 내공을 얻을 수 있었다.
아니면 누나를 먹이느냐.
이제 와서 무엇을 숨기랴. 사실 제일 바라는 건 이쪽이다. 허나 오래 전 돌림병으로 상중하 삼단전과 전신기맥이 모두 망가진데다가, 내가 열두 살 때쯤 서오西汚놈에게 큰 내상을 입었던 누나의 몸에 영약은 독으로밖에 작용하지 않는다. 주화입마나 뭐 그런 건 걱정이 없지만, 극양極陽의 영약을 먹으면 열이 심하게 나고, 극음極陰의 영약을 먹으면 반대로 체온이 심하게 떨어지는 식이다. 약발을 잘 받는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앓고 나서 몸이 전혀 안 좋아지니 결코 좋은 게 아니다.
그걸 뼈저리게 느낀 건 누나에게 산삼을 먹였을 때였다. 예린이가 떠난 그해 겨울, 사부가 잠깐 놀러간 틈을 타서 누나 몸보신을 위해 고려국 인삼이라 속이고 산삼 넣은 삼계탕을 준비했었는데 그걸 먹고 열이 올라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것이다. 다행히 의사용안과 수련으로 오른 공력을 사용해 재빠르게 양기를 흩어내고 흡수한 덕분에 누나는 반나절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소림의 대환단도 네 누이에게는 독이다. 알겠냐?"
제자는 가차없이 굴리면서 누나는 애지중지하는 사부님은 돌아와 누나를 보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채고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귀한 거 사부한테 안 바치고 지 누나한테만 갖다바친다고 맞았다. 약藥이라는 게 원래 몸이 약弱한 사람이 먹는 거니 당연히 누나에게 줘야 된다고 했더니, 되려 누나가 자기는 괜찮으니 다음부터는 사부님 드리라고 했다. 아니야, 누나. 사부님은 안 먹어도 강한 사람이야.
어찌되었든, 심사숙고 끝에 나는 이 인형설삼을 내가 먹기로 했다. 돈도 돈이지만 몸이 제일이니까. 우선 누나의 도시락으로 빈 속을 채우고 한 식경 동안 사부가 가르쳐 준 영약 섭취시 주의사항을 되새긴 후, 꽃부터 뿌리까지 조심스레 입 안에 머금었다. 그러자 분명 딱딱한 뿌리며 질긴 줄기 같은 게 느껴지지 않고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더니 청아한 향기만을 남기고 자연스럽게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사라졌다.
어느 시점부터 뇌령심법을 운용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작은 양陽의 삼蔘이었을 인형설삼은 극양도 극음도 아닌 순수한 기운을, 폭포처럼 몰아치는 거대한 힘을 품고 있었다. 그 힘이 육신을 거세게 후려치고 영혼을 찢어발기는 듯 했다. 도저히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는 시원時原의 혼돈 끝에 엄청난 깨달음이 영혼을 강타하고 갔다. 뇌령심법을 운용하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거대한 충격이었다. 문득 주화입마라는 단어가 떠올랐지만 자연스럽게 뜨여진 눈에 보이는 풍경을 본 순간, 모든 것이 끝났기에 자연스럽게 뇌령심법 운용을 멈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부터 하고 있었는지 모를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끄응~”
상쾌하다. 몸은 날아갈 듯 가볍고 정신은 바다처럼 넓으면서도 호수처럼 고요했다. 맑고 청명한 기운이 몸 안에 가득했다. 이야, 좋구나.
문제는 운기조식 전에 캤던 약초들이 죄다 쓸모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뭐, 쓰자면 못쓸 것도 없지만 캐서 바로 다음 날 약장藥場에 파는 것에 비하면 시원찮은 상태였다. 상태를 보아하니 사나흘 정도 지난 듯 했다. 그나마 짐승을 안 잡아서 다행이구만. 만약 사냥한 것들이 있었다면 진작에 썩어버렸거나 다른 짐승들이 낚아채 갔으리라. 내가 힘들게 잡은 걸 그런 식으로 못 써먹게 만들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여튼 며칠 지났다는 걸 깨달은 순간 빈손으로 돌아가면 사부님에게 추궁당할 게 뻔했기에 해가 질 때까지 근방의 약초란 약초는 죄다 캤다. 하는 김에 주제 파악 못하고 나를 덮치려던 호랑이 한 마리도 잡았다. 몰래 팔면 제법 큰 비자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인형설삼 먹은 거에서 더 이득을 보려다 피를 보느니, 그냥 사부님께 바치기로 했다. 대를 위한 작은 희생이다.
여튼 그렇게 돌아온 나를 맞이해준 것은 마루에 앉아 잠든 누나였다. 그제서야 누나가 걱정하고 있었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마음 같아서는 조용히 들어가고 싶었지만, 약초 바구니와 호랑이 시체가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약초는 몰라도 호랑이는 지금 당장 손질을 해둬야 비싸게 팔 수 있다. 별 수 없이 나는 작게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누나, 나 왔어.”
“……어서오렴.”
언제 자고 있었냐는 듯 깜빡 하고 눈을 뜬 누나는 내가 짊어진 호랑이를 보고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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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야라면 노을빛에 물든 대지의 잔광殘光이 남지만 산으로 둘러쌓인 오두막은 해가 빨리 진다. 해는 이미 산 너머로 넘어간지라 어둑어둑했기에 비류향은 아궁이에서 불씨를 꺼내 등불에 불을 붙였다. 오두막 문가에 하나. 마루에 하나. 홀로 남은 오두막에 불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사아아아…….
산바람에 빗소리처럼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비류향은 그 소리를 들으며 마루에 앉아 천천히 숨을 골랐다. 나름 시골출신에 산에 살면서 체력이 붙었다고는 해도, 사람이 두 번이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오면 기초체력이라는 게 턱없이 낮아지는 법이다. 거기에 후유증까지 있다면야. 일반인이었다면 외공이라도 배워 단련할 테지만 체질상 그 어떤 무법武法도 효과를 얻을 수 없기에 그저 자주 쉬어주는 수 밖에 없었다.
호흡을 가라앉히며 비류향은 문가를 바라보았다.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등불이 비치는 곳만 약간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안 오려나. 벌써 닷새 째 본의 아니게 혼자 오두막을 지키고 있었다.
“천향루에 좋은 술이 들어왔다니 마시러 갔다오마. 한 일주일 정도 있다 올 거야.”
노사부가 그리 말하며 나가고 다음 날, 약초를 캐러 간다던 동생 비류연 역시 그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고라도 난 것일까. 만약 백무후가 찾아와 동생은 무사하다는 얘기─라기보다는 스무고개 방식으로 겨우 알아차린 것이다─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걱정하고 있었으리라. 단 둘뿐이라고는 하나 나름 무가인 곳에서 일하고 있어도 무인의 생리는 잘 모르지만 도중에 깨달음을 얻어 수련하고 있다보다 했다. 그런 일도 있다는 얘기를 시장에서 들은 적이 있다.
그래도 벌써 나흘째. 해가 뜨면 닷새고 노사부가 돌아올 때도 되었기에 다시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시나 방해가 될까봐 쉽사리 그러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내일은 백무후와 팔섬풍에게 부탁해 동생이 있는 곳에 찾아가봐야 할 듯 싶었다. 무공 수련하는 몸인데다가 백무후와 팔섬풍에게 물을 때마다 괜찮다는 얘기를 듣지만, 여든 노모가 예순 노인을 걱정하는 법이라 했던가. 모자母子도 아니고 나이도 고작 세 살 차이지만 하나뿐인 혈육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비류연의 나이가 떠올랐다.
연이가 벌써 열다섯이구나.
내년이면 열여섯, 성인이 되는 아이건만 눈을 감으니 어릴 적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래도 말하는 품새나 행동거지도 제법 어른스러워졌고, 여태껏 아미산을 들쑤시고 다니며 온갖 약초를 채집하고 짐승들을 사냥한데다가, 무공까지 수련했으니 겉보기랑은 다르게 힘도 엄청나게 강할 것이다. 키도 벌써 자신과 비슷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집 남매들과는 달리 어릴 때부터 고작 세 살 차이 밖에 안 나는 누이 말을 잘 들와 줬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마저도 세상을 뜨셨건만 잘 자라주었다. 비류연. 연아.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나의 동생아. 네 누이로 태어난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매일 말해주지 못하는 게 미안하단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림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온 게 벌써 5년 전 일이었다. 열세 살 꼬마였던 자신 또한 어느 덧 열여덟 여인이 되어있었다. 조금 더 지나면 연이가 새색시를 데려와 일가의 가장이 되지 않을까. 무림에서 활동하게 될 테니 조금 더 늦으려나. 그러면 여기가 아니라 좀 더 마을에 가까운 곳에 집을 얻겠다. 어쩌면 사천을 떠나 다른 곳에 갈 지도 모르고. 노야께서 윤허해주셔서 가끔 보러갈 수 있으면 좋겠다…….
“누나, 나 왔어.”
언제 잠들었던 것일까. 동생의 목소리에 비류향은 눈을 떴다. 문가에는 호랑이 시체를 짊어진 동생 비류연이 서있었다. 놀랐다. 백무후와 팔섬풍과 함께 지낸 시간이 있어 덜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놀란 건 놀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할 말이 있었다.
“어서오렴.”
“……응.”
멋쩍은 듯한 웃음과 함께 비류연은 마당 한 켠에 호랑이와 약초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왠 호랑이를 잡았니? 덮쳐오길래 제물이겠다 싶어서 잡았어. 제물? 공양이랄까. 사부님께. 기특하네. 하. 하. 하. 기특하기는. 아참, 배고프지? 저녁 준비할게. 아냐, 내가 준비할게. 호랑이 고기 먹자. 금방 되겠어? 물론이지. 아궁이 불만 지펴줘. 그래, 알았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짧은 대화가 오가고, 누이가 부엌으로 들어가자 비류연은 발끝으로 마당에 핏물 빠질 배수로를 파낸 후 품 안에서 비도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호랑이 시체 앞에서 부처님께 기도하듯 합장을 한 후,
“자, 시작해볼까~ 흠~ 흠흠~”
정교하고도 재빠른 손놀림으로 호랑이 시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나흘 만에 누이와 함께하는 식사를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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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노사부는 구슬을 꿰는 동생 옆에서 옷자락에 수를 놓던 비류향을 불렀다. 드문 일이었다. 바깥이라면 모를까 이 산 속 오두막 안에는 어디든지 비류향이 노사부를 위해 준비한 것들 뿐이었다. 그리고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상황에 따라 적절히 노사부가 원하는 물건들을 내놓기에 부르는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불려간 비류향이 받은 것은 한 잔의 술이었다. 무슨 술인지는 몰랐으나 밑도 끝도 없이 받은 잔에 술이 채워질 때마다 아쉬움이 묻어나는 노사부의 눈을 보아하니 매우 귀한 것인 게 틀림없었다. 귀한 것을 주시는구나. 어느 덧 스물둘 여인이 된 소녀는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잔을 받아들었다.
“마셔라.”
비록 주향이 맴돈다고는 하나 뭔지도 모를 것을 먹으라 명 받았건만 비류향은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는 잔을 입에 대고 내용물을 남김없이 마셨다. 청아하고 은은한 향과 입안에 맴도는 희미한 달콤함과는 달리, 식도를 태우며 위장으로 흘러들어간 액체는 자연스럽게 기침이 나오게 했다. 그러나 비류향은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입가를 틀어막았다. 병자도 아니거늘 하사하신 주酒를 마시고 기침을 내뱉는 것은 무례無禮다. 그리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큽…… 쿠흡, 크흠……. 푸흡…….”
그 모습에 노사부는 참지 말고 기침하라 하였다. 그제서야 비류향은 거친 기침을 쏟아냈다. 격한 기침에 옆방에서 구슬을 꿰던 비류연이 달려왔지만 노사부는 약 먹은 거니까 호들갑 떨지 말라며 가볍게 제자를 쫓아냈다. 누나 괜찮은 거 맞죠?! 아 맞다니까! 넌 사부를 그렇게 못 믿냐! 사부님을 믿지만 사부님을 믿는 저를 더 믿습니다! 헛소리 하지 말고 구슬이나 꿰어 이것아! 소란 속에서 기침이 점점 잦아들어갔다.
“하, 하아……. 하아……. 후으…….”
“그래, 좀 어떠냐.”
한참 기침을 내뱉고 나니 근육이 당겼지만 술기운과는 다른 다른 청량감과 기분 좋은 온기가 온몸에 퍼져 있었다. 그것을 말하자 노사부는 “약쟁이 놈 약재 삥땅치지는 않았군.” 이라고 중얼거리고는 말했다.
“어제 내가 부엌에 가져다 놓은 항아리 있지?”
“예.”
”거기에 든 게 방금 준 술이다. 엄청 귀하고 비싼 약재 담가서 만든 건데 사흘에 한 잔 씩만 마셔라. 명심해. 딱 한 잔이야! 더 마시지 말어!”
“이리 귀한 술을 어찌…….”
“골골대지 말라고 주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식재만 축내는 부족한 아이도 이리 챙겨주시는구나. 그런 생각으로 감사의 마음이 가득한 비류향의 눈빛에 노사부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정말, 향이랑 류연이 놈 섞어서 반으로 나누면 참 좋을 텐데. 그리 생각하며 노사부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절대 류연이 놈은 주지 마라. 그놈은 산 타고 다니면서 약초며 영물이며 제일 좋은 것들 알아서 주워먹고 있으니까 안 챙겨줘도 돼.”
“……네.”
반드시 지키라는 듯 엄포를 놓는 노사부의 말에 비류향은 유쾌한 사제지간의 모습에 조용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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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 약초꾼과 사냥꾼들 사이에서 백호선녀白虎仙女의 소문이 떠돈 것은 대여섯 해 전부터였다. 처음에는 왠 소녀가 백호를 타고 아미산을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입소문을 타고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제는 사실 그 소녀가 둔갑한 백무후라느니, 아미파의 절정고수 중 하나가 반로환동으로 젊어져 백호를 타고 다니는 거라느니 하는 얘기까지 나오는 수준이었다.
아미산 산기슭 어디든 선녀가 백무후와 팔섬풍을 거느리고 다닌다는 얘기는 애들 잠자리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였으나, 실제로 멀리서 백호선녀의 모습을 보는 이가 하나 둘 늘어나자 이제는 다들 믿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호기심이 생기는 게 사람인지라 아미파에서 한동안 백호선녀의 정체를 알아보고자 했지만, 사람이 다가갈라치면 신출귀몰하게 사라져 결국 포기한 것이 3년 전이었다.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 사람 피하는 이를 애써 찾을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거기에는 지난 날 백무후를 토벌하자고 했다가 하지 않은 전례도 힘을 더했다.
무림인들이야 어찌되었든, 약초꾼과 사냥꾼, 그리고 나무꾼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백호선녀를 만나면 그날 운수가 좋다는 믿음이었다. 선녀를 보면 자주 보기 힘든 희귀한 약재를 캔다, 잡기 어려운 사냥감을 잡는다, 질 좋은 목재를 발견하거나 그날 도끼질이 잘 된다 등, 백호선녀는 이미 민간신앙의 영역에까지 도달해있었다.
물론 그런 건 단순한 헛소문이라 치부하는 사람들 또한 있었다. 금재월金才鉞 역시 그러한 사람이었다. 이름만 보면 도끼 좀 쓰는 나무꾼 같았지만 정작 그의 생업은 약초 채집이었다. 어찌되었든 그는 백호선녀 이야기를 믿지 않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혹여나 동료들이 그에 대해 얘기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 말라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적어도 며칠 전까지는 그랬다.
초여름에 들어서 제법 더웠던 그날, 재월은 땀 좀 씻고 목도 축일 겸 자신만 아는 냇가로 향했다. 초목에 가려 찾기는 어렵지만 들어가면 제법 너른 바위를 휘감는 계곡물이 흐르는 명당이었다. 잽싸게 등에 짊어진 약초 바구니를 내려놓고 소매를 걷은 후 계곡물에 손을 담갔다. 어이구, 차가워라. 계절에 아랑곳하지 않고 뼛속까지 시려오는 계곡물로 세안이며 양치며 땀과 흙먼지를 씻어내고 있자니 문득 이상한 기운을 느낀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음? 으헉?!"
적호赤虎. 아니, 백호白虎였다. 뭘 하다 그리 되었는지 모를 만큼 피칠갑한 얼굴 때문에 적호로 보인 것 뿐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대체 어느 새 이토록 가까이 다가왔단 말인가.
“그르르르르르…….”
“아, 으아으, 으흐흐, 으으…….”
낮게 깔리는 산군山君의 울음소리에 오금이 저려왔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이대로 죽는구나. 눈앞의 풍경을 덧씌우듯 지난 날의 삶이 좌르륵 스쳐지나갔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이라 생각했으나 별의별 오만가지 추억들이 우후죽순 떠올랐다. 그 끝이 이렇게 허무한가. 어머니 아버지. 불효자는 먼저 세상을 뜹니다! 재월은 천천히 다가오는 백호를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그 순간 찰박찰박하는 물소리가 들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에라, 모르겠다. 죽더라도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 죽어야지. 그런 생각에 재월은 눈을 떴다. 거기엔 백호가 계곡물을 핥짝이고 있었다. 단순히 물을 마시러 온 것이었나. 그 생각에 맥이 탁 풀리려 했으나 그 순간 백호가 고개를 들어 재월을 바라보았다. 맹수라고는 하나 결국 짐승이다. 허나 백호의 눈빛은 어지간한 사람들보다 깊고 맑았다. 영물이다. 영물이야. 백무후와 팔섬풍 중 하나겠구나. 어이구야.
자박자박 돌 밟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고개를 돌린 재월─훗날 그는 그때 도대체 어떻게 백호를 앞에 두고 고개를 돌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몸서리쳤다─의 시야에 지팡이인 듯한 장대를 든 여인이 들어왔다. 허름한 의복이었지만 끝단이 헤지거나 주름 잡힌 곳 없는 옷을 맵시있게 입은 여인이었다. 산행에 지친 듯 땀이 맺힌 얼굴은 산 사람치고는 생기가 희미했다. 그래서인지 제법 아름다운 얼굴이건만 묘하게 거리감이 느껴졌다. 여인은 백호를 보다가 재월을 눈치채고는 살짝 미소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 그, 그어, 그래……. ”
얼떨결에 인사를 받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웃으니까 좀 사람답구나. 아니, 정말 사람이 맞기는 한 건가? 피칠갑한 백호를 보고서도 놀라지 않으며 등에 짊어지고 있던 약초 바구니를 내려놓은 여인이 물가로 다가오는 것을 본 재월의 뇌리에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아니, 너, 무슨…….”
찰박. 찰박.
여인은 자연스럽게 백호 곁에 다가가 피칠갑인 백호의 얼굴을 정성스레 씻기기 시작했다. 새끼 고양이마냥 낑낑거리는 백호를 어르고 달래며 피를 닦아내는 그 모습은, 마치 씻기 싫어하는 어린 동생을 씻기는 큰누나의 그것처럼 보였다.
“낑낑…….”
“참아. 백모白母께 한소리 듣는다.”
“끄응…….”
호랑이가 다른 고양잇과 생물들과는 달리 물을 좋아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 손길로 귀며 수염이며 문지르는 걸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백호라고 아니그러할까. 그런데 우마牛馬보다 더 큰 백호가 훨씬 작은 여인의 행동에 따르다니.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이게 현실의 일이 맞는 건가?
공황 상태에 빠진 재월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호의 얼굴에서 피를 모두 씻어낸 여인은 자신 또한 계곡물로 세안을 하고는 다시 약초 바구니를 짊어졌다. 그러자 백호가 여인의 치맛자락을 살짝 물어당기며 엎드렸다. 그 모습에 여인이 괜찮다는 듯 가로저었지만 막무가내인 백호의 태도에 결국 조심스레 백호의 등 뒤에 올라탔다. 세상에 맙소사. 지금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여인을 등에 태우고서야 일어난 백호는 마치 여인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듯한 발걸음으로 조용히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퍼뜩 정신을 차린 재월은 허겁지겁 짐을 챙겨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서두르던 나머지 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진 그는 격통 속에 몸부림치다 백년삼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그는 열렬한 백호선녀의 신봉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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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백호선녀라…….”
“아 글쎄 진짜 있다니까요, 어르신!”
“누가 안 믿는다고 했나? 난 그저 어떤 고수인가 싶어서 그런 걸세.”
아미산 초입의 객잔에서 한참 백호선녀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철담비환鐵膽飛丸 진조운眞朝暈이었다. 천무학관의 요청에 따라 아미산으로 찾아올 주작단 16인을 가르치기 위해 온 무림고수인 그가 백호선녀 얘기에 관심을 드러내자 약초꾼이며 사냥꾼이며 아미산에 생업을 둔 이들 모두 신이 나서 그 얘기를 해주었다.
“아미파에서도 한때 정체를 밝혀볼까 했었는데 실패했지요.”
“그건 실패가 아니라 그냥 놔두자는 거였잖나.”
“아, 그렇구만.”
“여튼 여기 금재월이 이 사람이 백호선녀 얼굴 제일 가까이서 본 사람입니다.”
“어찌 생겼었는지 다시 말 좀 해드려 이 사람아.”
“그러니까, 와 이거 진짜 뭐라고 해야 되나. 음, 사람인데 사람 같지 않달까, 살아 움직이는데 허깨비처럼 생기가 없어 보이고. 예쁘긴 예쁜데 생기가 잘 안 느껴지니까 진짜 사람 같지가 않더라니까. 그런데도 웃으면 되게 예쁜,”
“거 누가 첫사랑 고백하랬나?”
“에이! 말도 안되는 소리 말어!”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진조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적어도 자기가 아는 고수들 중에 약초꾼이 말한 인상착의나 기운을 풍기는 이는 없었다. 그것도 여성으로 한정한다면 하나도 없다. 혹시나 천겁혈세 때의 인물들까지 떠올려봤지만 도저히 맞는 이가 없었다. 대체 누구길래 백호가 자연스럽게 등에 태워주는 걸까. 특수한 무공을 수련했다 하더라도 고수일 것이고 그런 것 없이 순수한 힘으로 영물이 따를 정도라면 지고한 영역에 도달한 기인이리라. 그나마 나쁜 소문이 없다는 게 다행이었지만, 일반인에게만 이리 대하고 무림인에게는 달리 대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먼저 가보겠네.”
“살펴가십시오, 어르신!”
일반인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고수가 자신들 얘기를 들어준 것이 기뻤는지 다들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객잔을 나선 진조운은 경공을 발휘해 아미산을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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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타입문넷 자창게 글/조아라 1화)과 본문에서 등장인물들 간에 태도 차이가 나는 건, 서문은 연재 생각 없이 썼던 거라 그렇고 본문은 2부를 읽으면서 전개를 다 뒤집었기 때문입니다. 조아라 11화 후기에 언급했었는데 헷갈리시는 분들이 있어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 최대한 원작의 등장인물과 전개를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하지만, 비틀어야 재밌는 게 팬픽이죠.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 추가. 백호신녀라 되어 있던 부분 수정했습니다. 타입문넷 Satze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호랑이가 고양잇과 생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물을 좋아하는 동물이라는 제보를 받아 해당 부분 역시 수정했습니다. 조아라 다크비하인드 님 및 기타 제보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한자漢字 · 오타 교정 및 설정 지적 환영합니다.
[비뢰도] 하늘과도 같은 그대 11.
[비뢰도] 하늘과도 같은 그대 11.
아미산은 험준하기로 소문난 산이지만 그렇다고해서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무작정 절벽과 수풀만 무성한 곳은 아니다. 다른 산처럼 세월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공터도 제법 있는 편이고, 그러한 공터 중 한 곳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노인. 여인. 여아 둘. 험하디 험한 아미산 산중, 그것도 이제 산 너머로 쏟아지기 시작한 햇살 아래서 보기에는 매우 기묘한 조합이었고, 이들이 하고 있는 일 또한 기묘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낸다면 여인의 모습은 이제 갓 중년에 든 것처럼 보이리라. 그만큼 고아하고 차분한 인상이었다. 슬그머니 그어지기 시작한 주름은 단순한 세월의 흔적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의 증명이자, 유의미한 시간을 쌓아올린 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묘함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체, 앞에 선 노인에게 쉼없이 공세를 퍼붓는 여인의 모습은 마치 이제 갓 검을 잡은 무가武家의 아이 같았다. 물론 여인의 검로劍路에 아이와 같은 미숙함과 젊은이 특유의 조급함은 없었지만, 아이들만이 가지는 활기와 즐거음, 그리고 젊은이들의 특기라 여겨지는 패기와 기세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향상심. 무武를 향한, 상승의 경지를 갈망하는 진지함. 경탄할만큼 순수하고 올곧은 마음心이 나예린의 용안과 의사용안을 전개한 비류연의 눈에 파고들었다. 저런 식으로도 사람의 마음이 빛날 수 있다는 사실에 두 사람은 적잖은 충격을 받고 있었다.
반면 노사부는 시종일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이는 손에 쥔 대나무 빗자루를 설렁설렁 휘둘러 여인의 검을 막는 와중에도 마찬가지였다. 무학을 수련하지 못한 나예린은 물론이거니와 비뢰문의 유일한 제자로 제법 수련을 쌓은 연비─비류연 역시 마음 속으로 지금의 자신이라면 절대 막지 못한다고 생각한 공격들을 노사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내고 있었다.
“……빗자루를 선택하신 건, 그게 제일 길었기 때문이십니까?”
“오냐.”
여인이 잠시 물러서 숨을 고르며 묻자 노사부는 그렇게 대답했다. 정말 귀찮은 듯한 태도였다. 아마 단 한 번도 반격을 하지 않은 이유 역시 그것일 것이다. 그러나 사정을 아는 이들이라면 경악을 금치 못했으리라. 천무삼성의 일원인 검후 이옥상의 진심어린 공격을 발 한 자국도 떼지 않고 모조리 파훼하는 노인이라니. 그것도 보이는데로 그냥 집어온 대나무 빗자루로 해낸 일이라는 건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손목만 까딱여도 될 만큼 긴 게 빗자루라서 빗자루 드신 걸 거에요. 게으르신 분이시거든요.”
“다 들린다 이것아!”
나예린에게 몰래 사부의 험담을 속삭이던 연비는 노사부의 호통에 꺄아, 하고 거짓 비명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노사부는 못 볼 것을 본 것마냥 부르르 떨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검후를 향해 말했다.
“제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를 확실하게 잡아야 돼. 알겠냐?”
“아하하하, 명심해두죠.”
“거 네가 데려갈 애는 향이가 잘 가르쳐서 괜찮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돼. 제자라는 건 꼭 순식간에 비뚫어지더라고. 거참 제자 복이 없어, 제자 복이……."
노사부의 푸념에 검후가 웃으며 대답했다.
“대신 인복人福이 있으시잖아요?”
“인복? 뭐? 아, 향이?”
“네. 요즘 세상에 그런 애가 어딨는데요. 없어요. 마음 같아서는 그 아이도 데려가고 싶은걸요?”
“안돼. 간만에 발품 좀 팔아서 피곤한 거, 향이 수발 받아서 풀어야 돼.”
“사부님, 그 얘기 언니가 들으면 어쩌시려고요?”
“아, 거…… 끄응……. 못 들은 걸로 해 둬.”
제자의 말에 말을 바꾸는 노사부의 모습에 검후는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만사 두려울 게 없는 노인이건만 비류향이라는 소녀에게만큼은 약했다. 극진함의 화신인 듯한 소녀의 정성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게 인간의 본성이고, 본성에 연연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했음에도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노인이라도 소녀─비류향의 지극함에는 당해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절정고수들의 싸움으로 내력이 부딪쳐 만들어지는 파동으로 내상을 입을 수 있으니 따라오지 말고 기다리라는 노사부의 말에 홀로 남은 비류향이 방금 전 노사부의 말을 들었다면, 틀림없이 노인의 수발을 들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정성을 다해 준비하리라. 얼굴을 본 건 고작 일주일이지만 검후는 어렵지 않게 그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미소를 그려졌다.
“하여튼, 이제 끝난 거냐?”
노사부는 퉁명스레 물었다. 애초에 원하지 않는 대련이었다. 노사부가 돌아다니다보니 예상보다 일주일 정도 늦게 도착했는데, 먼저 와 있던 검후가 그동안 진기 고갈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던 비류향에게 진기를 주입해었주고, 그와 더불어 매우 좋은 술 한 병을 바친 덕분에 간신히 이 자리가 성립된 것이었다. 혼자서도 알아서 쑥쑥 크는 애가 뭘 더 배우겠다고 노구를 힘들게 해, 아 몰라 뭐가 아쉬워서 너랑 투닥거리냐, 한참 어린 애랑 싸우면 주변에서 욕해서 안해요 등등 온갖 변명을 늘어놓다 이 자리에 섰으니 내키지 않을 만도 했다.
그런 노사부의 심정과는 달리 검후는 굉장히 신이 난 상태였다. 검후 정도의 고수에게 있어 호각으로 싸울 수 있는 상대란 극히 한정되어 있으며,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상대란 손가락에 꼽을 정도가 된다. 그런데 눈앞의 노사부는 자신의 모든 절초와 비기를 쏟아붓더라도 쓰러뜨릴 수 없는 상대였다. 손끝 하나 닿지 못한다는 건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일이었지만, 안심하고 모든 기술을 아낌없이 써볼 수 있다는 것은 그러한 단점을 단숨에 메꿔버릴만큼 굉장히 매력적인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검후는 구상을 마치고 이제 갓 연검練劍을 시작한 최후의 절기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마지막 하나만 더 받아주시면 됩니다.”
함께 천무삼성이라 불리는 친구 중 하나인 도성 하후식이 강을 갈랐다며 보여준 초식에 자극받아 수련중인 기술. 아직 미완성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노사부에게 사용해보기로 한 것이다. 이 괴물 같은 노인은 분명 아무 탈 없이 받아내리라. 그 옛날 검을 처음 배우던 시절, 스승님께 어설픈 검기를 자신만만하게 펼치던 것을 떠올리며 검후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것만으로도 순식간에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고오오오오────
겨울바람이다. 투명하고 날카로운 냉기를 머금은 동풍冬風은 계절에 맞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초월적인 힘이었다. 의념意念이 자연의 섭리에 간섭하는 초월의 경지. 그러나 그것을 보고도 노사부는 안색을 바꾸지 않았다.
“에잉, 쯧. 후딱 해 봐!”
자세를 가다듬기는커녕 귀찮다는 듯한 얼굴 그대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서 있는 노사부의 모습은 헛점 투성이였다. 허나 검후는 어디를 향하더라도 사문死門이 되는 노사부의 헛점을 보며 미소지었다. 과연 기인奇人이며 성인成人이다. 그리 생각하며──
“말학末學의 기술, 받아주십시오!”
해상비조천참절海上飛鳥千斬切
──무지막지한 내공이 실린 검을 노사부를 향해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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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천……. 천겁령……. 허허……."
서천에서 한중으로 가는 문턱인 검각.
촉한 최후의 항전지로 유명한 이곳에서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고 누군가에게는 처음인 객잔에 앉은 한 노인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후자는 100년 전부터 뒤숭숭한 단어였고 전자는 요 근래에 뒤숭숭하게 된 단어였다. 한 달 전 같았으면 노인네가 불길한 말을 입에 담는다며 꺼림칙해 했을 테지만, 다행스럽게도 요즘에는 언제 어디서든 모이기만 하면 다들 그 얘기였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범인凡人들과 다른 점이라면 은연중에 두려운 기운을 풍기는 대중과는 달리, 노인은 매우 귀찮아하면서 동시에 짜증 섞인 분노를 피워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운으로 인해 거리에서 이름 좀 날린다하는 건달패가 기세 좋게 객잔에 들어왔다가 노인의 기도에 눌려 숨도 크게 못 쉬고 조용히 나간 게 방금 전 일이었다.
“성질머리만 급해서는 노인공경도 못하는 놈들 때문에 놓쳤구만. 에잉…….”
한 달 동안 이 잡듣 사천땅을 뒤지던 노인─노사부는 개방 거지들로부터 불과 나흘 전에 뒤숭숭한 기운을 풍기는 외팔이가 이 근방에서 목격되었다는 정보를 얻었다. 고작 나흘 차이로 놈을 놓쳤단 말인가. 간만에 사천땅을 돌아다니다보니 별 것 아닌 무인 나부랭이들이 시비를 걸어대길래 친히 교육적 가르침을 사사하지만 않았더라도, 그리고 그로 인한 적절한 보상을 받느라 지체되지만 않았더라면 직접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노사부는 짜증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아, 조지러 갈까, 말까…….”
굳이 인간이 아니더라도 좋다. 원념이든 지박령이든 정령精靈이든 신수神獸든 닥치고 후드려패 놈이 간 길을 묻다보면 금방 뒤를 쫓을 수 있으리라. 정 안되면 구역질 나는 놈의 혼백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면 될 일이다. 섭리와 천도天道에 위배되는 일인지라 저승사자니 상천지사上天之士니 하는 것들이 시끄러워 심히 귀찮은 일이기는 하지만 못할 거야 없다. 허나 이제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슬슬 진원진기도 다 떨어졌겠지. 으음…….”
혹시 몰라 되는대로 대충 듬뿍 넣어주기는 했지만 비류향에게 주라고 하며 비류연에게 넣어줬던 진기는 이제 거의 다 고갈되었을 시점이었다. 진기 주입이야 그럭저럭 실력이 되는 무인(어디까지 노사부 기준)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테지만 문제는 그런 무인이 과연 비류향 같은 아이에게 아무런 댓가 없이 진기를 주입해줄 것이냐는 것이었다. 세상은 비정하기 그지 없는 밀림이다. 노사부는 문명과 지성을 가진 이들이 더 잔혹하다는 것을 수백 년 동안 지켜봐왔다.
“……쯧. 흐유……. 가야겄다. 나중에 찾지 뭐.”
한참 동안 고민하던 노사부는 한숨을 내쉬며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나일천의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놈의 행적을 보아하니 아예 사천땅을 떠난 것을 보였다. 쉽사리 돌아오지는 않으리라. 신뢰할 수 없는 직감과 석연찮은 증거들이 가득했지만 왠지 그러한 생각이 노사부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무엇보다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조질 수 있는 쓰레기에게 시간을 버리는 것보다, 부담스럽더라도 자기 수발 들어주는 소녀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혹시라도 돌아올 때를 대비해 노사부는 꼬박 하루를 소비해 지역 전체에 금제진禁制陳을 설치했다. 진법에 통달한 이가 보았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승상(제갈량)께서 살아돌아오셔서 다시 진법을 설치하면 이러지 않을까 싶을 만큼 정교하고 치밀하면서도, 오로지 특정한 한 사람만을 잡을 수 있는 진법이라니. 설령 어디 한 군데가 망가지더라도 자연스럽게 축을 바꾸어 스스로 고쳐지니 마치 살아있는 생물과 같았다. 진법을 기동시킨 노사부는 마지막으로 진의 중심인 바위에 한 문장을 새겼다. 놈이 이 진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이 바위 앞으로 인도되어 문장을 보게 되리라.
[다시 사천땅 밟으면 뒤진다.]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폭력적인 문구는 노인의 화법이라기에는 매우 난폭했지만, 제자인 비류연이 봤다면 “야, 정말 사부다운 말이네요.” 라고 할만큼 노사부의 개성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일을 마친 노사부는 천향루를 향한 귀로에 올랐다. 만약 검후가 다음 날 천향루에 도착할 것을 알았다면 그로 인해 벌어질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극한의 경공을 발휘해 달려왔으리라. 허나 노사부가 검후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은 불행히도 일주일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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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연이야 워낙 괴물 같은 사부를 두었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지만, 나예린은 달랐다. 정천맹주인 아버지 나백천을 두고도 용안의 부작용으로 사람을 멀리했던 소녀는 아버지의 검식劍式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어떤 무인의 무학도 제대로 구경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소녀의 눈에 비친 노사부와 검후의 격돌은 단순한 무인들의 비무 이상의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단순한 병장기가 부딪침에도 놀랄 것인데 심후한 내공이 격돌하였다. 범인凡人은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파격이 담긴 무학武學의 소용돌이는 그 안에 깃든 기氣의 흐름까지 심오하기 그지없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이치가 폭포수 사이로 빛나는 무지개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술값은 했구만.”
노사부는 떫은 표정으로 말했다. 손가락 마디 하나 만큼 왼발이 앞으로 나가 있었다. 귀찮아서 별 생각 없이 대응했다고는 하나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약조가 깨진 것은 사실이었다. 만에 하나 움직인다면 한 번 더 대련에 응해주기로 했다. 어쩌자고 그런 약조를 맺은 걸까. 까놓고 말해서 선금으로 술도 받았으니 대련이야 이기든 말든 아무래도 좋았고, 한 번 더 해주는 거야 검후 정도로 실력도 얼추 되고 아리따운 꼬마 아가씨(어디까지나 노사부 기준이다)와 어울려주는 것 쯤은 기분이 좋다면 못해줄 것도 없다. 허나 안 해도 되었을 일을 괜히 입을 놀렸다가 하게 되었으니 찝찝할 따름이었다.
“반 걸음 정도는 움직이실 줄 알았는데…….”
검후의 말에 노사부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제대로 가다듬지도 않고 그냥 거칠기만한 공격인데 뭘 반 걸음이나 움직여. 한 마디만으로 만족해. 그리고 그 기술 완성되면 그때 다시 찾아와.”
“에이, 그건 아니죠! 분명 금산적주金山赤酒받으실 때 언제든 다시 받아주시기로 하셨으면서!”
“네 기술들 중에 그나마 괜찮은 게 그거 하나 뿐인데 뭘! 또 이번처럼 한 마디 움직이고 끝내려고? 그럴 거면 덤비던가!”
“으으……!”
얼핏 보기에는 짠돌이 스승과 천덕꾸러기어린 제자처럼 보이는 대화을 나누며 투덜거렸지만 검후의 얼굴은 밝았다. 전력을 다한 공격이 막혔음에도 불구하고 후련한 표정이었다. 천상천天上天에 절망하던 시절은 오래 전에 지나갔기에 새로운 경지가 있다는 것과 노력하면 닿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검후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설마 이 나이에 처음 검을 잡을 때처럼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배고프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류……연비야! 먼저 가서 식탁 좀 차려놔라!”
“네~ 가요, 린!”
“네. 먼저 가보겠습니다!”
인사를 마침과 동시에 길이라 하기도 힘든 좁은 오솔길을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까르르 웃으며 내달려가는 소녀들의 모습에 검후가 미소지었다.
“참 활기차네요.”
“너무 활기차서 문제야.”
“풀죽어있는 것보다는 좋잖아요?”
“이왕이면 얌전한게 좋아.”
“향이처럼요?”
“거긴 너무 얌전하고.”
소녀들이 뛰어간 길로 향하며 노사부는 빗자루로 허리를 두드렸다. 대련이라고 해봤자 노사부가 움직인 건 손목 뿐이었지만 이런 건 마음의 문제라 괜시리 허리나 무릎을 어루만지게 된다. 그러면 하나뿐인 제자는 정정하신 분이 왜 상노인네 흉내내냐 투덜거리고, 그 제자의 누이는 찜질하시라며 냉수건과 온수건을 준비한다. 망할 놈. 역시 제자는 휘어잡아야 되는 거야. 속으로 궁시렁거리던 노사부는 문득 검후를 향해 말했다.
“밥 먹고 나서 가는 거냐?”
“네.”
“짐은 다 챙겼고?”
“그럼요.”
노사부가 천향루로 돌아와 검후와 만난지로부터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나흘은 천향루에서 서로 온갖 이야기를 하며 지냈고 이틀은 아미산 모옥에서 지냈다. 노사부는 검후와 나예린의 모옥 숙식을 썩 내키지 않아 했지만 검후가 넘긴 금산적주의 독특한 주향이 노사부의 불만을 잠재웠다. 그러나 그것도 이틀이 한계였다.
그래도 목표인 대련을 해냈으니 검후는 아쉬울 건 없다. 다만 그 아이는 아쉬워하겠지.
검후는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한 나예린을 떠올렸다. 소문과는 달리 감정표현도 잘 하고 말수는 적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할 줄 아는 아이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도움을 준 어머니이자 친구였던 이와의 이별이 어찌 아쉽지 않을까.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그 반대도 있는 거지 뭘. 너도 그만큼 나이 먹었으면 알잖냐. 걱정도 팔자다.”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니까요.”
“평생 헤어지는 것도 아니구만.”
귀찮다 어쩌다 투덜투덜 말이 많았지만 그래도 노사부는 일일히 답을 주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검후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오늘 아침은 뭘까요? 먼 길 가야 되니까 맛있는 거면 좋을 텐데.”
“향이 밥은 뭐든 맛있어.”
“그래도 그날 딱 먹고 싶다는 거 있잖아요.”
“음, 죽순무침이 끌리는구만.”
“죽순무침 좋네요. 거기에 대나무통밥도 있으면 최고겠어요.”
그런 대화를 나누며 모옥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잠시 후, 식탁에 올라온 대나무통밥과 죽순무침을 보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물 길러 가질 못해서 부득이하게 죽향竹香을 빌려 밥을 지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반찬을 내오겠,”
“노야. 정말 데려가면 안될까요?”
“안된다니까.”
“금산적주 열 병 보내드릴게요.”
“평생 먹을 분량 가져다 줘도 안 보낼 거야.”
“저기……?”
심상치않은 표정으로 못 알아들을 대화를 나누는 어른들을 보며 당황해하는 비류향을 식탁에 앉힌 것은 연비와 나예린이었다.
“언니, 괜찮아. 그냥 밥 먹으면 돼.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어, 응, 그래…….”
자연스럽게 식기를 집는 동생들의 모습에 비류향 역시 조심스레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노사부와 검후의 말싸움은 아이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을 덧붙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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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운 아침식사를 마치고 차 한 잔을 마신 후 마지막으로 짐을 확인한 검후와 나예린은 오두막을 나섰다. 배웅하는 이는 비류향과 연비 뿐이었다.
“원래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만남인데 무슨 배웅을 해. 어차피 쉽사리 끊어질 인연도 아닌데 그냥 가.”
노사부는 그리 말하며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인연의 소중함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말이었지만 노사부의 성품을 알기에 다들 아무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
나예린은 말없이 비류향을 끌어안았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부모님을 제외하면 가장 깊은 인연과 헤어지는 것이며, 동시에 처음으로 만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이와 헤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이 따스한 품에 다시 안길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어린 소녀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런 불안을 읽은 것일까. 비류향의 손길이 살포시 나예린의 머리를, 뺨을 쓰다듬었다. 순식간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아아, 정말, 못 당해내겠구나. 이 온기를 지키고 싶다. 그날처럼 무력하게 보호받고만 있지는 않을 테다. 그렇게 다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부드럽고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나예린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스스로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갈게요.”
“……응.”
당찬 소녀의 말에 비류향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리고는 검후를 향해 말했다. 비록 혈육은 아니나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걱정 말거라. 어지간한 놈팽이들은 손짓 하나로 내쫓을 수 있는 아이로 만들 터이니. 그런 대화를 하는 동안 나예린은 연비를 향해 말했다.
“갈게. 기회가 된다면 서찰을 보낼게. 답장, 해줄 거지?”
“기대하고 있을게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몸조심이에요. 알죠?”
“응.”
비류향이 친구이자 어머니였다면, 연비는 언니동생하며 지내기는 했지만 나예린이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꼭, 다시 만나자.”
“네. 아, 그때는 처음 만나는 걸지도 몰라요.”
“……후훗,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럴지도 모르죠.”
아마도 그때는 연비가 아닌 비류연으로서 만나게 되리라.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날이 어서 오기를. 그렇게 생각하며 나예린은 인사를 마치고 검후와 함께 남해로의 여정길에 올랐다.
산천초목의 신록이 더욱더 짙어지는 푸른 여름의 초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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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었네요. 역시 술이 웬수입니다. 이걸로 과거편은 종료입니다. 다음화부터는 다시 1부 초입으로 돌아갑니다.
한자漢字 · 오타 교정 및 설정 지적 환영합니다.